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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웨이] 충무로 스탭 처우 개선 요구, 그 이후
2001-12-10

드디어 바람이 불기 시작했군

조감독협의회에서 총무를 맡고 있는 최중원(29)씨. 최근 충무로의 편당 계약금 수준이 올해 초와 비교해서 올랐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다른 스탭들로부터 귀동냥해서 들은 것에 따르면, 많게는 20% 오른 금액으로 계약했다는 곳도 있다. 그는 “스탭들이 처우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 것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것 같다”면서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잘라 말한다. ‘최저임금 보장, 표준계약서 마련’을 비롯, 올해 상반기에 있었던 조수급 스탭들의 요구에 “지금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은가”라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제작사들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하반기부터 앞선 행보를 보이는 몇몇 제작사들도 있다. 촬영에 들어간 강제규필름의 <오버 더 레인보우>는 연출, 제작, 촬영부 스탭들과의 계약시에 이전 작품들보다 10% 이상 상향된 계약금을 지급하고, 촬영횟수와 기간을 명시한 개별계약서를 마련했다. 강제규필름의 이성훈 제작팀장은 “인건비를 포함해서 스탭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이번 사례가 이후 작품들의 기준이 될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버 더 레인보우>에는 지금까지 스탭들의 처우개선에 앞장서온 김영철 촬영감독이 결합하면서 입김(?)을 많이 가한 경우다. 강제규필름쪽도 김영철 촬영감독이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자기 몫을 포기했기 때문에 계약이 가능했다고 귀띔한다.

제작사 차원에서 스탭들의 인건비 산정 및 지급을 월급제로 전환한 청년필름의 시도는 그래서 돋보인다. 현재 제작중인 <질투는 나의 힘>과 촬영장소를 물색중인 <귀여워>의 경우, 프리 프로덕션 때부터 연출, 제작부에게 매달 일정 급여를 주고 있다. 아직 계약을 체결하진 않았지만 촬영부 역시 원한다면 월급제 형태로 갈 생각이다. 임금 산정기준은 일단 일대일 개별계약을 통해 스탭들과 조정하는 형태다. 또한 촬영횟수가 늘어날 경우에는 1일 노동비용을 따로 책정하고 있다. 김광수 대표는 “제작사 입장에서 자금 압박이 없진 않다. 하지만 스탭을 모집해놓고서 파이낸싱이나 캐스팅이 원활하지 않다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제작사가 떠안아야 할 책임을 스탭들에게 일정부분 돌리는 것”이라고 월급제를 시행한 배경을 설명한다.

이에 비해 명필름은 지금까지 축적해온 제작 노하우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촬영횟수가 늘어나거나 제작기간이 늘어나서 스탭들이 다른 일감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버스, 정류장> <후아유> <욕망>의 경우, 계약금 산정시 프리 프로덕션 기간을 촬영일의 1.5배로 계산한 뒤, 이를 포함한 전체 작업기간에 대한 노동비용을 지급하고 있다. 프리 프로덕션 때부터 붙잡아놓고서, 정작 계약시엔 ‘촬영기간 몇 개월에 얼마’라는 식으로 스탭들의 노동을 깎기 일쑤였던 그간의 관행을 없애자는 의도에서다. 프리 프로덕션과 기획 및 개발단계를 명확히 분리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은 자료조사 등에 참여한 스탭들에게 개발비를 따로 책정, 지급하고 있다. 이은 감독은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춰간다는 측면에서 이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같은 움직임이 충무로의 전반적인 경향은 아니다. 비둘기둥지, 조감독협의회 홈페이지 등 스탭들이 마련한 사이버 안식처에는 여전히 푸념과 한숨이 쏟아진다. 하지만 스탭들의 성토가 울려퍼진 지 겨우 6개월.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 고무적인 건 일부 제작사의 사례이긴 하지만, 스탭들의 불만에 성의껏 화답하는 곳도 분명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인회의 제작환경개선위원회도 특정영화를 모델로 프로덕션 전체에 대한 구체적인 현장조사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좀더 많은 메아리가 듣고 싶다면 스탭들이 다시 모여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