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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 히로유키 타가와] 아시안 아메리칸 배우의 전설
주성철 사진 최성열 2010-08-06

<하이프 네이션 3D> 출연차 방한한 캐리 히로유키 다카와

캐리 히로유키 다가와는 할리우드의 아시안 아메리칸 배우 가운데 유독 강렬한 눈빛의 카리스마로 기억되는 배우다. 이름과 작품이 즉각적으로 떠오르지 않더라도 아마 이 얼굴을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지막 황제>(1987)의 환관 역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이래 <리틀 도쿄>(1991)와 <떠오르는 태양>(1993)의 야쿠자, <모탈 컴뱃>(1995)의 사악한 마법사, <아메리칸 드래곤>(1998)의 야쿠자 보스, <아트 오브 워>(2000)의 사악한 기업가, <진주만>(2001)에서 어뢰에 대해 설명하는 장교, <엘렉트라>(2005)의 최고 악당 로쉬, <게이샤의 추억>(2006)에서 사유리(장쯔이)를 강제로 범하려던 남작 역할 등을 통해 주로 날카로운 인상의 악역으로 각인됐다

하지만 <삼나무에 내리는 눈>(1999)에서는 가츠오(릭 윤)의 아버지로, <하치 이야기>(2009)에서는 “자네가 개를 선택한 게 아니라, 개가 당신을 선택한 것”이라며 파커(리처드 기어)에게 “개를 키우게 된 건 운명”이라 말하던 사려깊은 동료 교수로 나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디즈니 채널에서 제작한 TV영화 시리즈 <조니 쓰나미>(1999)와 <조니 카파할라>(2007)에서는 하와이의 전설의 서퍼 조니 쓰나미로 나와 어린 관객 사이에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이처럼 그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진 대표적인 아시안 아메리칸 배우다. 재범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3D 댄스영화 <하이프네이션> 촬영차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그를 만났다.

-수많은 할리우드영화에서 봐온 강렬한 눈빛을 실제로 접하는 느낌이 묘하다. (웃음) 주로 악역 이미지로 많이 기억되는데 <하이프네이션>에서도 맡은 역할이 국제 마약조직의 보스다. 어떻게 출연하게 된 건가. =나 또한 한국에서 이런 인터뷰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무척 떨린다. (웃음) 한국에는 두 번째 온 것인데 이렇게 달라져있을지 몰랐다. 아주 놀랍다. 캐스팅 과정은 평범하진 않았다. <하이프네이션>의 총괄 프로듀서인 제이슨 리의 부모와 같은 동네에 살아서 친분이 있는데 그게 계기가 됐다. 지금껏 그런 식으로 출연 결정을 해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내가 배우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여러 번의 마술 같은 상황 중 하나다. 느낌이 참 좋았다.

-아버지가 군인이고 어머니가 배우였다고 알고 있다. 도쿄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 유년기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아버지가 한국전에 참전한 군인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한국에 있던 1950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한국과의 인연은 그때 시작됐다고 할 수 있는데, 다시 한번 전쟁으로 희생된 많은 사람들에게 조의를 표하고 싶다. 어머니는 다카라즈카 극단의 배우였는데, 아버지가 연극을 보러 온 게 첫 만남이 됐다.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다카라즈카는 오직 여성 배우들로만 구성돼 여자가 남장을 하는 극단이다. 이후 하와이로 가게 됐고, 남동생이 태어났으며, 5살 때 미국 본토로 건너갔다. 그사이 일본에 왔다가 다시 1956년 미국으로 완전히 이민을 갔다. 말하자면 평범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남캘리포니아 지역의 우리 동네에는 동양인 가족이 우리 집 하나였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에서 혼자만 다르다는 느낌으로 사는 기분이 어떤 건지 잘 안다. 그것이 지금껏 나를 강하게 만든 배경이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어머니는 내게 늘 일본인으로서 자긍심을 잃지 말라고 하셨다. 그것은 미국에서 살아가는 아시아인의 자부심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하치 이야기>에서 리처드 기어와 검도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혹시 그 장면도 그런 자부심에서 넣자고 건의한 것인가. =내가 주장한 건 아니고 원래 있던 장면인데 좀 다르게 가보자는 얘기 정도만 했다. (웃음) 영화를 보면 그냥 평상복을 입고 검도를 하는데, 난 정식으로 검도복을 차려입고 하자고 했고, 결과적으로 반영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리처드 기어가 죽도로 엉덩이를 장난으로 툭툭 치는 장면을 고집하기에, 그건 일본인 사이에서는 친근감의 표현이라기보다 몹시 공손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얘기해주기도 했다. 그래도 기어이 하기에 영화를 보면 내가 그걸 탁 막는 장면이 있다. (웃음)

-어려서 배우의 꿈을 꾸게 된 계기가 있나. 아시아인으로서 힘든 과정이었을 것 같다. =일단 어머니가 배우였기에 거부감이 없었다. 어머니는 심지어 8살 때인가, 어찌 보면 성인영화라고 할 수 있는 셜리 맥클레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여주시기도 했다. 그걸 보며 영화에서 사람의 움직임이나 연기라는 것에 호기심이 생겼고 어머니가 그런 것들을 가르쳐주셨다. 12살 때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아서 바로 동생을 데리고 가서 그날 또 봤다. 그리고 그때 연기자가 되겠다 결심했다. 본격적으로 연기의 맛을 알게 된 건 고등학교 때 연극반 활동을 하면서다. 당시 나는 아시아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 학교에서 반장도 했다. 아시아인으로서 그런 리더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고교 졸업할 때 아서왕을 연기했다. 잠시 그때 했던 연기와 노래를 해봐도 되겠나? (한참 그 기분에 젖어 연기를 마치고 난 뒤) 아마 그때 다른 백인 친구들을 제치고 아시아인으로서 아서왕을 연기한다는 거 자체가 우리 학교에서는 큰 사건이었다.

-할리우드에서 배우로 정식 데뷔한 게 30대 중반이었으니 그 긴 시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도 궁금하다. =대학 때도 셰익스피어 연극 같은 전통적인 작품을 하며 실력을 다졌다. 하지만 LA에는 거의 모든 젊은 사람이 연기자 지망생들이다. (웃음)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굴뚝같았지만 아무한테도 말한 적은 없다. 어쩐지 내가 바보스럽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러다 캐스팅된 친구들이 촬영장에 놀러 오라고 하면 괜히 관심없는 척 둘러대며 가지 않았다. 실은 정말 가고 싶고 구경하고 싶었는데. (웃음) 그럴 때마다 자신에게 약속했다. 내가 처음으로 영화 촬영장에 가는 날은 내가 돈을 받고 영화에 출연하는 첫 번째 날이 될 거라고. 그러다 보니 35살이 돼서야 영화배우가 됐다. 그래서 난 지금도 배우를 꿈꾸는 많은 젊은이에게 그 꿈을 포기하지 말고 꼭 된다는 믿음으로 준비하라고 얘기한다.

<마지막 황제>와의 운명적인 만남

-그럼 첫 영화 작품이 뭐였나. =존 카펜터의 <빅 트러블>(1986)이었다. 차이나타운을 무대로 하는 영화라 아시아 배우들이 많이 필요했고 나는 그저 뒤에 서 있는 엑스트라였다. 그래도 나는 20세기폭스사 스튜디오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1956년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미국으로 건너 온 한 일본 아이의 꿈이 현실이 됐음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촬영 중에 갑자기 조감독이 나를 불러내는 거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걱정하고 있는데 “자, 보세요. 다들 표정을 이 사람처럼 하고 있으라고요!”라고 소리쳤다. 그러더니 12명 정도 등장하는 패거리 중 나를 맨 앞에 세웠다. (웃음)

-<빅 트러블> 이후 운명적으로 <마지막 황제>를 만나게 됐다. =<빅 트러블>을 끝내고 엑스트라에 불과했던 내게 두 군데서 만나자고 했다. 하나는 <암드 레스폰즈>(1986)라는 B급 액션영화였는데 그래도 데이비드 캐러딘과 리 반 클리프가 나오는 영화였다. 게다가 영화배우조합 카드도 이때 받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베르톨루치의 <마지막 황제>(1987)였다. 정말 꿈만 같았다. 중국에 가서 촬영할 예정이었고 그걸 기다리는 동안 TV시리즈 <맥가이버>에도 잠깐 출연했다. 아까 얘기했던 바로 그 마술 같은 상황이었다. 1986년 봄에 <빅 트러블> 엑스트라로 출연하고는 1년 만에 내 인생 자체가 바뀌었다. 외모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가, 전형적인 악역 얼굴이잖나. (웃음) 그래서 다시 한번 세상 사람 모두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아무도 당신이 가진 꿈에 대해 ‘노’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가라데 키드> 시리즈의 스승으로 유명한 팻 모리타(1932~2005와 <떠오르는 태양> <진주만> 등 당신과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마코(1933~2006년)는 대표적인 일본계 미국인 배우들이다. 그들에 대한 기억은 어떤가. =팻 모리타는 <가라데 키드>(1984)로 아카데미 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됐고, 마코는 스티브 매퀸과 출연한 <샌드 페블스>(1966)로 역시 아카데미 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된 적 있다. 두분 다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아시안 아메리칸으로서 무척 뿌듯한 일이다(1957년작 <사요나라>의 우메키 미요시가 아시아인 배우로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물론 조연상. -편집자). 특히 마코는 <암드 레스폰즈>에도 조연급으로 나온 분이라 인연이 깊다. 그땐 아시안 아메리칸 남자 배우로서 아카데미 무대에 섰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했던 터라 큰 영광이었다. 그런데 친절히 대해주지는 않으셨다. 워낙 궁금한 게 많아서 내가 질문을 많이 해서 피곤하셨을 거다. (웃음) 그러다 6년 뒤 <떠오르는 태양>에서 다시 만나게 됐는데, 그사이 나는 다른 TV시리즈나 영화를 했을 때라 분명 그걸 보셨을 테니 좀 달리 봐주셨다. 마코는 아시아인이 악역을 도맡아 하는 데 큰 거부감을 갖고 있어서 내가 그런 역할을 할 때는 좀 엄격하셨다. 가령 브랜든 리와 함께 나온 <리틀 도쿄>를 보고서도 핀잔을 주셨다. 그런데 사실 마코도 그런 역할을 상당히 많이 했다. (웃음) 그래서 억하심정이 좀 들긴 했지만 어쨌건 그는 아시안 아메리칸 배우로서 그런 편견과 가장 많이 싸운 분이다. 이후 마코는 물론 팻 모리타, 미후네 도시로까지 나온 독립영화 <스트로베리 로드>(1991)에서 또 만났고, <진주만>에서는 상관과 부하로 나왔으며 <게이샤의 추억>이 함께 한 마지막 작품이었다. <게이샤의 추억>에서는 신이 겹치는 게 없어 함께 연기한 건 아니지만 어느덧 서로 비슷한 전문가의 자리에서 참 많은 얘기를 나눴다.

한국인으로는 두번 출연

-<마지막 황제> <아트 오브 워>에서는 중국인으로 나왔는데 혹시 한국인으로 나온 적도 있나. =하하, 딱 두편 있다. 액션영화 <철인무적>(1991)에서 한국인으로 나왔는데, 그러고 보니 여기서 마코도 한국인 ‘킴'으로 나왔다. 대사도 한국어로 해야 해서 한국어 지도해주는 분도 있었는데 연기 코치라기보다는 발음 코치에 가까웠다. 하라는 대로 하긴 했지만 도저히 연기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그게 얼마나 나쁜지는 몰랐는데 어느 날 길에서 한 젊은 한국 사람을 만난 적 있다. <철인무적>에 나온 배우 아니냐고 묻더니 한국어 대사를 참 못하더라고 하더라. (웃음) 그리고 제인 마치가 북한 스파이 ‘숙희’로 나온 <프로보카퇴르>(1998)라는 영화에서는 나 역시 남한에서 활동하는 북한 스파이로 나왔다. 기억나는 장면은 남한에서 활동하던 중 사람들이 모여서 보는 TV를 통해 김일성 주석의 사망 뉴스를 보는 장면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담담히 보는 가운데 나는 울고 싶지만 들키면 안되니까 울지 않고 참는 연기를 해야 해서 힘들었던 생각이 난다.

-<아메리칸 드래곤>에서는 박중훈, <삼나무에 내리는 눈>에서는 릭 윤, <엘렉트라>에서는 윌 윤 리, 그리고 이번 <하이프네이션>에서는 재범과 함께 하며 한국계 배우들과도 인연이 깊다. =아, 박중훈, 기억난다. (웃음) 참 성실하고 사람이 좋아 보였다. 릭 윤, 윌 윤 리, 재범 다 훌륭한 배우들이다. 한국 배우들은 기본적으로 다 성실하고 예의가 바른 것 같다. 난 영화 현장에서 다른 아시아 배우를 만나면 최대한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하고 내가 선배라면 좋은 얘기를 많이 들려주려고 노력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 LA에서 연기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데 가장 성적도 좋고 재능도 뛰어난 친구가 바로 ‘준 리’라고 한국인이다.

-지금껏 출연한 작품 중 기억에 남는 세편만 골라준다면. =가장 먼저 <마지막 황제>는 여전히 내게 꿈처럼 남아 있는 영화다. 두 번째로는 남아공에 가서 촬영한 <최후의 전사>(1989)다. 당시만 해도 남아공은 악명 높은 인종차별 정책으로 UN의 제재를 받던 때라 남아공에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일종의 블랙리스트에 오르던 때였다. 당연히 배우조합에서도 말렸고. 그런데도 감독과 의논을 하고 결국 가기로 했다. 2차대전 말기, 수리를 위해 태평양의 한 섬에 정박한 전함 야마토의 대위로 나왔는데 굉장히 독특한 캐릭터였다. 마지막으로는 디즈니 채널의 TV영화 <조니 쓰나미>다. 내 아버지가 하와이 출신이라 더 애착이 컸고, 늘 악역만 도맡아 하다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자상한 할아버지로 나와 좋아해주는 사람도 많았다. (웃음)

-끝으로 한국에 온 소감은 어떤가. =호랑이 해에 호랑이의 땅에 와 있는 게 영광스럽다. 소니픽처스에 아주 가까운 한국인 친구가 한명 있는데 내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웃음) 사람들의 열정이라는 면에서 한국은 호랑이와 비슷하다고 느끼지만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표현도 있으니 상대적으로 참 흥미롭다. <하이프네이션>을 통해 한국영화에 참여하게 된 것도 기쁘고, 이를 통해 뭔가 꿈틀대는 한국의 기운을 느껴볼 수 있어 행복하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관계를 이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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