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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방의 비밀
이화정 2010-02-05

유독 집들이가 많은 달이다. 집이야 ‘잠자는 곳’이란 말은 장롱에 처박아두어야 한다. 취향대로 꾸민 집들은 어느 자동차 광고에서처럼 자신을 드러내는 하나의 도구다. 집이 주인을 대변한다면 초대받고 싶은 리스트가 한둘이 아니다. 오즈 야스지로의 방은 그의 영화 속 다다미방 같은 곳에서 살았을까. 혹은 은둔형 아티스트인 에릭 로메르의 집은 얼마나 근사할까! 이런, 모두 작고하신 분들이니 가는 건 힘들겠군.

기특하게도 <가디언>에서 내 평생 절대 초대받지 못할 것 같은 작가들의 방을 대신, 야금야금 공개해주고 있다. 앤서니 브라운의 기괴한 그림이 탄생한 작업실로 새어들어오는 한줌 빛과 버지니아 울프가 집필을 멈추고 강물로 뛰어들기 직전까지 기거했던 작업실의 엄숙함을 모두 공짜로 감상. 이중 당장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은 작업실은 단연 로알드 달의 서재였다. 동화책 쓰면서도 자기 할 말 다 했던 이 영민한 작가의 방엔 도대체 어떤 비밀이 있었던 걸까. <찰리와 초콜릿 공장> 같은 무슨 대단한 공간을 떠올리면 낭패다. 낡은 1인용 암체어 하나, 오른쪽엔 각종 물건들이 널린 책상이 전부. 지저분함 지수 80에 육박하는 이곳이 바로 로알드 달의 상상이 글로 전환되는 기적의 장소다.

이곳은 ‘아무도 방해하지 않은 신성하고도 개인적인 공간’을 원했던 로알드 달이 오로지 글쓰기만을 위해 고안한 조직적이고 기능적인 장소였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로알드 달은 모든 걸 자기 손이 닿는 범주 안에 놓아두는 묘를 발휘한다. 암체어엔 목을 받칠 수 있는 쿠션이 장착되어 있고, 피곤할 때 발을 올려놓을 수 있는 슬리핑백이 있다. 글쓰기는 팔걸이를 가로질러 올려놓은 판 위에서 진행했다. 이 판 위엔 항상 글을 쓰는 노란 종이와 연필 한 움큼이 개비되어 있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는 시점은 연필을 다 깎고 나서부터. 아침부터 점심까지의 계획된 시간 안에 그는 상상과 위트, 유머가 곁들여진 주옥같은 동화를 써내려갔다. 아 참, 마지막으로, 상상을 펼치기 위한 마지막 준비는 바로 빛이 들어오는 커튼을 모두 내려두었다는 정도.

로알드 달님, 정녕 그 정도 장치로 그 주옥같은 글들을 집필하셨단 말씀입니까? 일단 커튼부터 치고 마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