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초적 에너지 ★★★★ 도발성 ★★★★★
베니스 비엔날레의 시상식은 여느 국제영화제들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실체를 드러내고 한바탕 논쟁이 붙고 그리하여 시상의 순간 야유와 박수가 난무하는 국제영화제의 시상식과 달리, 베니스 비엔날레의 시상식은 개막식과 함께 이루어진다. 수상자의 이름에 사람들의 관심이 더더욱 쏠리는 건 당연하다. 2009년 6월6일, 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는 올해의 수상자를 발표했다. 거기에는 스웨덴 출신의 클레이애니메이션 작가 나탈리 뒤르버그의 이름도 있었다. 그녀는 35살 미만의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은사자상의 유일한 수상자다. 알고 보니 뒤르버그에 구애한 건 베니스 비엔날레뿐만이 아니었다. 2007년엔 런던의 테이트 브리튼이, 2008년에는 밀라노의 프라다재단이, 2009년에는 파리 퐁피두센터가 그녀의 작품을 전시하고자 러브콜을 보냈다. 전시 경력이 이쯤 된다면 나탈리 뒤르버그를 동시대 현대미술의 가장 핫한 아티스트 중 한명으로 꼽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녀가 세계 유수의 미술관을 사로잡은 비결은 무엇일까.
“뒤르버그의 작품은 일종의 어둠을 품고 있으며, 그 어둠은 몹시 광적이기에 한편으론 발랄해 보이기까지 한다.” <뉴욕타임스>의 평처럼 나탈리 뒤르버그의 작품에는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 부패해 구더기가 들끓는 해골을 깜찍한 외모의 오소리가 지켜보거나(<Turn into Me>), 순진하게 생긴 아가씨가 고래의 껍질을 벗기고 그 몸속으로 들어가는(<Whales>) 식이다. 하긴 클레이애니메이션이라는 동심 가득한 장르로 잔혹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빛과 어둠의 공존 아니겠는가. 이것을 나탈리 뒤르버그는 ‘내 안의 두려움을 몸 밖으로 분출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죽음과 공포가 두렵다면 그 두려움과 맞서는 과정에서 오히려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최근 경희궁에 위치한 프라다 트랜스포머는 뒤르버그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건물을 회전시켰다. 육면체, 원, 직사각형, 십자형이 결합된 이 거대한 구조물은 곧 십자 모양의 바닥을 갖춘 전시실로 변모했다. 흰색 배경에 감자, 고래, 고인돌 같은 원시적인 오브제가 설치됐고 그 속에서 몽환적이고도 섬뜩한 뒤르버그의 클레이애니메이션이 상영된다. 안타깝게도 전시 공간이 좁은 만큼 한번에 스물다섯명만 관람할 수 있다. 프라다 트랜스포머의 공식 웹사이트(www.pradatransformer.co.kr)를 통해 예약하면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