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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진의 영화 판.판.판] 씨네큐브와의 생이별
강병진 2009-08-10

“극장산업은 언제나 영화에 달렸다.” 멀티플렉스 관계자들에게 종종 들었던 말이다. 시설 투자를 하고, 상영 전략을 짜고, 온갖 마케팅을 펼쳐도 결국에는 대박난 영화가 극장도 먹여살린다는 이야기다. 이 말은 관객은 영화 때문에 극장을 찾는 것이지, 극장이 좋아서 갔다가 영화를 고르는 게 아니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언뜻 블록버스터영화를 펼쳐서 상영하는 멀티플렉스에만 해당되는 것 같지만, 오히려 예술영화 전용관에 더 직접적으로 적용될 이야기다. 보고 싶은 영화가 없다면, 왜 슬리퍼를 끌고 갈 동네 멀티플렉스를 마다하고 도심 속 예술영화 전용관을 찾겠는가 말이다. 심지어 예술영화 전용관은 멀티플렉스처럼 관객의 시간을 아껴주지도 않는다. 상영관이 많은 멀티플렉스에서는 보고 싶은 영화를 ‘지금’ 볼 수 있지만, 예술영화 전용관은 사전에 스케줄 조율이 필요하다. 예술영화 전용관의 흥망은 더더욱 영화에 달렸단 이야기다.

씨네큐브는 같은 맥락으로 볼 때, 조금 다른 예술영화 전용관이었다. 이곳의 관객은 보고 싶은 영화 때문만이 아니라 극장이 좋아서 씨네큐브를 찾곤 했다. 그만큼 나름 독특한 관람 문화가 있었다. 요즘은 커피를 파는 예술영화 전용관이 늘었지만, 씨네큐브는 여전히 물 이외의 음식은 상영관 밖에서 다 먹고 들어가야 하는 극장이다.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조명을 밝히지 않는 것도 여전하다. 일종의 고집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처럼 씨네큐브는 오징어와 팝콘이 싫은 관객과 취향을 맞추던 극장이었다. 백두대간의 진명혁 과장은 “예술영화 전용관 중에서 그나마 씨네큐브가 자리잡은 건, 극장 자체를 좋아해준 관객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이제 씨네큐브를 좋아하던 관객은 갈 곳을 잃었다. 9월부터는 극장 소유주이자, 씨네큐브를 공동운영하던 흥국생명이 아예 독자적인 운영권을 갖기로 했다. 진명혁 과장은 “흥국생명이랑 헤어지는 건 아쉽지 않은데, 그동안 친구처럼 만나온 관객과 생이별하는 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제 씨네큐브는 어떤 모습이 될까. 씨네큐브를 찾던 관객에게는 가장 중요한 문제다. 예술영화 전용관 지원금 계약 때문에 내년 3월까지는 지금의 모습으로 운영될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문제다. 씨네큐브가 받은 지원금은 8천만원. 만약 흥국생명이 이 돈을 돌려주면 용도 전환이 가능하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요식업을 펼친다는 이야기도 있다. 흥국생명 빌딩만 24층. 근처에는 금호아시아나 건물도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장인을 상대로 요식업을 한다는 거다. 극장으로 운영된다면 어떻게 될까. ‘씨네큐브’란 이름은 지켜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백두대간은 흥국생명쪽에 ‘씨네큐브’의 브랜드를 넘겨줬다. 백두대간으로서는 공동운영 계약이 6년이나 남아 있던 터라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물론 씨네큐브의 이름으로 영화를 상영한다고 해도 본래의 독특한 공간적 매력이 지켜질지는 알 수 없다. 진명혁 과장은 “그동안에도 블록버스터영화를 상영하거나, 팝콘을 팔라는 이야기를 들어왔다”고 말했다.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관람 환경을 조성하자’는 씨네큐브의 고집이 팝콘에 꺾일 가능성은 매우 큰 것이다. 대학로 동숭씨네마텍에서 시작해 광화문 씨네큐브에 터를 잡았던 백두대간은 이제 아트하우스 모모가 있는 이화여대로 이사한다. 참고로 이화여대 ECC 내의 아트하우스 모모는 이화여대와 공동운영하는 극장이 아니다. 백두대간이 임대료를 내는 공간이기 때문에 간섭이 없다. 그나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