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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답답한 가슴, 수다로 치유한다
장미 2009-07-30

연극 <울다가 웃으면>/ 8월30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남편들은 모른다 ★★★★ 서른아홉 여자의 현실 ★★★☆

모든 30대 여성들이 캐리 브래드쇼와 같은 호시절을 누리는 건 아니다. 구두를 사모으고, 파티에서 뛰어놀기는커녕 자신의 욕망을 리스트의 가장 아래에 두는 인생. 캐리와 그 친구들이 브라운관을 활보하기 전 대개의 한국 여성들은 그렇게 시들어가는 걸 자연스러운 삶의 수순으로 여겼다. <울다가 웃으면>은 촌스럽다 해도 여전히 유효한 30대 여성들의 괴로운 일상을 들여다보는 연극이다. <버자이너 모놀로그>보다 덜 신랄하고, 뮤지컬 <맘마미아!>보다 덜 신나지만, 지극히 현실적이다. 아줌마라는 꼬리표만으로 죄인이 된 이들의 답답한 가슴을 해장하기 위해 이 연극은 수다라는 처방을 꺼내들고, 이들의 멍든 마음은 웃음과 울음, 무엇보다 자지러질 듯한 대화로 치유받는다.

‘1장-여자친구들’. 서른아홉 동갑내기이자 대학 동창인 세 여자가 예정에 없던 여행길에 오른다. 매실주를 홀짝이던 이들은 시집살이와 남편의 무심함을 못 견뎌 가출을 감행했다는 한 친구의 사연을 듣고,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들을 토로하기 시작한다. 남편의 바람과 이혼, 아껴주지 못한 아이에 대한 죄책감. 잠시 무거웠던 분위기는 재학 시절 모든 여학생들의 우상이었던 주윤발 닮은 선배가 소재로 떠오르면서 다시 유쾌해진다. ‘2장-여자친구들2’. 배경은 콘도에서 병원으로 바뀌었다. 말기 암 환자 세명과 임신중독증 환자 한명이 함께 머무르는 입원실. 이들은 너무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지만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공통점으로 자매처럼 가까워졌다. 그들 중 철없는 남편이 걱정스러운 한 여성이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억지로 생명을 유지하는 순간이 오면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하고, 나머지는 숙연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첫신의 주인공들이 다시 등장해 괴로웠던 과거를 토로하는 ‘3장-어른용 사탕’까지 보고 나면 일본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씨왓아이워너씨>가 무심결에 떠오른다. ‘진실은 상대적’이라고 주장하던 그 유명한 작품처럼 옴니버스 구성을 따르는 이 연극 역시 그녀들에게 와 박혔던 남편들의 따가운 이야기들이 어쩌면 오도된 것이 아닐까 의문한다. 그토록 오랜 시간 살을 맞대고 살았건만 아내는 남편이, 남편은 아내가 낯설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그렇다. 그녀 혹은 그가 당신이 사랑했던 젊은 시절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알 수 없는 누군가의 가면을 더 깊이 눌러쓰면서.

세명의 배우들이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직접 노래를 열창하는데, 특히 실험적인 느낌이 강한 3장의 음악은 ‘이어부 프로젝트’로 활동한 백현진의 노래 <어른용사탕>. 대학 시절 첫사랑의 정체가 폭로되는 등의 몇몇 장면은 기가 막히게 웃기다. 2007년 연극 <썸걸(즈)>를 무대에 올린 극단 맨씨어터의 신작. 정재은, 정수영, 우현주, 유지수, 김찬형, 박소정 등이 출연하고, 맨씨어터의 대표이기도 한 우현주가 연출과 각본까지 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