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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베를린이여 배짱 좀 키우시게

<리틀 빅 솔저>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특별상영 부문은 그만두고 영화를 상영하려면 그 영화를 영화제의 중요한 일부로 지지할 배짱을 키우라. 비경쟁 부문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이는 올해 베를린영화제(2월11~21일) 라인업을 보다가 든 생각이다. 영화제 위원장 디이터 코슬릭의 9년 임기 동안 가장 크게 바뀐 구조적 변화는 (베를리날레 스페셜이라 알려진) 특별상영 섹션에서 상영하는 영화 수가 두배로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에는 13편이었던 것이 올해는 22편이 되었다. 베를리날레 스페셜은 영화제 위원장 코슬릭이 고안한 섹션으로 특별대우를 하고 싶은 영화들을 그러모아 담아두는 가방처럼 사용했다. 대개 다큐멘터리영화나 새로 복원된 영화, 때로는 잘 알려진 감독들의 그저 그런 영화 등등이 뒤섞인 섹션이었다.

올해 이 섹션에는 성룡이 출연한 <리틀 빅 솔저>와 원화평이 만든 무협영화 <소걸아>, 코슬릭 위원장이 올해로 60번째를 맞는 베를린영화제의 ‘생일 특별 영화’라 부르는 뮤지컬영화 <나인>이 상영된다.

1만6천석에 이르는 프리드리히스타트팔라스트와 시내 여러 영화관에서 이들 영화와 또 다른 인기있는 영화를 선보이면서 코슬릭은 2009년의 27만장의 티켓 판매 기록을 깨고 더 많은 티켓을 팔려 한다. 동시에 칸영화제의 팔레 상영관에 해당하는 마를렌 디트리히 팔라스트를 넘어서 다른 상영관에서도 영화제의 ‘레드카펫’효과를 노린다.

물론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영화제가 수지를 맞추어야 하고 특히 요즘은 후원자를 찾기 어려운 시기다 (후원자들은 스타와 레드카펫을 좋아한다). 그러나 코슬릭의 경쟁부문 라인업을 보면 모두 심각하고 예술적이며 정치적, 사회적으로 올바른, 정확히 유럽 아트 영화관 취향에 맞춘 영화들(스무개 영화 중 적어도 50%는 그렇다)이다. 이런 식의 영화제 프로그래밍이라면 분명 지적으로 냉소적인 것 아닌가?

아트하우스영화와 주류 상업영화의 인위적 이분법을 적용하고 있는 영화제는 베를린영화제 말고도 많다. 그러나 칸영화제, 특히 베니스영화제는 지난해 이 경계를 허물려는 실험을 했다. 경쟁부문에 오르는 영화는 심각하고 예술적인 영화여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나? 그리고 왜 미국영화에만 예외가 주어지는가?

그 대답은 비평가와 돈이다. 지난 20년간 점점 더 비평가와 언론인이 영화제 프로그래밍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들은 세련되고 예술적인 영화를 높이 평가하거나 혹은 그들 스스로 프래그래밍에 참여했다. 이렇게 해서 경쟁부문에 오르는 영화는 오락적인 면에서 더 무미건조해지는 악순환을 만들어냈다.

코슬릭의 선임인 모리츠 데 하델른은 2001년 박찬욱의 <공동경비구역 JSA>를 경쟁부문에 선택했다가 프레스 상영에서 많은 수의 관객이 걸어나가고 심각하게 부정적인 리뷰가 쏟아지는 결과를 낳았다. 영화가 ‘너무 상업적’이며 경쟁부문에 들어갈 ‘가치가 없다’는 것이었다. 칸 위원장 티에리 프레모가 2004년 박찬욱의 <올드보이>로 같은 시도를 했을 때, 이번에도 비슷한 (그러나 더 정도가 심한) 반격을 받았다. 이 두 사례는 많은 사례 중 일부에 불과하다. 2년이 지난 뒤 프레모는 봉준호의 <괴물>을 경쟁부문에서 탈락시켰고, 그 영화는 바로 감독주간이 낚아채갔다.

미국이 돈을 댄 영화는 이런 편협한 프로그래밍 관습을 넘어설 수 있다. 이 영화들 뒤에는 할리우드의 영향력과 경제력이 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를 영화제의 레드카펫에 데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프로그래밍에 차별적 기준이 적용된다고? 맞다. 이런 차별적 기준이 영화제의 이미지에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절대 아니다.

번역 이서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