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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t] 드니 라방 같은 괴물이 또 어딨나
김성훈 사진 최성열 2009-11-18

특별전 위해 한국에 온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말하는 영화인생

지난 11월5일 오후,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었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1984), <나쁜 피>(1986), <퐁네프의 연인들>(1991) 등에서 강렬한 이미지를 선보인 그는, 최근 봉준호, 미셸 공드리 감독과 함께 <도쿄!> 프로젝트를 통해 <폴라X>(1999) 이후 9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화 내용은 이렇다. 자신의 특별전이 상영되는 ‘2009 넥스트플러스 영화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10년 만에 내한했는데, 윤진서가 어떤 배우인지 궁금하고 만나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곧 윤진서에게 연락을 했더니 “평소 좋아하던 감독이라 떨린다”며 기뻐했다. 두 사람을 이어주고 나자, 신기하게도 레오스 카락스를 만나라는 출격 명령이 떨어졌다. 만나기 전부터 경험한 그 기묘함은 그와의 인터뷰 내내 계속되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폴라X> 이후 장편 소식이 없다. =영화를 만드는 건 사랑에 빠지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배우, 스탭들과의 만남이 중요한데, 아직까지 사랑에 빠질 만한 만남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금 계속 기다리고 있다.

-로베르 브레송이 연출하고 장 콕토가 각본을 쓴 <블로뉴 숲의 연인들>을 보고 영화감독이 되리라 결심했다고 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렇다. 13살 때, 프랑스 역사상 최초로 해외에서 열리는 복싱경기가 생방송으로 중계됐다. ‘무하마드 알리와 조 프레이저’가 벌이는 세기의 대결이었다. 미국에서 가진 경기라 프랑스에서는 새벽에 방송됐다. TV는 부모님 방에 있었는데, 내가 어린 나이에 너무 보고 싶어 하자 부모님께서 TV를 내 방에 갖다주셨다. 그 일을 계기로 내 방에 TV를 놓게 됐고, 나는 밤마다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블로뉴 숲의 연인들>을 봤는데, 충격이었다. 이전까지는 누가 출연하는지만 눈여겨봤는데, 이 영화는 카메라의 위치와 이야기의 구성 등을 생각하게 했다. 그러니까 ‘영화감독의 존재’를 느끼게 해준 최초의 경험이었다.

-영화를 만들기 전, 영화전문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영화비평을 썼다. =그럼에도 나 자신을 한번도 영화비평가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파리에 처음 온 17살 때,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아트시네마였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영화만 종일 봤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영화평론가이자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장인 세르주 다네가 ‘영화비평을 한번 써보라’고 해서 그곳에서 2년 동안 활동했는데, 비평은 역시 내 길이 아니더라. (웃음) 누벨바그처럼 영화비평과 창작을 동시에 하는 것은 영화사에서 극히 예외적인 경우였다. 지금은 더이상 그 둘을 동시에, 그리고 둘 다 제대로 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역시 17살 때, 당신은 로베르-에스티엔가에 있던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사무실에 <데자부> <내가 너라면> 등 두편의 시나리오를 보냈다. ‘후원제작사가 필요하다. 도와달라’는 편지와 함께. =영화라는 매체가 뭔지 몰랐고, 영화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나이였다. 용감했던 거지. 하지만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에게서 어떤 답신도 받지 못했다. 하긴 당시 그의 사무실에는 일주일에 200여편의 시나리오가 들어오던 때였으니 그럴 만했다. 장 뤽 고다르에게도 그 시나리오들을 보냈는데, 답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린 나이에 상처를 받자 화장실에 가서 휴지를 떼어다가 ‘나쁜 놈’이라고 욕을 써서 두 사람에게 보냈다. 트뤼포가 죽은 뒤 그의 사무실에서 내 시나리오가 발견됐고, 이후에 출판했다.

-당신의 영화 속 인물들은 늘 사랑에 배신당한다. 이는 랭보의 시 같은 다른 텍스트에 영향을 받은 것같지는 않다. 보통 개인의 경험이 영화에 반영되는 게 아닌가. =영화감독이 영화에 담는 건 결국 두 가지다. 하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질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다. 데뷔작인 <소년, 소녀를 만나다>를 만들 당시, 난 삶의 경험이 전무했다. 7년간의 긴 침묵에서 막 뛰쳐나오려던 참이었는데, 영화 속에 무언가를 담을 만큼 인생의 경험이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친한 친구 중 한명이 해외 어느 영화제에서 <소년, 소녀를 만나다>를 보고 나서 이렇게 말하더라. “알렉스, 네가 이걸 다시 봐야 해. 네가 당시 경험한 것들이 이 영화 속에 모두 들어 있어!” 하지만 다시 보지 않았다.

-그때는 뭐가 그리 두려웠나. =글쎄… 그게 뭐였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중요한 건 그 일로 이름을 바꾸었고(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본명은 알렉스 뒤퐁이다. 사춘기 때, 그 이전까지의 자신에 관한 모든 것에서 떠나고 싶었던 그는 자신의 이름 ‘알렉스’와 당시 읽고 있던 오스카 와일드 소설의 ‘오스카’의 철자를 섞어 ‘레오스 카락스’라 지었다-편집자), 인생을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침묵이었고. 어쨌든 원인이나 동기보다는 그런 결정을 했다는 게 중요하다.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카메라가 터널을 통과해 남녀 주인공인 알렉스(드니 라방)와 미셸(줄리엣 비노쉬)을 소개하는 오프닝 시퀀스는 의외로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터널을 재빠르게 지나가는 속도감은 더이상 물러설 곳 없는 인물들의 에너지를, 영화 내내 나오는 트래킹숏을, 그리고 개발 중이라 파리 시가지로부터 동떨어진 퐁네프 다리를 상징하는 듯하다. =그게 어떤 장면이지? 아, 그 장면! 영화를 완성시키고 나면 절대 다시 안 보니 이해해라. 그렇게 봤나. 맞다. 그 장면은 파리 시내의 한 도로를 싹 다 비우고 찍었고, 3년 동안 재촬영을 세번 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돌이켜보니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장면이다.

-무슨 문제가 있었기에 한 장면을 그렇게 오래 끌었나. 당시 영화사 재정도 안 좋았는데. =촬영 첫날 찍은 장면인데, 보통 촬영 초반 일주일간의 분량은 쓰레기통으로 가질 않나. 그날 리허설을 충분히 했는데도, 술에 취한 드니 라방과 뒤따라 걸어오는 줄리엣 비노쉬의 동선이 재빠르게 지나가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또, 드니 라방은 실제로 술을 마시고 연기를 했는데, 너무 많이 마셔서 나중에는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그래서 나머지 촬영을 다 끝내고, 배우들의 스케줄에 맞춰 두번 더 찍은 거지.

-어떤 장면은 실제 거리에서, 또 어떤 장면은 완벽하게 통제하고 찍었던데. =처음부터 원했던 건 실제 거리에 나가서 파리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담는 거였다. 하지만 파리시에서 퐁네프다리 촬영하는 것을 허가해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프랑스 남부로 내려가 다리 세트를 만들어 찍을 수밖에 없었다. 드니 라방과 줄리엣 비노쉬가 카페에서 다른 손님들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도둑질하는 장면은 실제 파리의 어느 카페를 빌려 찍었다. 제작기간 3년 동안 그때 상황에 맞게 이렇게 저렇게 해봤다.

-<퐁네프의 연인들>뿐만 아니라 <소년, 소녀를 만나다> <나쁜 피> 등 극중 인물들은 늘 말로서 사랑을 확인받길 원한다. 하지만 정작 인물들이 가장 행복해 보이는 순간은 말을 안 할 때인데. =사랑이라는 감정은 수많은 치장에 둘러싸여 있다. 아파트, 전화 등과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한 것들을 다 벗겨내고 싶었다. 그러면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사랑만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이를 언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 원초적인 인간 알렉스를 통해 다뤄보고 싶었다.

<퐁네프의 연인들>

<소년, 소녀를 만나다>

-인물들이 무용(<나쁜 피>의 미레이유 페리에), 기이한 몸짓(<소년, 소녀를 만나다>의 드니 라방) 등과 같이 온몸을 이용해 의사를 전달하는 것도 그래서인가. =그렇다. 17살 때 처음으로 영화와 사랑에 빠졌다. 짧은 시간에 엄청난 양의 영화를 봤다. 그중에서 1920년대 무성영화와 프랑스의 누벨바그가 나를 사로잡았다. 내 영화를 보면 말없이 몸으로만 진행하는 장면이 있지만, 고다르의 영화처럼 20여분 동안 대사로만 상황을 전달하는 신도 있다.

-늘 드니 라방에게 무리하고 격렬한 움직임을 요구했다고 들었다. =물론 다른 배우들에 비해 그에게만 유독 어렵고 무리한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영화라는 게 다 그런 게 아닌가. 배우란 신체를 사용하는 게 일이고, 특히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그가 맡은 역은 길거리에 사는 거지인데…. 그렇다고 세간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강제로 무리한 요구를 한 적은 없다. 미리 연습해보고 가능한 것만 시켰다.

-감독이라면 여러 배우와 작업하고 싶은 욕심이 있을 텐데 매번 드니 라방만 고집하는 이유는 뭔가. =그는 마치 조각처럼 입체적으로 생겼다. 또, 무용가였기 때문에 신체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안다. 영화사 전체를 통틀어서 이런 배우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토드 브라우닝(Tod Browning) 감독의 <스탬볼의 처녀>(1920), <치외법권>(1921)에서 맹활약한 배우 론 채니(Lon Chaney)를 보는 듯했다. 그 정도로 괴물 같았다. 강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배우는 어느 시대, 아무 데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배우가 지금 내 옆에 있는데, 내가 또 누굴 쓴단 말인가.

-1990년대 초, <카이에 뒤 시네마>의 세르주 다네 편집장은 “1980년대 프랑스영화는 남긴 게 하나도 없다”며 혹평을 했다. =영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 것이지, 비평가나 영화기자에게 좋은 평을 받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건 아니다. 그러한 지적이나 혹평에는 관심 없고, 신경 쓰지도 않는다.

-첫 질문으로 되돌아가보자. 요즘 사랑에 빠질 만한 만남이 있었는가. =당장 내년에 런던에서 촬영 예정인 장편이 있다. 아직 구체적으로 밝히긴 어렵다. 또, <나쁜 피>에 대한 답변 격인 <흉터>라는 작품과 한 남자와 한 여자의 30년간 사랑을 다룬 작품도 있다. 특히, 후자는 주변 인물은 한명도 등장하지 않고 남녀 주인공만 나온다.

-오늘 윤진서를 만나는 것도 캐스팅 때문인가. =아니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를 인상적으로 본 지인의 추천으로 만나는 것이다. 어떻게 될지는 아직까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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