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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반갑다, 비비 안데르손
주성철 2009-10-16

<엘리나> Elina

2002년 감독 클라우스 해로 상영시간 77분 화면포맷 16:9 와이드 스크린 음성포맷 DD 2.0 자막 한글 출시사 베네딕도 미디어

화질 ★★★ 음질 ★★★ 부록 없음

고전영화에 열광하는 시네필에게 ‘잉마르 베리만의 비비 안데르손’은 ‘장 뤽 고다르의 안나 카리나’나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잉그리드 버그만’ 혹은 ‘페데리코 펠리니의 줄리에타 마시나’만큼이나 흥분된 이름이다. ‘<산딸기>(1957)와 <페르소나>(1966)의 그녀’라는 묘사만으로도 별다른 부연설명이 필요없는 비비 안데르손은 13편의 베리만 영화에 출연한, 스웨덴이 낳은 가장 위대한 여배우다. 1958년에는 역시 베리만의 작품인 <삶에 가까이>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어린이영화축제’의 그랑프리인 수정곰상(Crystal Bear)을 수상한 <엘리나>는 바로 비비 안데르손의 현재 모습이 반가운 영화다. 물론 권위적이고 깐깐한 교장 선생으로 등장한 모습이 무척 낯설긴 하다. 게다가 <엘리나>는 2002년 작품이기도 한데, 그럼에도 그녀는 지금도 TV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엘리나>로는 스웬덴 영화협회가 주관하는 ‘굴드바게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원작 <나는 여기 없는 것처럼>을 각색한 <엘리나>는 엘리나라는 소녀의 성장영화다. 1962년 스웨덴의 노르보텐, 핀란드 접경 지역인 이곳에 엘리나(나탈리 미넨빅)가 엄마(마르야나 마이얄라)와 여동생 일마(틴드 소네비)와 살고 있다. 아빠인 이삭은 몇년 전 결핵으로 세상을 떴지만 엘리나는 여전히 아빠의 존재를 믿으며 마을 늪에서 늘 아빠와 상상의 대화를 나눈다. 심지어 동생도 그에게 미쳤다고 말할 정도다. 그리고 스웨덴어만 써야 하는 교내에서 핀란드어를 쓰는 엘리나는 엄격한 교장 선생 토라 홀름(비비 안데르손)과 사사건건 갈등을 빚는다. 비요크 선생(헨릭 라펠슨)이 도와주려 하지만 엘리나는 매번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그럴수록 엘리나는 아빠를 떠올리며 환상의 세계에 빠져 지낼 뿐이다.

2차대전 당시 핀란드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일부 사람들은 스웨덴으로 건너가 정착했다. 스웨덴 정부는 그들에게 스웨덴어만 쓰기를 강요했고 점심과 신발조차 배급에 의존해야 할 정도로 궁핍한 삶을 살았다. <엘리나>는 그런 스칸디나비아의 슬픈 역사를,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혼자만의 세계에 집착하는 한 소녀의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스웨덴어를 모르는 한 친구가 핀란드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점심 급식을 받지 못하자, 함께 점심을 굶으면서 교장 선생에게 대드는 엘리나는 말 그대로 ‘이유있는 반항’을 하는 정의로운 소녀다. 그렇게 영화는 교장 선생의 권위주의에 대항하는 엘리나의 야무진 모습을 대조시키며 시대의 풍경을 그려낸다.

아지랑이가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늪의 풍경은 무척 평화롭다. 마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1986)에서 죽어버린 나무를 살리고자 했던 그 나무를 둘러싼 정경을 보는 것 같다. 어쩌면 토라 홀름 선생에 저항하는 의미로 단식에 들어가는 엘리나의 모습 자체가 ‘희생’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엘리나의 가족을 둘러싼 현실은 팍팍하기 그지없지만 엘리나가 나무에 기대 앉아 아빠와 상상의 대화를 나누는 순간만큼은 시간이 멎어버린 것 같은 평온함을 준다. 그런 엘리나가 학교라는 현실에 도착하는 순간 교사의 권력에 맞서는 ‘까칠한’ 학생이 된다. 그리고 학교의 모든 아이들이 엘리나를 따라 급식을 거부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바뀐다. <엘리나>는 구구절절한 어른들의 언어를 빌리지 않고도, 핀란드의 어두웠던 역사 이전에 개인의 양심과 가치라는 기본적 휴머니즘을 진심으로 설파한다. 선생과 학생, 스웨덴과 핀란드라는 뻔한 이분법을 넘어 <엘리나>가 보여주는 숭고함은 바로 그것이다. 구입 문의는 베네딕도 미디어(054-971-0630, www.benedictmedia.co.kr)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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