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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인터뷰] <추노>의 언년이
김도훈 2010-03-03

하늘이 내 미모를 돕지 뭐야

-언년씨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시옵니까.

-아뇨. 안녕하지가 못해요. 저뿐만이 아니에요. 전국 수십만… 수백만인가? 여튼 전국의 시청자가 별로 안녕하지가 못해요. =대체 왜 그러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사옵니까.

-지금까지 자기가 저지른 일도 기억 못하시나봅니다. 그럼 요즘 유행한다는 ‘언년이 때문에’ 리스트 좀 발췌해보죠. 언년이 때문에 대길이 집 망했죠. 언년이 때문에 시골노인집 헛간 부서졌죠. 언년이 때문에 데니안 칼 맞고, 대길이도 칼 맞았죠. 언년이 때문에 데니안은 죽고 대길이는 폐인됐죠. 언년이 때문에 언년이 오빠 죽었죠. 언년이 때문에 송태하는 세자도 버리고 연애질이나 시작했죠. 한시가 바쁜데 언년이 때문에 배도 빨리 못 띄워, 언년이 때문에 사람들은 다 죽어… 하여간 이게 다 언년이 때문이라는 거죠. =그게 왜 모두 제 탓이옵니까. 소녀에겐 너무나 가혹한 말씀이시옵니다.

-전 그런 말투도 싫어요. 에둘러 말하지 말고 좀 직설적으로 팍팍 말해봐요. =도련님. 저로서는….

-전 그쪽 도련님 아니거든요? 도련님은 무슨. 도련님 되기에는 나이도 너무 들었다고요. 제가 오지호씨보다 한살 많은 거 알아요? 막상 말하고 나니까 좀 슬프네. =피부 나이를 보니까 딱 알겠던데요. 하여간 해명할 기회를 주셔야죠. 저도 저 때문에 사람들 죽어나가고 태하씨 연애질이나 하고 대길씨 미친놈 된 거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 제 탓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요? 왜? 뭔 이유라도 있어요? =이유. 있습니다. 있고 말고요. 문제는 이겁니다. 제가 너무 예쁘다는 거요. 하늘이 제 미모를 돕더라고요. 노비 시절에는 이상하게도 다른 노비들 얼굴에는 묻어나는 땟국물과 진흙이 제 얼굴에만 닿으면 저절로 미끄러져 사라지더라고요. 분을 안 발라도 아침에 일어나면 곱게 자연분이 발라져 있고요, 심지어 입술에는 내추럴 핑크색 립글로스가 자연발생하더이다. 이렇게 하늘이 내리고 지키고 가꾸는 미모라 저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멍…) =역시 반하셨군요. 하지만 저는 남편이 있는 여인이옵니다. 함부로 반하지 마세요. 내 미모에 반해서 전화했다간 호통을 들을 것이야!

-네. 네. 전화 안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전화도 없잖아요. =속내를 숨기시긴. 그런데 영화 캐릭터만 만나시더니 웬일로 저를 부르셨나이까.

-요즘 개봉영화 중에 쓸 만한 캐릭터가 별로 없더라고요. 그러다보니 마감도 빨리 못하겠고, 뭐라도 하긴 해야 해서 언년씨를 불렀습니다. 요즘 문석 편집장이 독기가 오르셔서 마감 빨리 하라고 닦달이 심하거든요. <셉템버 이슈>를 봐서 그런가. =뭐 그런 거 아니겠사옵니까. 임금이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는 건 아니지요.

-뭔 소리여. =양반이 다 사라지고 노비만 남는다고 평등한 세상이 오는 건 아니거든요.

-기자들이 다 노비라는 소리? =행색을 보아하니 노비랑 다를 건 별로 없네요. 옆자리 정 노비는 슬리퍼 좀 바꿔신으라고 해주세요. 대체 몇년째 같은 슬리퍼랍니까. 조선 백정들도 짚신은 철마다 갈아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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