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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처럼 나비처럼> 그녀는 정말 두렵지 않았을까
강병진 2009-09-29

명성황후의 여성성 그려낸 사극 멜로 <불꽃처럼 나비처럼>

한 여자이기에 앞서 국모였던 명성황후의 죽음은 언제나 슬픔보다 분노가 먼저였다. 명성황후를 그렸던 수많은 사극 드라마들, 소설들, 그외 또 다른 이야기들은 그녀의 죽음을 역사적 맥락에서 묘사했다.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의 정치적 갈등, 한반도를 점령한 뒤 대륙으로 전진하려던 일본의 압력, 그 속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황후. “내가 조선의 국모다”란 한마디를 남기고 의연한 태도로 죽음을 맞이했다는 일화도 분노의 신화에 일조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정말 두렵지 않았을까? 이 질문은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출발점이다. 여성으로서의 명성황후, 그리고 그녀를 지킨 일개 무사의 충정어린 사랑이 영화의 요체다.

이야기는 한 여자의 운명적인 외출로 시작한다. 고종과의 혼례를 앞둔 어느 날, 자영(수애)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바닷가를 찾는다. 밤에는 자객으로 낮에는 뱃사공으로 살던 무명(조승우)은 우연히 그녀를 배에 태운다. 자영은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불안감을 털어놓고, 무명은 그녀에게 용기를 북돋운다. 이날의 만남으로 무명은 자영에게 목숨을 건다. 대원군(천호진)을 찾아간 무명은 목숨을 건 시험 끝에 황후의 호위무사가 되고, 그녀의 눈물이 보일 때마다 목숨을 걸고 싸운다. 명성황후의 죽음이 스포일러가 아니듯, 그녀의 곁에 끝까지 남은 남자의 운명도 예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영화가 묘사하는 그녀의 죽음 또한 분노보다 슬픔을 향한다.

기록에 따르면 명성황후는 16살에 궁에 들어가 40대 중반을 앞두고 시해당했다. 영화는 약 30년에 걸친 일대기를 청춘의 한때로 요약한다. 바닷가에서 펼쳐지는 자영과 무명의 첫 만남, 서로를 향해 머뭇거리는 그들의 태도에서 김용균 감독의 전작인 <와니와 준하>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시나리오를 쓴 이숙연 작가의 <행복>과 <외출>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무명과 자영 사이에 놓인 고종이 왕의 방식으로 질투를 드러내는 삼각관계 또한 흥미롭다. 그런데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이미 야설록 작가의 동명원작부터 ‘무협’의 운명을 타고난 영화다. 무협서사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사랑이 ‘목숨’을 담보로 하는 만큼 죽음을 앞둔 황후의 사랑 이야기에도 그럴싸한 장르일 것이다. 하지만 감독과 작가가 상상한 사랑의 태도와 무협의 결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인다. 영화는 무명이 자영에게 목숨을 걸게 된 이유에 대해 말과 감정을 아낀다. 그 때문에 피와 땀으로 범벅된 무명의 결투도 오히려 건조해졌다. 블루스크린과 디지털 캐릭터를 이용한 영화의 액션 또한 이입을 방해하는 부분이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강박에 노출된 액션장면은 마치 게임 캐릭터들의 결투 같다. 사극, 액션, 그리고 슬픈 멜로 등 추석영화로서의 미덕을 고루 갖춘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결국 명성황후의 여성성을 드러냈다는 점에서만 의미를 가질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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