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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주의 섬세함을 옹호하다] 배우 최광덕의 리얼리티 순정
김경주(시인) 2010-04-23

스크린과 무대를 오가며 20년 배우로 살고 있는 한 남자에 관하여

아마도 여러분 중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에서 민자영의 오빠인 민승호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서 악기점 사장 역을 기억하는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열혈남아>의 칼 맞는 두목 역과 <야수>의 박용식을 <천군>의 오랑캐 부족장 역을 기억하는 일도 드물 것입니다. 영화 <강철중: 공공의 적1-1> 재밌게 보셨죠? 거기서 수많은 깡패 중 하나가 나입니다. 나는 배우입니다.

나는 영화에선 3초와 10초 사이의 배우입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단역이라고 그것을 부르는 모양입니다. 수많은 오디션을 보았지만 내 역할은 항상 초 단위 속에 주어졌습니다. 지금까지 20여편의 크고 작은 영화에 출연했지만 내가 출연한 시간은 모두 합해도 10분이 되지 않습니다. 먼 훗날 내가 출연한 모든 영화의 시간들만 묶어서 영화를 만든다면 이 세상에는 없는 희귀한 장르가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부끄럽지도 실망하지도 않습니다. 내게 주어진 몇초가 나의 엄혹한 현실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배우는 영화의 몇 시간을 갖기도 하고 어떤 배우는 몇분을 갖기도 하고 어떤 배우는 몇초를 갖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건 그 배우가 필름 속에서 차지하는 시간일 뿐입니다. 배우는 시간을 채우는 사람들이 아니라 시간을 만드는 자입니다. 영화에서 역할이라는 것은 시간이 차지하는 비율이 아니라 배우가 몰입하는 상태 같은 것입니다.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것을 연기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나는 내가 출연한 작품 속에서 나를 찾아내지 못할 때마다 입을 틀어막고 그 믿음에 나를 귀속시키려고 했습니다. 감독이 나에게 준 시간은 몇초에 불과하더라도 나는 배우로서 그 시간을 감당하기 위해 영화 속에선 보이지 않는 그 인물이 살았던 시간을 상상하며 역할에 임해왔습니다. 그것은 감독님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영화 속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수많은 오디션을 보아왔습니다. 나는 내가 등장한 몇초를 내 남은 일생 동안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을 유일한 관객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나를 단역이라고 부릅니다

나는 20여년을 연극배우로 살아왔습니다. 나는 맥베스가 되어보았고 연극 <오셀로>에서 케시오가 되어보았고 연극 <공후인>에서 백수광부가 되어 죽음을, 사랑을 울부짖은 적도 있습니다. 나는 정조 대왕도 되어보았고 왕건도 되어보았고 머리를 삭발하고 경원 스님도 되어보았습니다. 수많은 역할이 내 육체를 사용하다가 떠났고 수많은 감정이 내 육체를 빌려서 자신을 달래다가 갔습니다. 나는 수많은 무대를 기억합니다. 나는 국립극장 달맞이극장의 무대를 기억하고 나는 십여년 동안 연극을 배우던 극단 무천의 연습장을 기억하고 나는 유시어터극장의 <홀스또메르> 포스터를 기억합니다. 나는 명동 삼일로 창고극장의 대기실을 기억합니다. 나는 사다리아트 세모극장의 무대를,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의 야외무대를, 요즘은 존경하는 한 연출가 선생님의 말씀이 자주 떠오릅니다.‘배우는 무대를 기억하려는 몸을 갖고 태어난다.’ 한편의 공연이 시작될 때 무대의 계절과 무대 아래에는 다른 계절이 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야 그 계절은 서로를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배우는 무대 아래의 계절로 내려오고 무대의 계절은 천천히 사라져갑니다. 그건 환절기 같은 것입니다. 배우는 자주 환절기를 겪어야 합니다. 나는 그것을 압니다. 나는 배우입니다.

얼마 전 나는 독립영화 한편을 찍은 적이 있습니다. 주연이었습니다. 제목은 <영웅 슈퍼맨>(이광수)입니다. 실직당한 한 사십대 사내가 노숙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슈퍼맨 복장을 하고 놀이공원 앞에 서 있습니다. 아이들이 다가와 슈퍼맨에게 사인을 해달라고 합니다. 놀이공원 매니저가 뒤로 데려가더니 내일도 나와달라며 몇푼 손에 쥐어줍니다. 이거다 싶어서 다음날도 슈퍼맨은 일찍 일어나 놀이공원으로 갑니다. 아뿔싸! 저쪽에 배트맨이 보입니다. 울트라맨도 보입니다. 청량리역 옆에서 누워 자던 원더우먼도 보입니다. 영웅들끼리 싸움질이 일어납니다. 슈퍼맨은 결국 경찰서에 끌려갑니다. 대충 그런 내용입니다. 나는 그 영화를 찍는 동안 낮에는 촬영을, 밤에는 안전모를 쓰고 지하철 선로공사를 했습니다. 첫 지하철이 출발할 즈음 선로작업은 끝났습니다. 지하철이 낮에 오가는 시간 동안 나는 슈퍼맨이 되었습니다. 나는 촬영을 하는 동안 많이 낄낄거렸습니다. 감독님은 내 역할의 정서를 ‘당신이 웃는 건 웃는 게 아니야…’라고 말해주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나는 고향 군산에서 처음 보았던 영화 <장마>가 많이 생각났습니다. 윤흥길 작가의 원작에 황정순 선생님이 나오시던 그 영화를 보고 영화를 동경하고,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오발탄>의 대사를 혼자 외워보고 제임스 딘의 사진을 지갑 속에 넣고 다니던 십대를. 자주 생각했습니다. 나는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을 읽었습니다. 거울 속에서 나는 셰익스피어 빼고는 모든 역할이 되어보았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내 방의 거울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하는 배우였습니다.

무대가 그리워서 죽을 수도 있는 짐승

나는 연극을 하기 위해 집을 나와 에어컨 설비사로 일했습니다. 쇠파이프를 건물로 옮기고 밀링머신으로 구멍을 뚫어 홈을 파고 파이프의 암컷과 수컷 짝을 끼워 맞추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그 시절을 떠올리면 작품 속 대사들을 중얼거리며 파이를 들고 건물의 위아래로 뛰어다니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연극을 하기 위해 대학병원 응급실 주차관리를 하면서 죽어가는 사람을 이동하는 일도 오래 했습니다. 위급한 환자를 옮기다가 내 앞에서 죽어버린 사람을 본 적도 있었습니다. 나는 연극을 하기 위해 새벽에 인력시장에 나가 수도 없이 누군가 나를 데려가주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장례식장에서 남의 상여를 대신 메어주는 일도 했습니다. 망자가 누군지도 모른 채 일당을 받고 그 사람을 무덤까지 데려가는 일은 돈을 받을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죽은 자의 입장이야 따로 있겠지만 산 자의 편에서 보자면 그들의 몸을 나르는 일은 일종의 놀이 같기도 했습니다. 나는 ‘이 길은 지금 무대이고 나는 지금 퍼포먼스를 하는 거라고’라고 그 시절의 침묵을 견디곤 했습니다. 연극을 계속하기 위해 다단계에 들어가 돈을 좀 모을 생각으로 열심히 교육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하지만 내 삶으로 다른 사람을 속이는 연기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포기했습니다. 연극을 그만둘까 생각하고 나는 형님이 하시는 세탁소 일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연극을 하면서 배웠던 판소리와 구음으로 목청을 돋우며 하루 종일 동네를 뛰어다니며 ‘세탁!’ 을 외치곤 했습니다. 하지만 창문들은 깊게 닫혀 있기 일쑤였습니다. 나는 무대가 그리워서 죽을 수도 있는 짐승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나는 얼마 전 개명을 했습니다. 최경원이 최광덕으로 변했습니다. 아내가 원했기 때문입니다. 배우란 어차피 수많은 이름을 갖다가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지고 물컹 까닭없이 희망이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섰던 수많은 무대들은 내 이름을 모두 기억할 거야. 나는 오늘도 오디션을 보기 위해 아들을 재우고 집을 나섭니다. 내 지갑 속에는 아직도 낡은 제임스 딘 사진 한장이 있습니다. 꿈꾸는 자는 자신의 삶을 마중나가는 자들입니다. 나는 배우 최광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