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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의도적인 영진위 흔들기인가
강병진 사진 최성열 2009-06-30

2008 공공기간 평가 최하위 등급의 ‘영광’은 노조 장악 못한 결과?

4기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성적표를 받았다. 지난 6월19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08년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에 따르면, 영진위는 기관장평가에서 ‘미흡’ 판정을, 기관평가에서는 최하위 등급인 E등급을 받았다. 그런데 다음에 잘하면 된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기획재정부는 미흡 판정을 받은 4명의 기관장에 대해 해임을 건의했다. 당연히 강한섭 위원장도 해임건의 대상 중 한명이다.

영진위가 어떤 항목에서 어떤 이유로 최하위 점수를 받았는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심지어 강한섭 위원장은 1차 경영평가를 끝낸 뒤, “100점 맞은 것 같다. 다음 경영평가 때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도 알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강 위원장의 장담과는 다른 결과가 나오자 추측만 나돈다. 강한섭 위원장 취임 이후 있었던 영화계와 영진위의 갈등, 영진위 내부의 노사 갈등이 이유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른 기관의 평가 결과와 비교해보면, 구체적인 평가 기준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1천억원대의 보조금을 지원받으면서도 공금을 빼돌렸던 대한석탄공사 사장은 ‘경고’ 조치에 그쳤다.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2년 연속 ‘미흡’ 평가를 받았던 국민연금공단과 근로복지공단의 기관장은 ‘보통’ 등급을 받았다. 말하자면 이들은 실적을 냈으나, 영진위는 실적을 내지 못한 부분이 무엇인가란 문제가 열쇠다.

1천억대 빼돌려도 ‘경고’받았는데…

기획재정부는 “기관장이 임기 중 중점 추진해야 할 주요 핵심사업인 기관 고유과제와 선진화·경영효율화 등 공통과제로 구분하여 각각 50%의 가중치로” 기관장을 평가했다고 밝혔다. 자료에 따르면 ‘선진화’ 항목에는 민영화와 통폐합·기능조정이, ‘경영효율화’ 항목에는 인력조정, 보수조정, 노사관계, 출자정리, 청년인턴채용 등이 포함돼 있다. 영진위 노동조합의 윤하 사무국장은 “구체적으로 보면 경영효율화방침은 크게 구조조정, 대졸자 초임삭감, 노조전임자 수 감축으로 요약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사실상 공통과제 성적이 경영평가를 좌우했으며, 결과적으로 영진위는 이를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최하위 점수를 받았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실제로 지난 6월19일 공공기관 평가 기자회견에서 평가단은 “기관장이 생산적인 산업 현장을 만들도록 노사관계를 유도하지 못하는 경우 공기업·선진화 등 정부지침을 끌고 갈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이라며 “노사관계 지표는 선진화·경영효율화 부문 점수에서 15%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노조를 장악한 자가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발표된 영진위와 관련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유과제와 공통과제에서 모두 낮은 기관으로 평가받았다는 것, 정원 감축을 완료하지 못한 유일한 기관이며 청년인턴 채용계획에서도 미달했다는 것. 해임건의를 받은 4개 기관의 고유과제 항목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일일이 설명하기 어렵다”는 답변만이 나왔다.

지난 25일, 성명서를 발표한 노조는 “최근 노사간의 대립구도를 해소하고 상호간의 신뢰를 통해 경영효율화를 비롯한 제반 현안 해결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던 중에 발표된 것이라 그 참담함과 아쉬움은 더욱 크다”고 밝혔다. 경영효율화 부문의 핵심과제인 노조전임자 축소, 인원 감축과 대졸초임자 임금 축소 등은 현재 영진위 경영진과 노조가 단체협약 개정을 놓고 논의 중이던 사안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경영평가 결과를 놓고 매를 맞는 건 영진위 노조다. 김병재 영진위 사무국장은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강 위원장 취임 이후로 경영효율화와 노사문제 개선을 위해 애썼으나 노조의 비협조로 진척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조를 탓하는 사쪽의 의견에 대해 영진위 노조는 “2008년 초부터 사쪽과 경영효율화에 대한 논의를 제시했었다”고 밝혔다. 윤하 사무국장은 “2008년 초부터 이야기해서 올해 3월부터는 영진위에 맞는 경영효율화 방안을 본격적으로 마련해보자고 건의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며 “사쪽이 공식적으로 경영효율화에 대해 논의해보자고 한 건 경영평가 결과가 나온 6월19일에 보내온 공문이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노조가 위원장의 퇴진을 요구한 적은 없었다. 노조의 뜻은 영화진흥사업을 제대로 해달라는 거였다. 사옥에서 농성을 하는 중에도 다음날 경영평가 실사가 있다고 해서 천막을 걷고 철회시키기까지 했다. 불미스러운 노사 갈등이 있었지만 우리에게도 최우선은 기관평가였으니까. 지금도 노조의 목적은 사쪽과의 대립각을 빨리 풀고 정부시책을 영진위의 현실에 맞게 수용한 뒤 진흥사업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영화계 일각에서도 경영평가 결과를 놓고 노조문제를 거론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의 이준동 부회장은 “영진위와 영진위 위원장의 문제는 구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위원장과 사무국장, 간부들은 같은 수준의 책임을 져야겠지만, 본질과 상관없는 문제를 가지고 영화계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영진위의 위상을 격하시키는 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강한섭 위원장의 거취는

무엇보다 지금 가장 큰 관심사는 강한섭 위원장의 거취와 영진위의 운명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강한섭 위원장은 주간회의를 통해 “공직자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장관의 결정을 따를 것”이며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공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넘어갔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6월23일, 국무회의에서 “앞으로 정무직을 제외한 각 부처의 실무 간부 인사를 장관에게 맡길 것”이며 “장관들도 본인 인사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공공기관 선진화는 핵심 국정과제인데다 국민적 질타가 있는 만큼 공공기관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볼 때, 유인촌 장관의 결정이 영진위의 운명에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만약 새로운 위원장이 취임할 경우 영진위는 장관의 뜻에, 나아가 정부의 구조조정 시책에 더 강한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강한섭 위원장이 남은 임기를 지킬 때도 마찬가지다. 결국 다음 시험을 잘 보는 방법은 공공기관 선진화를 내건 정부의 방침을 더 신속하고 강력하게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인촌 장관의 결정이 발표되기 전이지만, 노조를 장악하려는 사쪽의 움직임도 여전하다. 지난 3월19일 열린 인사위원회에서 위원회의 심의없이 계약직원들의 해고를 승인하려 한 김병재 사무국장과 이를 막으려던 노조원들과의 다툼과 관련해 영진위는 6월26일 오전, 징계위원회를 열기로 했다. 심지어 영진위 사쪽은 징계대상자 전원의 집으로 징계위원회 출석요구가 담긴 내용증명까지 보냈다. 노조의 소망인 영진위의 정상화는 아직 요원해 보이지만, 이번 경영평가를 계기로 영진위가 정권을 향해 한뼘 더 기울어질 것이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