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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참 재미있는 진화론
김도훈 2009-12-24

<지상 최대의 쇼-진화가 펼쳐낸 경이롭고 찬란한 생명의 역사>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영사 펴냄

지적설계론자와 교인들에게 추천 지수 ★★★★★ 그들이 눈과 귀를 막고 거부할 지수 ★★★★★

당신은 지상 최대의 쇼를 믿는가. 여기서 ‘지상 최대의 쇼’는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가 아니라, 진화다.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으로 막을 열어젖힌 진화 말이다. 진화론은 지금 사상 최악의 적들에 둘러싸여 있다. 갤럽에 따르면 미국인의 44%가 ‘신은 지난 1만년 안짝에 현재의 형태 거의 그대로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는다(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이 지금 모습 그대로 공룡과 같은 시대에 아옹다옹 살았다고 믿는다). 미국 교사들은 진화론을 가르치려 할 때마다 교회의 세뇌작업에 물들어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들을 직면한다. 대체 어쩌자고 일이 이렇게 된 것인가.

사실상 전세계의 존경받는 종교인 지도자 대부분은 ‘인간은 덜 발전된 생명 형태로부터 수백만년의 기간을 거쳐 발달했고, 신이 그 과정을 이끌었다’는 설을 지지한다. 그러니까 진화론은 사실이되 그것 역시 신의 원대한 계획의 일부라는 거다. 심지어 로마 교황청도 올해 열린 ‘진화론 학술 대회’를 공식후원했다. 진화론은 사실이다. 그것도 신의 계획이냐 아니냐가 진정한 종교적 문제다. 그럼에도 (특히 미국과 한국에서 세력을 떨치는) 기독교의 많은 분파는 진화론 자체를 철저히 부정하라 교인들에게 강요한다. 대체 왜? 리처드 도킨스에 따르면 그건 순전히 그 인간들이 무식하기 때문이다.

이미 리처드 도킨스는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였던 <만들어진 신>에서 신앙의 허구와 허세를 낱낱이 까발린 바 있다. <지상 최대의 쇼>는 진화가 왜 사실이며, 진화론을 완전히 부정하는 이른바 지적설계론자들의 논리가 얼마나 공허한지를 만천하에 드러낸다. 한 챕터에서 도킨스는 인위선택의 증거로 인간이 종자선별로 사육해 겨우 몇 백년 만에 외양이 변화한 개, 소, 양배추 등을 예로 든다. 인간은 고작 몇 백년 만에 야생늑대를 페키니즈로까지 변화시켰고 야생 양배추를 콜리플라워로 만들어냈다. 당연히 자연은 더 잘할 수 있다. 도킨스는 자연선택의 사례들 외에도 화석으로 단서, 분자생물학 등 수많은 이론과 증거를 제시하며 지적설계론을 격파한다. 게다가 이 책의 미덕은 정말 쉽다는 거다. 그의 전작을 읽은 독자라면 잘 알겠지만, 도킨스에게는 조롱과 면박을 적절하게 구사하는 휘황찬란한 필력이 있다.

연말에 만난 이모님이 내년에는 교회 나가 사람되라고 꾸짖으시며 “인간이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는 게 말이 되니? 그럼 왜 원숭이는 아직도 살아 있는 거니?”라 물으신다면 이렇게 대답하면 된다. “인간은 원숭이에서 유래한 게 아닙니다. 인간과 원숭이는 다만 공통선조를 가지고 있을 뿐이에요. 그들과 우리는 선조를 공유하는 친척이라는 겁니다.” 무지를 격파하려면 공부가 필요하다. 도킨스처럼 재미있는 선생도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