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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이제는 뤽 물레를 알아야 할 때

<뤽 물레 작품집> 6 Films de Luc Moullet

1966~92년 | 뤽 물레 | 552분 | 1.37:1 스탠더드(<소녀는 총이다> 1.66: 아나모픽, <업 앤 다운> 1.66:1 레터박스) | DD 2.0 프랑스어 | 영어 자막 | 블라크아웃(프랑스, 4장)

화질 ★★★ 음질 ★★☆ 부록 ★★★☆

1950년대에 ‘카이에 뒤 시네마’에 글을 쓰다 이후 감독이 된 사람 가운데 현재까지 연출과 비평을 병행하고 있는 유일한 인물은? 쉬운 질문의 어려운 답은 ‘뤽 물레’다. 조너선 로젠봄을 비롯한 극소수 평자와 <카이에 뒤 시네마> 동지의 열광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물레는 우리에게 여전히 낯선 이름이다. 누군가는 가치관의 이유를 들어 지지를 거부했고, 제작자는 돈을 낭비하는 상업영화를 공격하는 물레에게 무관심했으니, 결국 관객은 수십년 동안 그의 영화를 볼 기회를 잃었다. 하지만 시간은 길을 찾아가는 법. 2008년, 미국과 프랑스에서 물레의 작품집과 단편모음집 DVD가 나와 모니터로나마 그의 영화를 볼 수 있게 됐다.

10편의 단편을 수록한 모음집도 좋으나, 물레를 제대로 알현하자면 아무래도 작품집이 낫다. 박스 세트에다 6편의 장편영화와 1편의 중편영화를 실었는데, 파리로 도착한 같은 이름의 두 시골 소녀의 만남, 좌충우돌 도시생활, 이별을 다룬 장편 데뷔작(이자 새뮤얼 풀러, 클로드 샤브롤, 에릭 로메르, 앙드레 테시네가 특별 출연한) <브리지트와 브리지트>(1966), 밀수를 매개로 만난 한 남자와 두 여자가 가상의 국경지대에서 벌이는 기이한 모험담 <밀수범들>(1967), 서부영화와 로맨스와 심리극의 결합 속으로 누벨바그의 얼굴 장 피에르 레오를 밀어넣은 <소녀는 총이다>(1970), 남녀의 성적 관계를 영화와 현실의 문제로 확장하는 <관계의 해부>(1975)는 대략 초기작에 해당한다.

음식이 생산, 유통, 소비되는 과정을 통해 문화와 경제와 착취를 분석하는 작품이면서, 물레 영화의 한 영역인 다큐멘터리를 대표하는 <식사의 기원>(1978), 감독 자신의 옛 모습인 <카이에 뒤 시네마>의 젊은 평론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시네필의 황금시대를 즐겁게 추억한 <알카자르극장 작전>(1989), 알프스 자전거 경주에 참가한 인간 군상의 성격, 취향, 태도, 적응방식 등으로 현대사회를 은유하는 <업 앤 다운>(1992)은, 간혹 엉성하고 빈약하다는 비판을 듣는 물레 영화의 또 다른 면목을 보여준다(일례로 <업 앤 다운>은 현대영화가 놓치고 있는 영화의 영계로 관객을 이끈다). DVD 박스 세트는 여기에 더해, 다큐멘터리 작가 제라르 쿠랑이 연출한 <뤽 물레: 황야의 남자>(54분)를 부록으로 제공한다.

물레의 영화에는, 버스터 키튼의 신선한 슬랩스틱, 하워드 혹스의 넉넉한 인간미, 자크 타티의 유쾌한 풍자, 오타르 이오셀리아니의 짓궂은 유머가 공존한다. 그러나 그의 영화를 특징짓는 첫 번째는 ‘청빈한 얼굴의 광기’이며, 바로 그것으로 인해 물레는 포스트 누벨바그의 아이들인 장 외스타슈, 필립 갸렐과 연결된다(물레와 외스타슈는 서로의 영화에 참여하기도 했다). 물레는, 누벨바그영화의 세련되고 지적인 도시 풍경을 담는 대신 산과 황야 같은 자연을 누볐고, 농부의 자손으로서 얻은 가난함의 교훈을 떳떳이 내세웠으며, 가족의 정신 병력이 낳은 광기를 머릿속에 억누르면서도 또 한편으론 영화의 귀퉁이에다 심어놓았다. 그런 점에서 <소녀는 총이다>와 <관계의 해부>의 급변하는 후반부는 물레 영화의 진경이라 하겠다.

“내 영화는 가식, 허세, 야단법석을 제거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모든 걸 가림으로써 백지의 순진무구한 상태를 만든다”라고 말했던 그는 “아내를 죽일까봐, 딸을 강간할까봐 평생 우려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말 그대로, 물레의 영화는 포복절도할 코미디와 잔혹한 비극의 뒤틀린 결합체이고, 그런 의미에서인지 로젠봄과 장 뤽 고다르는 물레를 ‘아방가르드 B급영화의 성자’, ‘브레히트가 해석한 쿠르틀린’으로 각각 정의한 바 있다. 글을 쓰던 중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이번 전주영화제에서 물레의 신작 다큐멘터리 <광기의 땅>이 상영된다고 한다. 그야말로 1순위 기대작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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