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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내겐 너무 사적인 소설가
이다혜 2010-08-05

1990년대의 이십대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

이번호 특집은 무라카미 하루키와 <1Q84>다. 초기작부터의 소설과 각종 인터뷰, 에세이집, 대담집을 두루 재독하며 떠오른 하루키에 관련된 개인적인 추억을 이야기할까 한다.

이렇게 말하니까 하루키를 좋아했던 것 같지만 사실 처음엔 읽지도 않고 싫어했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밀란 쿤데라가, 대학교 때 무라카미 하루키가 붐이었다. 다 똑같은 작가 책만 읽는 게 재미없다고 생각해서(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은 고집이지만) 일부러 그의 책을 읽지 않고 있었다. 다만 90년대 중반을 20대로 살면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지 않기란 물 위를 걷기와 같아서 결국 나도 어느 순간 풍덩 빠져들고 말았는데, 그 계기는 그의 단편소설이었다(지금도 그의 장편소설보다는 단편소설과 에세이를 좋아한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 스스로 쿨하게 보이고자 몸부림치던 또래 남자아이들의 희한한 글쓰기의 원흉이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였다. 봄날의 곰을 좋아하느냐는 말도 처음 어디선가의 술자리에서 처음 듣고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상실의 시대>에 나오는 표현이었다던지. 오이를 먹는 소리가 어쩌고저쩌고 하던 수작이라던지. 무라카미 하루키 때문에 일본어를 배우던 남자 선배가 있었는데, <상실의 시대> 일본어판의 모든 문장을 필사하다가 베드신에 이르러 코피가 터지도록 흥분하며 “일본어로 읽으니까 더…”라며 알쏭달쏭한 말을 남겼다. 그의 비밀스러운 소망인즉 부디 여학생들이 모두 ‘쿨해져서’ 하루키 소설의 ‘여자 아이’들처럼 교내식당 가듯 쉽게 섹스를 하는 세상이 오는 것이었다. 일본어 수업에 들어갔을 때는 더 심해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스맙(SMAP)을 뛰어넘는 인기를 구가한다는 걸 새삼 깨닫곤 했다. 소설을 쓰고 싶어 했던 한 언니는 밤에 자고 새벽에 일어나고, 달리기를 시작하는 것으로 하루키의 무언가에 다가가고자 했다. 그 언니는 하루키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집을 영문으로 몇권 샀는데, 결국 책을 갖는 것과 읽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과 달리기 능력과 글쓰기 능력 사이에는 아무 관계가 없음을 깨닫는 것으로 소설가의 꿈에 작별을 고했다.

하느님 맙소사, 아직도 하루키라니. <1Q84> 1, 2권에 관한 뉴스(일본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가며 출판계의 불황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다는 일본 언론의 대대적인 호들갑)를 접했을 때 처음 한 생각은 그랬다. 스무살 즈음의 간지럽고 부끄러운 추억과 살을 섞고 있는 하루키라는 이름을 이런 식으로 다시 듣게 되다니. 게다가 예루살렘상이라니. 할렐루야. 아니, 오 마이 갓. 이번 특집을 진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원고 청탁을 거절하는 코멘트들은 다음과 같았다. “<해변의 카프카> 이후 절대 하루키는 읽지 않겠다고 스스로와 다짐해서”(아니 하루키가 무슨 담배도 아니고!), “그에 관해 스트레이트한 글은 쓰고 싶지 않아서”, “내가 하루키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대외비밀이라서”, “하루키를 읽던 시절의 나를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왜 말을 못해! 저 남자가 내 남자라고 왜 말을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