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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아주 큰 청소
정재혁 2009-11-13

청소를 좋아한다. 때를 벗기고 광을 내는 대청소까진 아니더라도 무언가 치우면서 만족을 느끼는 편이다. 방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수첩에 메모해둔 것들을 정리하면서, 컴퓨터 하드에 쌓아놓았던 드라마 파일들을 하나둘 지워내면서도 기분을 전환한다. 책상 위에 놓인 소지품의 배열을 재정돈하는 것도 좋다. 마감을 하면서는 뽑아놓았던 자료들을 뭉텅이로 휴지통에 쑤셔 박는다. 뒤늦게 다시 찾는 후회가 없는 건 아니지만 말끔히 비어진 자리를 보면 안심이 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대학생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그때는 생각을 정리하느라 바빴다. A형 같은 B형인지라 밤만 되면 침대에 누워 그날의 일과를 더듬었다. 뒤죽박죽 뒤엉킨 일들을 나름의 결론으로 정리했다. 내일의 일정도 시간대별로 그려봤다. 매일을 그렇게 두세번 반복해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여행이라도 한번 갈라치면 그 시간은 몇배로 늘어졌다. 취업 고민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그때는 뭐라도 얼른 정리해 그려놔야 마음이 놓였다. 참 피곤했다.

청소가 잘 안됐다.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최근 일과를 마치고 집에 가려 하면 찜찜한 기운에 마음이 불편했다. 들어가고 싶지 않았고 그냥 하루가 끝나는 게 싫었다. 나는 끝내지 못했는데 하루는 이미 문을 닫아버린 느낌이었다. 억지로 버티며 정리해보려 해도 쉽게 되지 않았다. 맞지 않게 들어찬 가구 한복판에 서 있었다.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할지 그림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계속 틀린 그림만 오가는 건 아닐까 타로에 물어도 봤다. “나태한 생각이에요.” 나이를 생각하니 정말 창피해졌다.

큰 청소를 한다. 나태한 걸 알기에 그냥 하기로 했다. 환경을 바꿔볼 타이밍이란 생각에 조금 설레기도 했다. 이사하는 마음이다. 막막함도 있고 미련도 있고 아쉬움도 있고 섭섭함도 있다. 그래도 가끔은 B형답게 그냥 결정했다. 대학 졸업하고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3년9개월을 있었고 그렇게 수차례 마음을 뒤집었다 엎었다. 나태한 변덕도 받아준 회사라 역시 하루를 끝내는 게 아쉬웠던 곳이다. 부족하다는 반성과 힘들다는 투정 사이를 참 많이도 오갔다. 매주 청소하는 기분으로 마감했던 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고 결국 그 덕에 더 큰 청소도 하는 것 같다. 정든 곳을 떠난다. 모두에게 감사한다. 이제 12시가 지났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