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씨네클래식
<파고> <시드와 낸시>의 로저 디킨스
2001-12-12

기록하라, 인간의 내면을

“영화를 광적으로 좋아했다. 형과 함께 3∼4마일은 족히 되는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비를 맞으면서도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단체에도 가입했는데, 그 당시 피터 와킨스의 <워 게임>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핵전쟁이 일어난 런던을 그린 영화로, 픽션임에도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주었다. 90년대까지 상영금지되었지만 어떻게 우리 단체에서 복사본을 입수하게 되었다. 상영 도중 몇몇 여자들은 기절했고, 극장을 뛰쳐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영화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 촬영감독을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때였지만, 영화가 남긴 파장은 그 세계로 나를 끌어들일 강한 동인이 되어주었다.”

<쇼생크 탈출> <파고> <쿤둔>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에 이르기까지 오스카는 4차례나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의 혁신적인 촬영기법을 주목하였고, 매번 그의 영상은 기대와 관심을 불러모으기에 충분했다. 1949년 영국 드봉의 해변 토르퀘이에서 태어난 디킨스에게 주어진 것은 작은 마을에서의 안정적인 은행업무였다. 당연시되었던 자신의 인생에 어린 나이임에도 그의 감수성은 도전장을 내민다. 배우였던 어머니는 그림에도 재능이 있었고, 이에 자극을 받은 그는 예술학교에 진학하여 그림을 배운다. 넓은 세상으로의 동경과 어우러진 이 출사표로 이후 그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게 되었고, 런던에 새로 생긴 국립영화학교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에 임한다. 자신이 바닷가 출신임을 내세워 9개월간의 험난한 촬영을 마다하지 않고 요트경기를 기록했으며, 아프리카 로디지아와 에리트리아 등의 게릴라전을 담아낸다. 카메라가 지닌 놀라운 사실감에 매료된 7년간의 다큐멘터리 작업은 그에게 인생의 중요한 경험이 되었다. 그러나 점차 사실 기록에 그치지 않고 상황에 뛰어드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그는 다큐멘터리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극영화로 발을 들여놓은 첫 작품은 <다른 시간 다른 장소>(1983)로, 국립영화학교에서부터 함께 일해온 마이클 래드퍼드와 함께였다. 이듬해 처음으로 스튜디오 촬영을 한 는 그의 촬영경력 전반에 큰 전환점이 되어주었고, 조명을 배제하고 핸드헬드 카메라에 담아낸 <시드와 낸시>로 미국 진출을 하기에 이른다. 펑크 스타일리스트 알렉스 콕스의 이 야심작은 거칠고 불안정하면서도 깊은 감정을 놓지지 않는 새로운 카메라맨의 등장을 알린 작품이 됐다. 이후 <패션 피쉬> <데드맨 워킹> 같은 인디영화를 통해 다큐멘터리에서 쌓은 순발력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상황능 빠르게 포착해 프레임 안에 재배치했으며, 적절한 시간으로 재단했다.

물론 디킨스의 필모그래피를 구성할 때 코언 형제와의 인연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기괴한 호텔 <바톤핑크>의 영상이 날카롭게 표출해낸 40년대 할리우드의 내면을 기점으로 미국문화의 면면이 속속 드러나게 되는데, 이는 코언 형제의 초기작을 영상화했던 배리 소넨필드와는 다르게 보다 사실주의적이며 즉물적인 영상을 구현한 것이었다.. 50년대 자본주의의 빌딩 숲에 터를 잡은 인간군상의 부조리한 모습을 그린 <허드서커 대리인>이나, 자연광을 최대한 살려 광활한 미네소타의 설원이라는 공간 속의 비참한 삶을 그린 <파고>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짚어볼 수 있다. 이는 때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와 같은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최근작인 코언 형제의 <거기에 없던 남자>도 컬러로 촬영한 뒤 흑백필름에 프린트하는 기존과는 사뭇 다른 시도로 다가선다. 하지만 그는 “최첨단 기술을 이용할 뿐이며 새로운 기술에 대한 집착은 없다”고 말한다. 단지 작품의 효과를 배가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될 뿐이라는 것이다. 영화에 관한한 그는 고전적인 신념을 갖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카메라를 가지고 있고 펜을 가지고 있지만 그 모든 사람들이 사진작가가 되고 위대한 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그의 논리이다. 촬영감독으로서의 그의 역할도 여기에서 찾아진다. “영화라는 것이 본래 여러 사람이 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바로 거기서 특별함을 찾을 수 있다. 컴퓨터가 작품을 만들 수 있겠지만, 그것은 이러한 종류의 영화찍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최근 그는 론 하워드 감독의 <뷰티풀 마인드>의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언젠가 그가 떠나온 다큐멘터리에 다시 도전해 보고 싶은 작은 바람을 피력하기도 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세계에서 타블로이드판 신문과 같은 구실밖에 해내지 못하는 다큐멘터리에 본래의 기능을 되찾고 싶은 심정에서이다.

이화정/ 자유기고가 zzaal@hanmail.net

Roger Deakins 필모그래피

촬영

<하얀 바다로>(To The White Sea, 2002) 조엘 코언 감독

<뷰티풀 마인드>(A Beautiful Mind, 2001) 론 하워드 감독

<디너 위드 프렌즈>(Dinner with Friends, 2001) (TV) 노먼 주이슨 감독

<거기 없었던 남자>(The Man Who Wasn’t There, 2001) 조엘 코언 감독

(Thirteen Days, 2000) 로저 도널드슨 감독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O Brother, Where Art Thou?, 2000) 조엘 코언 감독

<여기보다 어딘가에>(Anywhere But Here, 1999) 웨인왕 감독

<허리케인 카터>(The Hurricane, 1999) 노먼 주이슨 감독

<비상 계엄>(The Siege, 1998) 에드워드 즈윅 감독

<위대한 레보스키>(The Big Lebowski, 1998) 조엘 코언 감독

<쿤둔>(Kundun, 1997) 마틴 스코시즈 감독

<커리지 언더 파이어>(Courage Under Fire, 1996) 에드워드 즈윅 감독

<파고>(Fargo, 1996) 조엘 코언 감독

<데드맨 워킹>(Dead Man Walking, 1995) 팀 로빈스 감독

<롭로이>(Rob Roy, 1995) (uncredited) 마이클 케이튼 존스 감독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 1994)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

<허드서커 대리인>(The Hudsucker Proxy, 1994) 조엘 코언 감독

<비밀의 화원>(The Secret Garden, 1993) 아그네츠카 홀랜드 감독

<붉은 사슴비>(Thunderheart, 1992) 마이클 앱티드 감독

<패션 피쉬>(Passion Fish, 1992) 존 세일즈 감독

<바톤 핑크>(Barton Fink, 1991) 조엘 코언 감독

<호미사이드(Homicide, 1991) 데이비드 마멧 감독

<롱 워크 홈>(The Long Walk Home, 1990) 리처드 피어스 감독

<에어 아메리카>(Air America, 1990) 로저 스포티스우드 감독

<파운틴 오브 더 문>(Mountains of the Moon, 1990) 밥 라펠슨 감독

<라 돈나 델라 루나>(La Donna della luna, 1988) 비토 자게리오 감독

<파스칼의 섬>(Pascali’s Island, 1988) James Dearden 감독

<폭풍의 월요일>(Stormy Monday, 1988) 마이크 피기스 감독

<더 키친 토토>(The Kitchen Toto, 1987) 해리 후크 감독

<퍼스날 서비스>(Personal Services, 1987) 테리 존스 감독

<다이애나의 두 남자>(White Mischief, 1987) 마이클 래드퍼드 감독

<시드와 낸시>(Sid And Nancy, 1986) 알렉스 콕스 감독

<왕국의 비밀>(Defence Of The Realm, 1985) 데이비드 드루리 감독

<더 이노센트>(The Innocent, 1985) 존 매켄지 감독

<리턴 투 워털루>(Return to Waterloo, 1985) 레이 다비스 감독

<샤데이>(Shadey, 1985) 필립 사비에 감독

(Nineteen Eighty-Four, 1984) 마이클 래드퍼드 감독

<알란 부시: 라이프>(Alan Bush: A Life, 1983) 안나 앰브로스 감독

<다른 시간 다른 장소>(Another Time, Another Place, 1983) 마이클 래드퍼드 감독

<타워 오브 바벨>(Towers of Babel, 1981) 조너선 루이스 감독

<스테핀 아웃>(Steppin’ Out, 1979) 린달 홉스 감독

<비포어 하인드사이트>(Before Hindsight, 1977) 조너선 루이스 감독

<웰컴 투 브리테인>(Welcome to Britain, 1976) 벤 루윈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