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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이 죽일놈의 ‘감성’
김도훈 2009-09-18

엣지있다. 패션지에서나 보이던 말이 요새는 일상어가 됐다. 드라마 <스타일> 덕이다. 이 단어에 크게 불만은 없다. 엣지하다를 완벽하게 대체할 만한 한국말 표현이 없기 때문이다. 엣지하다는 예리하다와 세련되다와 날카롭다와 감각있다와 남다르다라는 표현을 셰이커에 넣고 흔든 뒤 유리잔에 부어놓은 칵테일 같다. 엣지있다는 그냥 엣지있는 것이다. <씨네21>에 한번 써볼까 싶다가도 “쿠엔틴 타란티노의 엣지있는 연출…”까지 쓰고나면 목덜미가 살살 간지럽다.

시크하다는 엣지있다보다 훨씬 먼저 패션지에 등장했던 표현이다. 이건 사실 한국어로 대체가 가능하다. 세련되다라고 말해도 별 차이는 없다. 종종 ‘시크 스타일’이라는 말도 안되는 표현이 사용될 때도 있다. 시크는 특정한 스타일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세련된 스타일을 의미하는 거다. 이를테면 그 사람 옷차림이 꽤 시크한데? 이건 가능하다. 그 사람은 시크 스타일이야. 말도 안된다. 신조어라고 해도 이런 식은 곤란하다. <씨네21> 기사에 쓴다면 “브라이언 싱어의 시크한 연출…”이라고, 아니다. 이것도 목덜미가 살살 간지럽다.

엣지있다와 시크하다는 참을 수 있다. 정말 견딜 수 없는 건 ‘감성적이다’라는 표현이다. 이건 한국말 표현이지만 사실상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러나 요즘은 모두가 말한다. 그 영화는 감성적이야. 그 책은 감성적이야. 그 사람 사진은 감성적이야. 글로벌 리더를 자처하는 기독교 대학교의 TV광고를 우연히 봤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맞는 소리다. 바로 그 때문에 이 국가가 이 모양이 된 거다. 국가수반과 태양왕을 구분 못하는 대통령이 메주로 죽을 쑤어도 상관없다. 시장에 나가서 상인 아지매를 꼬옥 안아주는 사진 한장만 찍으면 지지율은 오른다. 왜냐고? 감성적이니까.

21세기 한국의 키워드는 ‘엣지’가 아니라 ‘감성’이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을 건드려야 팔린다. 정보도 없이 감성적인 문구로만 가득 채운 여행서적은 베스트셀러가 된다. 에스프레소 한잔 제대로 못 끓이지만 북유럽의 감성적인 소품으로 채운 카페에 사람은 넘쳐난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신작도 제때 보기 힘든 나라에서 감성적인 포스터에 호소하는 일본 인디영화들은 빠짐없이 수입된다. 다들 두개골 속에 뇌가 아니라 심장 하나씩 더 달고 살아간다. 차라리 엣지가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