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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정의 예술판독기] 재현 욕망과 폭력성

2002년 9월 LA 한 전시장의 개막식에 무려 3천여명이 줄을 서서 관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로테스크의 황금기’라는 타이틀을 내건 그 전시회는 문제적 로커 마릴린 맨슨의 첫 개인전이었다. 1997년부터 틈틈이 완성한 드로잉 58점으로 데뷔한 것이다. 맨슨은 출품작 중 유독 한점을 지목하며 “이건 누구도 구매하지 않았으면 해요. 빼앗기고 싶지 않은 작품이거든요”라며 각별한 애착을 드러냈다. 인물의 정면 상반신을 수채화로 옮긴 작품은 모호하고 괴기스런 기운이 느껴졌고 여러 색채로 얼굴을 묘사했다. 마치 20세기 초 야수주의 화파가 즐겨 그린 원시적 여성 누드화처럼.

<백설공주로서 엘리자베스 쇼트(미소II)>라는 제목의 미스터리한 이 그림은 미제로 남은 실제 살인사건의 부검 사진으로부터 출발한다. 1947년 1월 LA의 한 공터에서 엘리자베스 쇼트라는 20대 여성의 변사체가 발견된다. 여인의 몸은 허리를 중심으로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어 있었고, 성기는 훼손되었으며 입이 양쪽으로 날카롭게 찢긴 채였다. 한마디로 ‘완파된 개인’이었다. 맨슨은 이 사건과 사진이 평생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회고했는데, 그래선지 사건 관련 수채화 연작을 복수개로 남겼다. 맨슨이 그린 여인의 눈매에는 이미 생명과 감정이 모두 빠져나간 상태다. 관전 포인트는 당연히 여인의 입! 입술이 귀에 걸릴 만큼 길게 찢겨 흡사 웃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이 끔찍한 가짜 웃음, 일명 ‘첼시 미소’는 어릿광대나 <배트맨>에 등장하는 악당 조커의 페르소나에서 반복 차용되었기에 대중에겐 익숙하다. 영구 미제로 남은 엘리자베스 쇼트 살인 사건은 그녀의 별명을 따 ‘블랙 달리아’라 알려졌고, 대중문화가 끊임없어 참조한 엽기 살인사건의 대명사로 리메이크를 거듭했다. 인생의 황금기를 멈춰 세워서 박제하고픈 갈망은 누구에게나 공통될 것이다. 예술은 인류의 이러한 나르시시즘을 재현하는 도구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미지의 초폭력으로 인체와 인격이 동시에 해체된 한 여인이 어째서 예술과 문화의 재현대상으로 간주된 걸까? 혹시 이 그림은 마릴린 맨슨 자신의 엽기적 무대 매너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는 걸까?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입 찢긴 여인 이야기는 민담의 형식으로 일본에서도 인기가 높다. 이른바 ‘입 찢어진 여자’(구치사케 온나 口裂け女)는 아름다운 첩을 둔 사무라이가 그녀의 정절을 의심해 입을 찢어 여인으로부터 미모를 박탈한다는 끔찍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이 현대적으로 변형되어 학교괴담과 극화의 형식으로 생존하고 있다.

동서양 문화권이 이 마초-사디스트 잔혹극을 대중문화와 예술에 반복 흡수하는 이유는 뭘까. 블랙 달리아 사건이나 입 찢어진 여자 민담의 요체는 한 개인이 미지의 전능한 힘에 의해 극악무도하게 통제하고 대상화된다는 것이다. 복구 불능 상태로 망가진 개인의 이미지가 웃고 있다는 사실은 반어적이다. 그녀가 망가지는 험악한 과정을 상상해도 괜찮다는 살인범의 배려일까? 감금, 완력동원, 성폭행, 신체 훼손이 어두운 그림자 밑에서 자행되었으리라. 블랙 달리아 사건이 미제라는 것, 즉 이 잔혹한 ‘권력 행사’의 주체가 불가지의 영역이라는 점은 중요하다. 사건의 용의자는 필시 특정인일 테지만, 사건의 원인이 된 파괴 욕망은 불특정하게 산재되어 있다. 맨슨의 작품을 두고 한 평론가는 ‘치유를 위한 그림’이라 논평했다. 내면의 파괴본능을 치유하고 달래는 형식일 수도, 상상력이 수없이 파괴한 대상에 대한 애도의 형식일 수도 있다. 이미 죽은 얼굴에 억지 미소를 달아주는 이유다. 재현 욕망은 근본적으로 아름답지만 때때로 초폭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