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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먼저 간 친구가 남긴 흔적들

<내 아이들의 아버지>

Le Pere de Mes Enfants

2009년 / 미아 한센 러브 / 106분 1.85:1 아나모픽 / DD 5.1, 2.0 프랑스어 영어 자막 / 아티피셜아이(영국) 화질 ★★★☆ 음질 ★★★★ 부록 ★★☆

미아 한센 러브의 <내 아이들의 아버지>는 프랑스의 제작자 윙베르 발장의 죽음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유세프 샤힌, 클레르 드니, 라스 폰 트리에, 엘리아 슐레이만의 작품을 포함해 70여편의 영화를 탄생시킨 발장은 벨라 타르의 <런던에서 온 사나이>를 제작하던 중 목을 매 자살했다(타르는 완성된 영화를 그에게 바쳤다). 만성적인 채무와 과도한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 한센 러브에게 발장은 멘토였다.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영화에 배우로 등장했던 한센 러브(두 사람은 현재 부부다)는 이후 단편영화를 찍기 시작했고, 영화제의 심사위원과 감독으로 만난 발장과 한센 러브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윽고 발장이 그녀의 데뷔작 <모두 용서받는다>를 제작하기로 했으나, 그의 죽음으로 인해 그녀는 다른 제작사에서 영화를 완성했다. 데뷔작을 발장에게 헌정한 한센 러브는 두 번째 작품이 그에 관한 어떤 것이 되길 바랐다. 그렇지만 <내 아이들의 아버지>가 발장이란 인물 자체에 충실한 영화는 아니다. 한센 러브는, 영화 제작에 매 순간 신경을 쓰는 직업인으로, 사랑으로 가족을 보살피는 아버지로 살았던 한 남자의 초상을 그린다. 그리고 슬픔과 기쁨을 함께 겪는 가족의 이야기를 나란히 배치한다. <내 아이들의 아버지>는 2009년 칸영화제에 출품돼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도입부의 6분, 주인공 그레구아 캉벨은 길을 걷거나 차를 운전하면서 두대의 휴대폰을 통해 사무실과 현장을 넘나든다. 수다쟁이 그루지아 영화인, 대접에 익숙한 한국 영화인, 제작비를 초과해 영화를 찍고 있는 스웨덴 감독, 시건방진 배우, 대기 중인 각본과 영화, 땍땍대는 돈줄 등이 그가 당장 직간접적으로 처리해야 할 것들의 리스트다. 가족과 통화를 나눌 때 그는 가장 행복해 보인다. 아빠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문만 늘어놓는 그들에게 그는 “아빠를 신나게 해줄 말은 없어?”라고 묻는다. 하늘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그는 교외의 집 가까이 진입하다 경찰에 붙잡힌다. 그는 경찰이 자신을 왜 세웠는지도 모른다. 그는 일의 굴레에서 헤어나기가 힘든 남자다. 자상한 아내, 귀여운 세딸과 이끌어 나간 행복한 가정도 그의 불운을 막지 못한다. 버거운 제작비, 갚지 못할 빚 등이 그의 목을 죄어온다. 도저히 안될 경우엔 어쩔 거냐는 친구의 물음에 캉벨은 “창밖으로 뛰어내리지 뭐”라고 답한다. 그 말은 현실이 된다. 중반을 지나기 전에 주인공을 잃은 영화는 가족에게로 눈을 돌린다. 문득 흐르는 눈물을 감추기 어렵지만, 부인은 회사를 맡아 영화 제작을 도모하고, 세딸은 주어진 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꾸린다. 영화는 남은 자들의 감정 깊은 곳을 파고드는 대신 얼굴 표면에 머물고, 이야기에 신경 쓰기보다 인물의 몸동작을 가볍게 스치며 지나간다. 그러다 조용히 자연을 담는다. 한센 러브는 “청소년기의 느낌을 확장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캉벨은 주말마다 세딸을 중세의 건축과 회화로 안내하곤 했다. 그것은 고결함과 순수함을 상징하는 세계이며, 그는 그 세계의 안내자로서 가까이 머물렀다. 아빠의 죽음으로 슬픈 아이의 거침없는 질문에 아빠의 친구는 이런저런 대답으로 넘기다 잘 성장하기를, 언젠가 사랑에 빠지기를 기원하면서 조력자로 남겠다고 약속한다.

사는 데 정답은 없으나, <내 아이들의 아버지>는 때론 누군가의 도움으로, 때론 혼자 힘으로 걷는 게 인생이라고 말한다. 엔딩에 흐르는 <케 세라 세라>의 가사처럼, 한 그루 나무처럼, 아이는 땅에 뿌리를 내린 채 삶을 경험하며 자랄 것이다. <내 아이들의 아버지>는 한 제작자의 비극 곁으로 가족의 헌신, 어린 시절의 소중함, 지식의 전수, 흐르는 시간을 가지런히 기록한 한편의 에세이 같은 작품이다. DVD는 부록으로 감독 인터뷰(16분), 예고편을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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