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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scope] 놓쳐버린 인연과 함께 찾아온 아이

민용근 감독의 <혜화, 동(童)> 고양시 촬영현장

털이 숭숭 빠진 노란 개 한 마리가 곁을 맴돈다. “줄 게 없는데 어떡하냐.” 사진기자의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꼬리를 몇번 흔들던 황구는 재빨리 녹색 대문 집으로 뛰어들어간다. 제작진이 모두 점심을 먹으러 간 사이, 황구의 급습은 촬영용 소품을 지키던 스탭에겐 비상 상황. 얼마 지나지 않아 이름 모를 황구는 촬영현장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인적 드문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향동동. 철거가 한창 진행 중인 이곳은 민용근 감독의 <혜화, 동(童)>의 보금자리다. 극중 혜화(유다인)는 동물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로 버려진 개들을 돌보며 살아간다. 아까 그 황구도 혹시 영화에 나오나 싶었는데 “철거촌의 버려진 유기견”이란다. <혜화, 동> 제작진이 공개한 오후 촬영은 혜화가 탈장된 개를 유인하기 위해 치킨 조각을 놓다 케이지에 본인 머리가 끼는 장면부터 시작했다. “입술이 눌렸네” “눈이 철창에 가렸어” “조금 더 놀라는 느낌을 주고”. 민용근 감독의 ‘슛’과 ‘컷’은 한숨 돌릴 틈도 없이 계속된다. 바닥에 엎드려 좀처럼 허리를 펴지 못하는 유다인의 코는 촬영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 새빨갛다. 심현우 프로듀서에 따르면, <혜화, 동> 촬영장에선 “쉬는 시간이 거의 없다”. 세세한 지시사항까지 콘티에 빼곡히 적어놓은 민용근 감독의 욕심을 달래기에 겨울의 한낮은 유독 짧다.

<혜화, 동>은 단편 <도둑소년>, 옴니버스 <원 나잇 스탠드> 등을 연출한 민용근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다. “미혼모였던 혜화가 죽은 줄 알았던 자신의 아이가 살아 있음을 알게 된 뒤 겪는 갈등”이 주된 줄기다. 방송 다큐멘터리 작업을 할 때 만났던 인물의 실루엣에서 영화의 얼개를 떠올린 민용근 감독은 “거창한 건 아니고. 놓쳐버린 인연, 다시 붙잡은 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혜화의 과거 속 깊은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이는 아이가 생긴 뒤 혜화 곁을 아무 말 없이 떠났던 과거의 연인 한수(유연석). 혜화와 한수의 첫 대면장면을 앞둔 리허설, 유다인이 “감독님, 진짜 때려요?”라고 묻자 민용근 감독은 “때려본 적 없어? 맞아본 적은 있고?”라고 웃으며 되묻는다. 유연석은 “맞아본 적 많으니” 걱정 말라는데, 두 번째 테이크까지 유다인은 헛방을 날린다. 그리고 이어진 세 번째 테이크. 이번엔 정말이지 유다인이 허리까지 돌려가며 유연석의 뺨을 날리는데, ‘컷’ 소리와 함께 터져나온 스탭들의 이구동성. “금방 주먹으로 때린 거 아니야?” 얼마 뒤 모니터를 돌려보던 제작진의 입에선 ‘오!’ 하는 탄성이 나오고, 민용근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진다. 황폐한 철거촌만큼 가난한 마음의 청춘들은 자신들의 덧난 상처까지도 어루만질 수 있을까. 서울영상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작으로 10월 개봉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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