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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티플레져] 하지 말라는데…너 변태지?
2009-07-17

원승환의 ‘청개구리 근성’

<연애의 목적>

친한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는 “너는 왜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 하냐?”라는 면박이다. 그냥 면박으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인 경우, 실제 나는 어떤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만 골라서 하는 일을 즐긴다. 그냥 즐거워서 하는 것인데 언제 끝내야 할지를 모르고 계속하다가 상대가 정색하고 화를 내는 순간이 되면 그제야 하지 말라고 했던 일을 그만한다. 그리고 혼자 ‘아, 아까 그만할걸’ 하고 후회한다. 하지만 후회는 늘 뒤늦게 찾아오는 법. 지금도 나는 상대가 하지 말라고 하는 일을 하면서 즐거워하는 것을 언제 그만두어야 하는지 그 타이밍을 잘 모르겠다. 그래서 후회하는 일도 종종 반복된다.

나는 왜 남들이 하지 말라고 하는 일을 하는 것일까? “하지 말라고 하지 말라고, 그만하라고, 그만하라고” 하는 일들을 하는 것은 분명 ‘내가 즐겁기 때문’이다. 당하는 상대에게는 전혀 즐거운 일이 아니므로 그야말로 ‘길티플레저’. 후회할 것이 분명하지만 시작하고 멈추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내가 그 과정을 얼마나 즐기는지 자각하게 된다. 남이 싫어하는 일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좀더 전문적인 의미로 ‘마조히즘’ 정도가 될 것 같은데, 당한 사람들이 나더러 “너 변태지?”라고 질문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사회적으로 변태 취급받는 것은 별로 바람직한 일은 아닌 듯.

언제부터 나는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를 생각해보노라면 어, 뭐 생각날 일은 만무하고, 그냥 딴생각만 줄곧 난다. 어렸을 때 우화 중에 하지 말라는 일만 골라 했던 청개구리 우화만 생각나고, ‘음 난 청개구리인가봐’ 정도 생각할 뿐. 음, 그 우화에 너무 감명받았던 탓?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이런 취미는 점점 할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은 보통 겨드랑이를 간질이거나, 콧구멍을 찌른다거나, 팔에 침을 바른다거나 하는 원초적인 것인 경우가 많은데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걸 할 상대가 없어지거니와 함부로 했다가는 쇠고랑 찰지도 모를 일. 그리고 점점 만나는 사람 수가 줄어들어 친밀한 느낌 속에서 그런 일을 저지를 일도 없어진다. 개인적으로는 아쉽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뭐 사회화가 되어간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최근에는 말로 하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이를테면 연애하지 않는 친구에게 하루에 한번씩 “너 연애하지?”라고 물어본 뒤 부정하든 말든 “그래 연애하는구나”라고 혼자 인정하고 다른 친구들에게 “누구누구 요즘 연애하는 것 같아”라고 소문내고, 술자리에서 되지도 않은 말로 후배들을 괴롭힌다. 이렇게 변해가지만, 역시나 부작용은 만만찮다. 처음엔 농담이었더라도 반복되면 기분 좋을 리 없고, 내색하지는 않지만 불쾌해하는 기색이 느껴지기도 한다. 역시 적절한 순간 끊어야 하는데 그 타이밍은 여전히 모르겠다.

점점 이런 장난과 농담을 받아줄 사람이 없어져가고 있어 나의 즐거움도 어느 순간에는 최소한만 남을 것 같다. 나에게는 진정 아쉬운 일이지만 주변의 평화를 위해서는 바람직한 일이겠지? 요즘은 그냥 나름대로는 아주 약하게 사람들을 말로 골려먹고 만다. 이런 걸 하려면 나름대로 견뎌내는 내성도 있어야 하는데, 사람이 싫어할 일을 하는 것을 요즘 내가 못 견뎌하니 세게는 못하겠다. 아 내 즐거움이여, 이젠 슬슬 정리되는 것인가?

원승환 독립영화배급지원센터 소장. 요즘 사는 것이 괴로워 남 괴롭히는 것이 얼마나 나쁜 일인지 뒤늦게 깨닫고 있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도 닦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