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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t] “정치영화 만들고 싶다”
이영진 사진 최성열 2009-08-13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 영화사 천상의 김종선 기획이사

어느 날 갑자기 영화 만들겠다고 선언한 이들이 어디 한둘인가. 차승재 전 싸이더스FNH 대표는 과거 옷장사를 했고, <해운대>의 윤제균 감독은 광고인이었다. 제작자로 겸업을 선언한 조광희 변호사도 있다. 영화사 천상의 김종선 기획이사도 결국 영화를 택하고 말았다. <노르웨이의 숲>의 프로듀서인 최광호 대표와 함께 제작업을 시작한 지 3달째. 지난 10년 동안 최희준, 최용규, 윤원호 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 활동하며 검열, 투자조합, 스크린쿼터, 영화진흥위원회 등을 둘러싼 굵직한 영화계 현안 해결에 앞장서 왔던 그가 여의도에서 충무로로 둥지를 옮긴 속사정은 뭘까.

-영화사 이름이 천상이다. =1천 가지 상상력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첫 섹스>(가제)라는 프로젝트의 시나리오를 마무리하는 중이다. 영화아카데미 출신으로 <박하사탕>의 조감독이었던 김현정 감독이 연출을 맡는다.

-10년 보좌관 생활을 하는 동안 정치에 염증을 느꼈나? =처음부터 정치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정책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과거에 문화관광위원회 보좌관을 고집하면서 실업자가 될 각오를 하진 않았겠지.

-보좌관 일은 어떻게 시작했나. =대학을 졸업한 뒤에 안양에서 시의원 선거 기획일을 도왔는데 도의원, 시장 선거까지 하게 됐다. 선거운동 좀 한다는 평판을 들었고, 당시 15대 선거를 준비 중이던 최희준 의원실까지 가게 됐다. 선거 두달 전이었는데 여론조사 결과 3위였다. 처음으로 건의한 게 연예인은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광명의 모 연예인 출신 국회의원 후보가 배우, 가수들 몰고 다니다가 낙선했던 것도 문화를 홍보수단으로 삼아서였다고 했더니 최 의원이 우리 제안을 받아주셨다. 상대 후보가 하루에 세번 연설하면 열번 이상 했는데 반응이 좋았고 출구조사 때만 하더라도 3위였는데 역전했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 가게 된 건 최 의원의 뜻인가. =처음엔 최 의원도 안 했으면 했다. 이전 연예인 출신 의원들이 문광위에 많이 갔는데 의정활동이 개판이었다. 나도 한때 음악과 영화, 문학을 좋아하는 공대생이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문광위를 고집하진 않았다. 그런데 배정받은 뒤에 보니까 재밌더라. 질의를 하더라도 다른 의원실과 차별화되니까. 전문화된 영역이었고, 성취감도 컸다. 보수적인 연예계 출신 최희준 의원의 첫 국회 질의가 뭐였는지 아나. 검열문제로 구속된 김동원 감독 구속은 부당하다며 석방하라는 거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국회에 대한 영화인들의 불신이 컸다. 안건으로 취급을 안 해주니까. 그 점에서는 최희준 의원의 공이 크다. 검열 폐지를 위해 줄기차게 싸웠다. 그 덕분에 ‘포르노 위원’이라 불렸다.(웃음) <천국의 신화>가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심의문제로 만화가들이 거리에서 싸울 때 최 의원은 1시간 동안 혼자 명동거리를 돌면서 서명을 받아 오기도 했다. 만화가들이 술 마시면 지금도 그때 이야기를 한다.

-국회의원 보좌관 시절 마당발로 통했다. 당신만큼 영화계를 들락거리는 보좌관은 본 적이 없다. =1996년 여름이었을 거다. 국회고 문광부고 영화계를 파악할 자료가 없었다. 그래서 최 의원한테 아예 “저, 현장 가겠습니다” 했다. 한국공연윤리위원회에서 열렸던 ‘한국에서의 완전등급제’라는 정기포럼에서 김혜준을 만났고, 그 뒤에 신철, 이춘연, 양기환, 이은, 차승재 등과 알게 됐다. 그때는 남산에 한국영화연구소, 스크린쿼터감시단,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씨네2000 등이 한데 모여 있었다. 오후 4시가 되면 남산으로 출근했다. 두달 정도 어울리다 보니 동생 삼아주더라. 술 마시다가 영화인들한테 택시비 얻어서 안산 집에 가곤 했다. 라이브클럽 합법화를 위해서 음악계 선배들을 만날 때도, 만화산업 지원을 위한 법안 발의를 위해 만화계 선배들을 만날 때도 그런 식이었다. 술 잘 마시는 게 나의 가장 큰 능력 같다.

-현 정부의 문화정책을 평가한다면. =MB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 이창동 장관이 물러선 뒤 문화정책은 계속 퇴보했다고 생각한다. 스크린쿼터 축소에서도 볼 수 있듯이, 문화산업에 정부 지원이 더이상 필요없다는 결정은 잘못됐다.

-제작자로서 만들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정치영화. 아직 국내에선 시도조차 제대로 되지 못했으니까.

-제작자로 남을 것 같나, 다시 문화정책가로 돌아갈 것 같나. =정책으로 돌아가도 영화 제작이 큰 경험이 될 것 같다. 2천명 이상의 투자자들이 응원 형태로 자본을 만드는 사회운동 형식의 영화제작이나 문화 소외지역에서의 디지털 영화 배급 일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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