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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essional] 필름 목욕시키시게요? 맡겨주세요
이화정 사진 이혜정 2010-05-20

한국영상자료원 아키비스트 조해원씨

조해원씨는 한국영상자료원에 속한 아키비스트다. 아키비스트 전문 육성 과정이 없다보니 보통 아키비스트는 현장 경험이 많은 경력자들이 대부분이다. 2007년 입사, 1980년생인 조해원씨는 전문 아키비스트로는 그만큼 시작이 빠른 전문가다. 어릴 때 옆집 사는 누나가 부산극장 매표소 직원이어서 이른바 뒷문 입장을 하면서 영화에 관심을 가졌다는 그는 전형적인 시네키드로 성장했다. 남들이 영화를 만드는 데 열중할 때 그는 특이하게도 기술적인 부문에 관심을 가졌고, 지금의 전문 아키비스트로 성장했다. “고정급 받으면서 영화일할 수 있으니 행운이다”라며 자신을 부러워하는 친구들도 많지만, 최연소 국내 아키비스트로서 그는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필름 아키비시트의 역할은 무엇인가. =영상자료원의 보존기술센터에 속해서 일하고 있다. 우리팀은 수집된 필름이나 기증, 제출된 필름들을 분류작업하고, 필름 보존캔을 교체한다. 또 산화방지 약품 투입을 비롯하여 보존고 점검, 온습도 유지 관리도 모두 한다. 난 특히 세부적으로 필름 세척을 한다. 일종의 오염된 필름을 목욕시키는 일이다.

-아키비스트로서 특별히 전문 교육을 받았나. =해외와 달리 국내에 필름 아키비스트를 양성하는 전문 교육 기관은 따로 없다. 미디어 관련 전공을 했고, 졸업하고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필름 점검 보수 일을 아르바이트로 하면서 필름과 인연을 맺었다. 주말에 영사기사님이 이동영사사업을 하셨는데 그때 함께 다니면서 많이 배웠다. 이후 전주, 부천, 제천 등 영화제에서 계약직으로 필름 관련 일을 했다. 20대부터 필름이 내 일상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아키비스트의 경우 경력이나 나이가 꽤 많은 편인데 일찍 일을 시작한 편이다. 선배들이 나를 보고 특이한 경우라고 한다. 원래 관심은 있었지만, 워낙 자리가 나지 않는 직업이다. 그런데 계약직으로 일하던 중 자리가 생겼고 정식으로 입사할 수 있었다. 지금도 정직원 후배는 아직 없으니 내가 막내인 셈이다. 현장에서 경험이 많은 선배들의 노하우를 습득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후배들에게 이 기술을 체계적으로 알려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동시에 있는 위치다.

-이 일의 보람을 찾는다면. =기증받은 필름들의 경우 필름 캔을 열어보면 기름 덩어리인 경우도 있고, 손상이 꽤 심하다. 그런 오염된 필름을 다시 현상, 인화하기 전에 세척작업해서 깨끗하게 만들면 무척 뿌듯하다. 개인적으로 디지털 복원작업에도 관심이 있다. 복원된 작품을 칸에 출품하는 등 이 일의 기술적인 부분도 많이 발전했다. 보수와 세척으로도 안되는 걸 디지털 복원하는 일은 계속 관심을 가지고 연구할 분야다. 시행착오가 필요하겠지만 꽤 흥미롭다.

-아키비스트로 3년 넘게 일했다. 이 일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면. =지금은 필름 캔만 열어도 산화가 어느 정도 됐는지 알 수 있게 됐다. 내가 이 정도니 선배님들은 나보다 훨씬 더 감이 있으시다. 영화와 필름 일하면 일단 조금은 환상이 있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업무량이 상당하다. 기술 외에도 이 일들을 모두 처리하려면 상당한 인내력과 섬세함이 필요하다.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이 일을 하면서 애환도 없지 않겠다. =필름을 관리한다는 게 이른바 골방 작업이다. 필름이 온도와 습도, 먼지에 민감하다 보니 눈이나 비 같은 날씨 조건에 항상 신경을 써야 한다. 지금도 우리 사무실엔 창문이 없다. 그리고 이건 좀 직업병인데 영화를 보면 이야기에 몰입하는 대신에 필름 상태가 완벽한가, 혹시 필름에 먼지라도 있는 게 아닌가 이런 것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다. (웃음)

-이 일을 하면서 쌓은 자신만의 노하우나 철학 같은 게 있나. =이곳에서 일하기 전에는 영화에 따라 우선순위를 뒀다. 유명한 감독의 작품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게 되고 더 잘 다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다. 그렇지만, 일을 하다보니 필름은 결국 다 같은 필름이더라. 똑같이 보존해야 하고 보호받아야 한다. 아카이브에 있는 모든 작품들이 하나같이 중요하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한다.

-아키비스트로서 느끼는 아쉬움이 있다면. =국내 아카이브의 인력이나 예산이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다. 시급하게 보급해야 할 필름들이 바로바로 관리를 못 받는 게 현실이다. 하다 보니 보존 공간 등의 부족함도 느낀다. 국내 아카이브가 체계화되고 있긴 하지만 좀더 전문적인 센터가 필요하다.

-이 일을 희망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영화를 장르 구별 없이 많이 보는 것이 상당한 도움이 된다. 특히 고전영화는 될 수 있으면 많이 봐야 한다. 기증필름의 경우, 손실된 필름이 많은데 그럴 때 영화에 대한 지식이 상당한 도움이 된다.

-앞으로의 포부나 계획이 궁금하다. =이 일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역시 꾸준함이다. 보존고에 있는 필름만 작업해도 내가 죽을 때까지 해도 못할 분량이니 말이다. (웃음) 특별한 기술을 도입하는 것보다 기존에 해온 것을 습득하고 현상을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 지금은 디지털 복원에도 개인적으로 손을 댈 수 있는 정신적 여유가 생겼으니 좀더 이 분야를 파고들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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