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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유 캔 카운트 온 미>
2001-12-12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흐르지 않더라도 충분히 평온해 보이는 뉴욕 북부의 작은 마을 캐츠빌. 은행원 새미(로라 리니)는 여덟 살배기 아들 루디(로리 컬킨)를 홀로 키우는 미혼모다. `수업이 짜임새가 없다`는 식의 `비평'을 늘어놓기 일쑤인 조숙한 아들을 방과후 보모의 집에 데려다줘야 하는 새미는 오후 3시쯤 반드시 한차례 은행을 `땡땡이'쳐야 한다. 새로 온 지점장 브라이언(매튜 브로데릭)은 젊은 사람인데 공연히 깐깐하다. 새미의 땡땡이가 당장 들통난 건 물론이다.

인생엔 늘 재앙과 구원이 함께 몰려온다. 몇 달씩 소식이 없던 남동생 테리(마크 러팔로)가 돌아온 것이다. 알래스카에서 플로리다까지 남북을 종횡하며 이런저런 사고도 친 모양이고, 무엇보다 돈 빌리러 온 궁색함이 꺼림칙하긴 하지만, 당장 `루디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새미는 테리가 반갑기만 하다.

루디는 난생 처음보는 삼촌 테리에 대한 호기심을 억제하지만, 금세 남자들의 세계에 빠져든다. 낚시까지는 좋았지만, 이 아이를 당구장과 술집에까지 데려간 건 새미가 보기에 심했다. 무엇보다, 이웃 마을에 살고 있던 친아버지에 대한 환상을 산산조각내고 만 사건의 상처는 두 남매와 루디 모두에게 너무 깊었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뒤 고아로 자란 남매 새미와 테리는 대조적인 삶을 살아왔다. 새미는 추억이 밴 고향 마을을 벗어난 적이 없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부모가 남긴 것이다. 테리는 줄곧 세상을 떠돌며 살아왔다. 성당도 나가고 안정된 직장도 가진 새미는 테리의 삶이 너무도 불안정하다고 충고하고 싶지만, 겉으로 드러난 안정감과 달리 뜻밖의 연애사건 따위로 기우뚱거리는 건 일쑤 새미의 발걸음이다.

영화는 남는 삶에 대해서도 떠나는 삶에 대해서도 고루 따뜻한 시선을 던진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하나의 인생이라고 말하려는 듯하다. 물론 남는다고 인생이 잘 풀리는 것도, 떠난다고 희망찬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들 남매의 모습이 행복에 겨운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가족 사이의 따뜻한 유대감이 충분히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가족이 만사를 해결해준다는 식의 공허하고 안이한 가족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작품은 아니다. 유머 사이로 눈물이 흐르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관객이 즐길 감정의 여분을 충분히 남겨두고 있다.

영화 <애널라이즈 디스>의 각본을 쓴 브로드웨이 극작가 출신의 케네스 로너건이 직접 각본을 쓰고 감독했다. 2000년 선댄스 영화제 대상, 각본상. 14일 개봉.

이상수 기자lee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