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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난 뒤] 두 예술가의 내면을 훔치다
심은하 2010-02-25

<모차르트!>

발레 <차이코프스키-삶과 죽음의 미스터리> 뮤지컬 <모차르트!> 공연 종료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좋아한다. 우울할 때 같이 울어주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이 곡의 작곡가가 동성애 성향을 가졌다는 이야기는 이 공연을 보고서야 알았다. 러시아 안무가 보리스 에이프먼이 1993년 만든 이 작품은 연극적인 요소가 강하다. 에이프먼은 러시아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고뇌를 ‘분신’이라는 가상의 캐릭터를 등장시켜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 맞춰 발레로 표현해낸다.

이 작품에서 차이코프스키를 괴롭하는 가장 큰 원인은 그의 성적 정체성이다. 그래서인지 분신과 사랑의 춤이라도 추는 듯한 고뇌에 찬 남성 2인무는 가장 눈길을 붙드는 장면이다. 둘은 같은 옷을 입은 채 5번 교향곡이 흐르는 1악장에서 춤춘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우울함과 내면의 심리를 압축시켜 한몸으로 표현해주었다.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2막의 4악장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6번 B단조인 <비창>으로 시작된다. 술과 도박에 빠져 있는 차이코프스키의 모습과 카드놀이를 하는 발레리노들의 군무는 탁자를 이용한 안무가 인상적이다. 남성 무용수의 진면목을 봤다고나 할까.

미처 몰랐던 차이코프스키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흥분도 있고, 그의 대표작인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스페이드의 여왕> 속 주인공을 색다르게 만나는 재미도 있었다. 다만 이상하게 마지막 악장에서 <비창>이 들려올 때 눈물이 나지 않았다.

이보다 일주일 앞서 또 한명의 위대한 작곡가를 이번엔 뮤지컬로 만났다. 뮤지컬 <모차르트!>는 국립발레단이 올린 발레 <차이코프스키-삶과 죽음의 미스터리>와 몇 가지 닮은 점이 있었다. 하나는 이 작품 또한 모차르트의 내면을 탐구한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그의 천재성을 대변하는 또 다른 자아가 등장한다는 것.

뮤지컬 <모차르트!>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세계적인 극작가인 미하엘 쿤체의 작품이다. 쿤체는 짧지만 굴곡 많았던 모차르트의 인생을 묘사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유분방한 청년 볼프강과 어린 자아 아마데를 나란히 무대에 올렸다. 참신한 해석이다. 그러나 화려한 18세기 바로크 의상을 입은 배우들 속에서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모차르트(임태경)의 연기는 묘한 이질감을 준다. 그 간극을 팝과 록 음악을 활용한 뮤지컬 넘버들,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서범석)와 영주 콜로레도(윤형렬), 그리고 발트슈테텐 남작부인(신영숙)이 상당수 메워준다. 하지만 길다. 2막29장으로 잘게 쪼개진 구성은 모차르트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를 분산시켜버린다. 영화 <아마데우스>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관람을 훼방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