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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단편] 달리는 기차, 그리고 삼각관계
이주현 2009-08-07

<연극열차> 황종수 감독

기차에서 우연히 고등학교 동아리 선배를 만난다.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렵게 기억해내곤 반갑게 인사한다. “선배,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데 왜 못 알아봤어.” 캔맥주를 들고 선배가 다가온다. 옆자리엔 약혼자가 앉아 있다. KT&G 상상마당 이달의 단편 2월 우수작 <연극열차>는 기차에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춘천행 기차 안에 남자 둘, 여자 하나. 약혼남과 고교 선배(형훈) 사이에서 아현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깨닫는다. 선배에게 기습 키스를 당하고, 약혼남에게는 선배와 고등학교 때 어떤 사이였느냐 추궁당한다.

<연극열차>

황종수 감독

황종수 감독은 한편의 연극보다 재밌는 인생의 순간을 진실과 거짓이란 키워드로 풀어낸다. “하고 싶은 얘기는 늘 똑같다. 진실과 거짓. 사람들은 상대가 거짓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항상 알고 싶어 한다. 그런 주제를 가지고 멜로와 코미디를 섞어 남녀 간의 삼각구도로 찍어보고 싶었다. 연극과도 매치가 잘 되더라.” 주인공 형훈은 연극배우다. 아현 역시 고교 시절 연극 동아리에서 연기를 했다. 이 둘의 관계를 끝까지 지켜보노라면 과연 누가 거짓말을 하고, 누가 진실을 얘기하는지 헷갈린다. “결론을 내리면 재미없을 것 같았다. 물론 형훈이 이상한 놈이다. 그런 거 있잖나. 짝사랑을 오래 하다 보면 나중에 그 관계를 되돌아보면서 ‘그 사람과 내가 사귀었었나’ 생각하게 되는 거.”

형훈을 연기한 배우의 연기가 무척 생생해 영화의 결은 한층 다양해졌다. 신하균, 박해일, 탁재훈을 조금씩 섞어놓은 듯한 외모의 이형훈은 뻔뻔한 캐릭터를 능청스럽게 연기한다. 기습 키스를 하고 “미안. 너도 원하는 줄 알고. 오해했나보네”라고 하는 대목에선 한대 때려주고 싶어 주먹을 쥐게 된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이형훈은 제4회 대학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황종수 감독은 “내 새끼가 초등학교에서 반장된 것처럼 기분 좋았다”고 한다. 캐릭터의 승리, 배우의 승리는 또한 감독의 승리이기도 하다. “단편영화를 보면서 가장 아쉬운 게 연기”라는 황종수 감독은 배우에게 꼭 맞는 캐릭터를 쥐어주기 위해서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캐스팅부터 진행했다. 결과적으로 라인이 똑떨어지는 맞춤복을 한벌씩 선물한 셈이 됐다.

달리는 기차에서의 고생담도 빠뜨릴 수 없다. 하루 만에 촬영을 끝내야 했기 때문에 사전 준비도 열심히 했고, 대사와 동선도 몽땅 외우고 기차에 올랐다. 그러나 안내방송은 거의 지하철 수준으로 나왔고 터널도 쉴새없이 통과했다. 경제적 여건상 기차 한칸을 통째로 빌리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 “청량리에서 춘천까지 왕복으로 기차를 네번 탔는데 마지막에 서울로 돌아오며 촬영할 때 술을 얼큰하게 드신 등산객들이 단체로 탔다. 기차에서 영화 찍는다는 거 자체가 승객들에게 민폐긴 하지만 내가 컷을 외치기도 전에 등산객 아저씨들이 먼저 컷을 외치는 거다. 연기가 그게 뭐냐면서. 그래서 접었다.”

고생은 충분히 보상받았다. 칭찬에 인색한 상상마당 이달의 단편 심사위원들에게 ‘수작’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한 가지씩은 뭘 꼬집어내던데 나도 깜짝 놀랐다.” 지금은 또 다른 수작을 위한 준비단계에 있다. 자전적인 내용의 리얼한 단편 하나와 외국인 며느리가 등장하는 좀비 코미디를 차기작으로 생각하고 있다. 어떤 작품이든 “기본적으로 유쾌한”, “황종수 스타일의 영화”가 될 거다. 그가 좋아하는 홍상수 스타일처럼, 우디 앨런의 코미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