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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영화제도 애국주의 타령?

2009년 칸영화제

영화계에서 단순하고 오래된 애국심- 아니, 대부분의 경우, 아무 생각없는 호전주의- 이 발휘하는 힘은 여전히 놀랍다. 이런 현상은 시상식이나 영화제 같은 국제적 이벤트에서 두드러진다. 소고기에 대한 무역 분쟁이나 전염병에 대한 국제적인 공포에서 그렇듯, 이른바 세계촌에 살고 있다는 지금 시대에도 이런 애국심은 뿌리 깊을 뿐 아니라 너무나 지역적이고 편협한 태도를 드러낸다.

요즘 세상에서는 전쟁터에서 싸우는 대신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이벤트를 통해 애국주의 에너지를 발산하곤 한다. 기본적으로 소규모의 문화 전쟁인 영화제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자들은 자국의 영화를 크게 보도하고(자국의 영화가 별로 없는 영화제는 아예 취재를 안 하기도 하고) 영화제는 자국의 영화를 선전하기에 바쁘다.

따라서 진정하고 객관적인 의미에서 ‘국제적인’ 영화제란 없다고 할 수 있다. 칸영화제는 프랑스 회사가 투자하거나 프랑스 세일즈 혹은 프랑스 배급 회사가 붙은 영화를 드러내놓고 선호한다. 베를린도 점점 더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번 베를린영화제의 영화 중 3분의 1은 독일 회사가 관여한 영화였다. 베니스도 마찬가지로 지난해 상영된 영화의 4분의 1이 이탈리아 회사가 관여한 영화였다. 북미에서 선댄스영화제는 순수하게 미국영화제였고 최근에야 국제영화 섹션을 만들었다. 토론토영화제는 대규모 캐나다영화 섹션으로 악명 높으며, 캐나다와 관련된 내용이나 캐나다 사람이 관여한 영화면 어떤 영화든 선호한다.

영화제가 국제 홍보를 위해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영화감독들은 애국적인 성향을 갖도록 영화제에 압력을 넣기도 한다. 그리고 다수의 프리미어 영화를 확보할 수 없는 소규모 영화제들은 외국 기자들이 참석할 이유를 주기 위해 자국영화를 많이 상영한다. 외국 기자들은 그 나라의 한해 영화 상황을 편리하게 한눈에 볼 수 있고 신선한 기삿거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영화제에 참석하고자 한다. 그 덕분에 영화제는 국제적인 유명세를 얻게 된다.

80년대 홍콩영화제, 90년대 부산영화제를 비롯해 유럽과 남미의 많은 영화제가 이런 식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나라들의 특정 영화감독들은 자신의 영화가 주목받기 시작하면 더이상 자국 영화제들에 영화를 주지 않고 바로 최상위 다섯개 영화제에 영화를 보낸다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근시안적일 뿐만 아니라 이해하기 어렵다. 그 영화감독들이 더이상 각광을 받지 않게 되는 때가 오면 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은 기자와 평론가들이 수준이 안되는 자국영화를 무조건 지지할 때다.

20여년 전 <버라이어티>에 평론을 쓰기 시작할 때, 나는 영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영국영화를 지지하지는 않겠다고 결심했다. 더군다나 <버라이어티>는 미국영화 산업지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래서는 안됐다. 그때는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이 성공하기 전, 영국영화가 한동안 바닥을 치고 있을 때였다. 객관적으로 쓴 영국영화 리뷰들 때문에 나는 많은 미움을 받았다. 영국과 해외의 어떤 동료들은 그들이 자기 나라 영화를 지지하듯 나 역시 영국영화를 지지할 ‘의무’가 있다고 말하곤 했다.

최근 영화제에서 어떤 기자는 아주 소국인 자기 나라의 영화가 대상을 받았다고 기뻐했다. 나는 그 영화가 극소수 사람들만 보게 될 소규모 아트영화라서 이런 대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 친구는 그 말에는 동의했지만, “그래도 최소한 그 영화에 대한 특집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번역 이서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