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Report > 기획리포트
[포커스] 견해차에 따른 차별은 위헌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단체사업지원 심사의 편파성과 부당성, 그냥 두고만 볼 것인가

2009년 8월11일자 <씨네21>의 기사(715호 포커스 참조,“”)에 따르면 2009년 7월16일 발표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단체사업지원에서 인권운동사랑방, 인디포럼, 노동자뉴스제작단 등 왕성한 활동을 보여왔던 단체들이 탈락했다고 한다.

지난해 정부가 광우병 관련 촛불시위에 우려를 나타내면서, 올해 초 기획재정부는 ‘2009년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에서 “불법시위를 주최, 주도하거나 적극 참여한 단체”, “구성원이 소속단체 명의로 불법시위에 적극 참여하여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등으로 처벌받은 단체”의 경우 “보조금 지원을 제한해야 한다”고 명시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단체선정 뒤 영진위는 280여쪽의 집행지침 중에서 위의 내용이 나와 있던 2~3쪽을 선정단체들에 보여주며 이 지침에 따라 활동할 것을 서약하도록 요구하였다고 한다.

필자는 인권운동사랑방 등의 단체들이 반드시 올해에도 지원을 받았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영진위의 말대로 매년 같은 단체를 지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실제로 단체선정기준에 위의 지침이 포함되거나 고려되었다면 이는 위헌이다.

반전단체 배제를 위헌으로 판정한 미국

국가는 개인의 삶을 제약하기도 하고 개인에게 베풀기도 한다.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때에는 이른바 과잉금지의 원칙이나 평등원칙과 같은 헌법의 원리들을 준수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국가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학원운영시간을 제한하는 것은 괜찮지만 과외를 전면금지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식이다. 거꾸로 국가가 개인에게 시혜를 베풀 때는 상대적으로 넓은 재량이 허용된다. 그러한 재량이 허용되지 않으면 국가는 법적 문제의 발생이 두려워 개인에 대한 적극적 지원을 꺼려할 것이다. 또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는데 국가작용을 너무 제약해서는 안될 것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부산영화제에 재정지원을 하면서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을 고려하면 더 좋겠지만 그렇게 못했다고 해서 그때마다 헌법재판소로 끌려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재량에도 한계가 있다. 그 한계는 표현의 자유 영역에서 유래한다. 표현의 자유는 다른 자유와 달리 사상의 자유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그래서 검열금지의 원칙과 같이 그 보호원리들이 더욱 구체적이다. 그러한 원리 중 하나가 ‘견해차에 따른 차별’(viewpoint discrimination) 금지의 원리다. 사상통제는 단지 국가가 국민의 사상활동에 개입해야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국가가 공론의 한쪽 입장만을 장려해도 사상통제가 이루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국가가 의무교육을 제공한답시고 관제사관을 따르는 역사교과서들만을 검정한다거나 국가가 공적자원인 공중파를 통해서 공영방송을 제공한답시고 관제보도들만 지원하거나 심의를 통해 정부비판적 입장을 희석해서는 안된다. 즉 개인이 정부와 특정 이슈에 대해 ‘견해차’를 보인다고 하여 공공 콘텐츠의 내용에서 배제하면 위헌이다.

이와 관련해 ‘국기에 대한 경례’를 의무화하는 것도 위헌이라고 하며 미연방대법원은 “헌법의 별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하나의 별이 있다면 바로 정부가… 정치, 국가성, 종교 또는 다른 견해의 영역에서 정설(定說)을 세우려 해서는 안된다(West Virginia State Board of Education 대 Barnette 사건)”고 판시하였다.

우리나라 헌법도 교육분야에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고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인간의 내면적 가치증진에 관련되는 교육문화 관련 분야에서는 다수결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국가의 교육내용에 대한 권력적 개입은 가급적 억제되는 것이 온당하다”고 해설하였다(89헌마88 소위 국정교과서제도 사건).

‘견해차에 따른 차별 금지’ 원리는 국가가 ‘내용’을 건드리지 않고 ‘돈’만 내는 경우에도 적용된다. 미국에서는 공공기관이 단체지원금이나 대회참가 등에서 반전활동단체나 종교단체들을 배제하였다가 위헌판정을 받은 바 있다. 더 가까운 예를 들자면, 영진위가 영화진흥을 위해 관련 단체를 지원하듯, 미국의 연방정부는 모든 국민이 법률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도록 무료 변론을 하는 단체를 재정적으로 지원한다. 그런데 1996년 공화당이 주도하던 미국 의회는 기존 법체제의 개정활동을 하거나 기존 법률에 대해 위헌소송을 하는 단체들을 지원대상에서 배제하는 법률을 통과시킨 적이 있다. 이에 대해 2001년 미연방대법원은 국가가 ‘견해차에 따른 차별’을 하고 있다며 위헌이라고 판정하였다(Legal Services Corporation 대 Velazquez 사건).

‘불법시위단체 배제’ 지침, 영화계 밖에서도 맹위

우리나라에서도 교육처럼 사상과 관련된 분야 외에도 군, 검찰, 감사원 등등은 ‘정치적 중립성’이 명시적인 책무로 부여되는 기관들이 있다. 이들의 행정작용은 표현의 자유 영역 밖에 있더라도 사상통제의 위험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외의 기관들도 업무의 성격에 따라 사상통제의 위험을 내포한다면 견해차에 따른 차별행위는 금지되어야 할 것이다.

영진위가 실제로 기획재정부의 지침에 따라 지원을 제한하였다면 단체들의 정치적 견해(또는 현행 집시법에 대한 견해)에 따라 단체들을 차별한 것이며 이는 위헌적인 정치적 중립성 위반 또는 견해차에 따른 차별이 된다. 결국 이렇게 하여 정부의 입장에 견해차를 보이지 않는 단체들만을 지원하게 되면 바로 이것이 사상통제가 아니겠는가.

혹자는 불법시위 참가 및 주도는 위법행위이며 위법을 저지른 단체들을 배제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인가 반문할 수 있다. 그런데 위 지침은 수많은 위법행위들 중에서 집시법 위반행위만을 구체적인 지원제한사유로 명시하고 있다. 결국 탈세나 조직 내 성폭력이 있었던 단체들은 지원제한이 되지 않지만 집시법을 위반한 단체들에 대해서만 지원이 제한된다. 즉 불법이 문제가 아니라 집회시위가 문제인 것이다. 위 지침은 도리어 집시법 위반자와 세법 위반자의 차이를 설명하지 않으면서 한쪽으로부터 귀중한 정부지원금 수령 자격을 박탈하고 있는데 이는 자의적인 차별로서 헌법의 평등권 위반이기도 하다.

게다가 집시법 위반은 집회 및 시위에 참가하면서 저지르게 될 터인데 결국 집회시위를 많이 하는 사람이나 단체일수록 지원제한을 당할 개연성이 더 높아지게 된다. 즉 헌법이 보호하는 행위를 하면 할수록 지원제한을 당할 개연성이 높아진다. 오직 헌법이 보호하는 활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법적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명백히 위헌이다. 예를 들어 18대 국회에 한나라당이 상정하였다가 웃음거리만 된 ‘불법시위집단소송법’이 있었다. 집단소송이란 단순히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소송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비슷한 상황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대표하여 소송을 하도록 하는 제도인데 피고에게 훨씬 더 위협이 된다. 다른 활동을 하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면 집단소송을 당하지 않지만 헌법이 보호하는 집회시위를 하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면 집단소송을 당할 수 있도록 한 어처구니없이 위헌적인 법안이었다. 이번 지침도 그와 다르지 않다.

기획재정부의 ‘불법시위단체 배제’ 지침은 영화뿐만 아니라 다른 정부지원 분야에서 맹위를 떨친다는 소문이 들린다. 영화분야가 눈에 띄는 이유는 단체들이 공적지원을 받으면서도 왕성하게 사회적 참여를 한 용기 때문 아닐까. 경쟁심사에서 탈락한 뒤 문제제기한다는 것이 구차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명백한 물증을 그냥 두는 것도 지금까지 보여준 용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부산영화제 심사기준에 ‘제작자의 정부정책과의 부합성’이라고 쓰여져 있다면 여러분들은 가만히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