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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왜 집단 자살이었습니까
이다혜 2010-02-04

<메타볼라> <부드러운 볼> 기리노 나쓰오 지음 황금가지 펴냄

박력 지수 ★★★★ 미스터리 지수 ★★★☆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에는 박력이 있다. 하나의 문이 등 뒤에서 쾅 닫혔는데 새로 열리는 문 같은 게 존재하지 않는 암흑의 공포를, 그 바닥을 기며 생존하려 몸부림치는 순간의 자기혐오를, 기리노 나쓰오는 잘 알고 있다. 기리노 나쓰오의 책을 읽다 보면 나쁜 일 다음에 더 나쁜 일을 겪게 될 뿐 아니라 심지어 그 나쁜 일의 가해자가 되어버리는 주인공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다. <메타볼라>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다. 두 남자가 오키나와의 숲에서 만난다. 독립 기숙사를 탈출한 십대 아키미쓰와 기억상실증에 걸린 이십대 긴지(아키미쓰가 지어준 이름이다). 둘은 일행이 되고, 우연히 만난 여자 집에 얹혀 지낸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 집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 두 사람은 각자 살아갈 방법을 모색한다. 여자를 좋아하는데다 요령이 좋은 아키미쓰는 호스트가 되고, 긴지는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며 스탭으로 자리를 잡는다. 어느 날 긴지는 우연한 일을 계기로 과거의 기억을 되찾는다. 그 자신은 바로 인터넷으로 만난 사람들과 집단 자살을 시도했다가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것이다.

“나는 낯선 사람들과 하얀색 차 안에서 자살을 하려고 했다. 운전석에는 렌터카를 빌려온 중년 남자. 조수석에 있는 것은 어두운 표정의 50대 여성. 그리고 뒷좌석의 내 옆자리에는 60대 후반의 노인이 있었다. ‘한 사람도 탈락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지난해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집단 자살 사건을 연상시키는 긴지의 경험은 그대로 가족 붕괴와 워킹 푸어라는 현실문제와 연결된다. 원치 않았던 음지만을 전전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청춘군상과 그들 위에 군림하는 공동체 수장들 이야기를 읽으면서 침울해지지 않기는 힘들 것이다. 멈출 수도, 다시 시작할 수도 없다. 좋은 어른도 좋은 사회도 없다. 아마도 이번 상실의 시대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메타볼라>와 함께 재출간된 <부드러운 볼>은 121회 나오키상 수상작이다. 애인과 함께 있는 동안 다섯살 난 딸을 잃어버린 여자와 그 실종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집요하게 따라가며 예상 밖의 씁쓸하고 초라한 결말까지를 서늘하게 그려냈다. 특유의 인정사정없는 이야기 진행은 기리노 나쓰오의 카리스마. 언제 봐도 오싹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