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Report > 기획리포트
[포커스] 정치 아닌 심사기준은 무엇입니까
이영진 사진 오계옥 2010-02-01

‘영상미디어센터 운용자 선정’ 특혜시비… 특정 단체에 특혜 주려 공모제 악용하나

공모(公募)인가 아니면 공모(共謀)인가.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조희문)의 ‘영상미디어센터 운용자 선정’이 특혜시비에 휘말렸다. 1월25일 영진위는 2010년 영상미디어센터 사업 운영자를 공모한 결과 (사)시민영상문화기구가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이번 공모의 접수는 1월15일부터 시작됐는데 알려진 바에 따르면 (사)시민영상문화기구(이사장 장원재)는 1월6일 만들어졌다. 기구를 설립한 지 한달도 되지 않아 영진위의 영상미디어센터 운영자로 결정된 것이다. 반면 현재 영상미디어센터 운영자인 미디액트는 (사)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로 조직을 확대해 공모에 응했으나 탈락했다. 동일 심사위원들이 결정한 2010년 독립영화전용관 운용자 역시 “신규단체로 실적이 없는” (사)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대표 이석기)가 뽑혔다.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영화계 안팎으로 반발이 거세다. 심사 결과 발표 이틀 뒤인 1월27일,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와 ‘언론사유화 저지 및 미디어공공성 확보를 위한 사회행동’ 등은 기자회견을 공동 주최해 “영진위가 상식적인 정책 집행 과정의 원칙을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이송희일(<후회하지 않아> <탈주>) 감독은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나 시민영상문화기구란 단체 이름은 처음 듣는다”며 “요즘 하는 걸 보면 영진위는 유령진흥위원회”라고 말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뒤 미디액트에 대한 영진위의 입장이 무엇인지, 심사위원들과 운용자로 선정된 신생단체가 영상미디어센터 관련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지 등의 의구심을 담은 질의서를 영진위에 전달했다. 1월29일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또 한 차례 기자회견을 열어 항의의 뜻을 전달할 계획이다.

한독협 세력이냐가 유일한 잣대?

영상미디어센터는 “시민영상창작과 독립영화제작 활성화”를 목적으로 교육 프로그램과 영상기자재를 제공하는 지원기관이다. 2000년 2월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의 설립 제안을 영진위가 받아들였고, 2002년 5월9일 광화문 사거리 일민미술관 5층에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가 마련됐다. 매년 2천명이 넘는 수강생을 배출한 미디액트는 정회원 수만 6천명, 온라인 회원 수는 3만명에 달한다. 천안, 제주, 주안 등 국내 12개 지역영상미디어센터의 거점이자 미국, 일본, 타이 등 해외 영상미디어센터들과의 교류 또한 활발하다. 미디액트 이주훈 사무국장은 “오죽했으면 담당 실무자에게 우리가 왜 안되는지 설명이라도 해달라고 했겠느냐”면서 “사업을 사업으로 보지 않고 한독협 세력이냐 아니냐라는 어이없는 잣대로만 나눠서 심사가 진행된 것 같다”고 말했다.

영진위가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침을 받아 기존 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하면서 이같은 시비는 예견되어왔다. 영상미디어센터, 독립영화전용관 운영자 선정 역시 “공모제는 사실상 특정 단체에 특혜를 주기 위한 방편”이라는 비아냥을 면키 어렵다. (사)시민영상문화기구와 (사)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를 이끌고 있는 이들은 대표적인 보수 인사들이다. (사)시민영상문화기구를 주도하고 있는 이는 홍익대학교 김종국 교수. 뉴라이트 계열인 한국문화미래포럼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발족한 (사)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는 독립영화감독인 최공재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데, 과거 스크린쿼터 축소 찬성 및 <디 워> 옹호 발언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종국 교수는 지난해 영진위가 실시한 ‘2008년 미디액트 실적평가’에 위원으로 참여해 “혼자서만 50점 이하의 점수를 매겨” 내부적으로 물의를 빚었다.

정치적 이념이 중요한 건 아니다. 영진위가 공모에 응한 단체들의 사업 능력을 공정한 기준에 따라 진행하면 아무 탈이 없다. 하지만 영진위가 내놓은 심사총평만으론 왜 미디액트가 탈락하고, 시민영상문화기구가 선정됐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영상미디어센터 운영 구성원의 전공분야가 매우 적합하게 이뤄졌고, 장비 운영계획도 구체적으로 기획됐다. 특히 영상미디어센터의 운영 방안이 영화와 깊이 관련되어 있으며, 첨단영상인 HD와 3D 교육까지 검토되고 있어 높이 평가된다.” 이게 전부다. 심사위원들 또한 직접적인 답변을 회피했다. 김시무 영화평론가는 “심사총평 외에 개인 의견을 따로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복환모 심사위원장도 “모두의 의견을 종합해서 결정한 것”이라면서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는) 프레젠테이션 방법에 좀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답변했다.

심사 과정 또한 의혹과 허점투성이다. <씨네21>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의 경우 시민영상문화기구는 5명의 심사위원들로부터 375점을 얻어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미디액트 스탭들이 주축이 된 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다. 총점은 얼마나 차이가 날까. 불과 2점 차이다. 한 심사위원은 “과거 경력은 전혀 판단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실제 평가 기준에는 ‘동종사업 운영실적’ 등을 따져보는 사업수행능력(20점)이 포함되어 있다. “지역미디어센터와의 네트워크 구축 가능성”(10점 만점)이라는 항목도 있다. 미디액트가 지난 8년 동안 무리없이 영상미디어센터를 이끌어오면서 국내외 영상미디어센터를 연결하는 중추 역할을 담당해왔음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힘든 결과다. 영진위가 제시한 심사항목들은 사실 지난 시기 미디액트가 일군 성과들이기도 하다.

영진위의 수십억 사업에 대한 심사·심의 허점투성이

심의·의결 절차 또한 제대로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 한 영진위 위원은 “1월25일 심의·의결에 앞서 심사과정을 들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다들 난감해했다”면서 “심사위원으로 들어간 한 영진위 위원은 ‘심사 안 하면 모른다. 좋은 단체가 없어서 심사위원들의 동의하에 아닌 곳부터 걸러내기 시작했다’고 발언했다”고 전했다. 이날 회의에선 “심사총평이 너무 아마추어 같다. 수정한다는 전제 아래 표결에 참여하겠다”는 의견도 있었고, 표결 전 정회 때 한 위원은 “‘독립영화전용관은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가 위원장에게 제지당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속출했다. 이같은 정황이 사실이라면 영진위는 수억원이 집행되는 사업에 대한 심사와 심의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독립영화전용관, 영상미디어센터 그리고 그 다음 파행은 시네마테크전용관인가.

“미디액트를 쫓아낼 권한 가진 이들은 시민뿐”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김명준 소장

-결과를 받아보고 참담했겠다. =결국 이렇게 할 거면서 왜 고생을 시키는지 모르겠다. 공모 준비하느라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은 엄연히 다른데 동일 심사위원이 하나의 안건처럼 처리했다. =따로 처리하면 부담이 두배가 되니까 그랬나보다.

-심사위원들의 전문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오고 있다. =심사 때 첫 질문이 한독협이 어디 있어요, 였다. 그 다음 질문은 회원이 얼마나 돼요, 였다. 그건 한독협에 물어봐야지 왜 우리한테 물어보나. 프레젠테이션 때 다 설명했는데 질의 응답의 절반이 법인 이야기였다. 심사위원장이 질문없으세요, 질문없으세요, 네댓번은 물었던 것 같다. 정말 카메라가 있으면 생중계하고 싶었다. 질문이 나와도 문제였다. 설명을 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지난해 1차 심사 때는 프레젠테이션 잘했다면서 지금까지 미디액트는 잘해왔는데 혹시 문제가 있다면 세 가지만 말해달라는 분도 계셨다. 잘했는데 나가서 할 생각은 없냐, 나가서 하면 더 잘할 텐데라고 하는 분도 있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촌스런 질문 하나 하자. 왜 떨어졌다고 생각하나. =우리가 대답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냉전적 사고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결정이라고 본다. 냉전적 사고를 갖지 않은 사람들이 공모에 응했으니 떨어진 것 아니겠나. 누군가는 순진한 바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게 맞는 것 같다.

-공모를 왜 받아들였나. =저렇게 밀어붙이는데 응하지 않으면 당장 나가라고 할 것 아닌가. 공모제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는 강하게 했다. 다만 일상적인 활동과 교육에 차질이 있어서는 안될 것 같았다.

-지난해에 문화체육관광부나 영진위로부터 질책이 있었나. =지난해 회계감사 때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강한섭 전 위원장이나 조희문 위원장으로부터 미디액트 문제있다는 말 들어본 적 없다. 다 잘한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이러니.

-영상미디어센터 기반은 미디액트가 만들었는데 뺏긴 셈이 됐다. 지적재산권이라도 주장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일단 회원들이나 수강생들에게 미안하고 이 상황이 안타깝다. 우리도 잊고 있었던 사실이 있다. 미디액트를 쫓아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이들은 시민뿐이다.

-인권영화제와 인디포럼은 영진위의 단체사업지원에서 제외된 것과 관련 법적 소송을 준비 중이다. 미디액트는 어떻게 할 계획인가. =일단은 영진위의 운용사업자 결정 철회를 위한 싸움을 줄기차게 할 생각이다. 많은 분들이 함께하겠다고 한다. 잃은 것 같지만 우린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