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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읽는 장르소설] 음산하고 괴이쩍은 미스터리
이다혜 2009-07-30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시공사 펴냄

이 글이 실리는 <씨네21> 714호에는 별책부록 <이 책에 마음을 놓다>가 따라붙는다. 간단히 설명하면 출판사 편집자들이 추천하는 신간 모듬인 셈인데, 별책을 만드는 동안 편집기자들이 먼저 낚여서 주말 동안 광화문에 나가 책을 샀다. 그중 특히 인기있었던 책이 바로 이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였다. 사진 촬영을 위해 책을 받았는데, 사진팀에서 사진을 찍고 디자인팀에서 책을 보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책을 내가 가져다본 뒤 디자인팀에 반납, 그 책을 이번엔 주말에 출근했던 교열팀 K선배가 보려고 책상에 가져다뒀는데 월요일에 나와보니 책이 사라졌다. 책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회사에서 자주 생기는 일인데, 책 행방을 수소문하다 보니 이거야 원. 다들 “나도 보려고 했는데…”라며 아쉬워하는 것 아닌가.

잡담이 길었는데, 이렇게 뜨거운 관심을 받은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는 일본 본격 추리소설의 거장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중 가장 유명한 책 가운데 하나다. 1950년에 출간되었는데,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유명한 미결사건인 제국은행 사건을 모티브로 전후 일본사회를 그렸다. 도쿄 긴자의 보석당 천은당 점포에 위생공무원 완장을 찬 남자가 들어선다. 그는 인근 지역에 전염병이 발생했다며 손님과 직원 모두에게 예방약을 먹인다. 약을 먹은 13명 중 10명이 숨진 이 사건의 범인을 그린 몽타주는 다섯번이나 수정되고 결국 범인 검거에 실패하는데, 몽타주와 닮았다는 이유로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츠바키 자작은 불명예를 참을 수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채 발견된다. 그런데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라는 곡의 플루트 연주 소리가 집안에 퍼지고, 온 가족이 혼비백산한다. 죽은 자작이 작곡하고 연주했던 곡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번이고 그 곡이 집에 울려퍼진다.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는 실제로 매우 음산한 곡이다. 초반 분위기는 오컬트 호러소설 같은 분위기로 전개되는데, 그런 분위기에 일조하는 게 곡의 분위기. 그래서 당연히 책보다 영화, 드라마로 만들어졌을 때 분위기가 더 잘 사는 작품이기도 하다.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드라마 버전, 스마프(SMAP)의 이나가키 고로가 긴다이치 고스케로 출연하는 스페셜 드라마를 보면, 플루트라는 악기가 귀기어린 소리를 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뭐, 다 읽고 나면 “요코미조 선생님, 이게 말이 됩니까!” 싶은 설정도 없지는 않지만(그게 모양까지 유전이라니요!), 그게 이 시리즈의 매력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