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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의 침묵 뜨거운 갈등
주성철 2010-09-21

<영웅본색> 리메이크한 송해성 감독의 <무적자>

<무적자>가 추석에 개봉하는 한국영화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건 분명한 사실. 과거 홍콩영화의 전성기를 추억하는 성인 관객에게 ‘<영웅본색>의 리메이크’라는 수사는 어쩔 수 없이 강한 흡입력을 뿜어낸다. 물론 그것이 우려와 불안을 동시에 자아내게도 하지만 어쨌건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욕구를 견뎌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 관람 체험이 원작에 대한 애정을 더욱 강화시키건, 우리 배우에 대한 매력을 새로이 끌어내는 것이 되건, 원작의 존재 자체가 강력한 흥행 포인트가 되는 건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때맞춰 오우삼 감독이 방한해 함께했다는 사실 또한 올드팬의 향수를 자극한다.

<무적자>는 기본적으로 <영웅본색>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르되,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갈등하게 된 원작과 달리 두 형제의 애증을 탈북자의 그것으로 대체했다. 형이 어머니와 동생을 남겨두고 떠나버린 것. 혁(주진모)이 북한에 가족을 남기고 탈북한 뒤 동생 철(김강우)은 그를 찾아 한국으로 온다. 가족을 버렸다는 사실을 늘 죄책감으로 안고 살아가던 혁은 철을 보자마자 눈물을 쏟아내지만 철의 머릿속은 온통 분노로 가득 차 있다. 훈훈했던 원작의 초반부와 달리 <무적자>의 형제는 아예 처음부터 갈등하는 사이다. 이후 경찰이 된 철은 형이라는 사실은 아랑곳없이 혁을 잡으려 동분서주한다. 그런 두 사람의 관계를 또 다른 탈북자 영춘(송승헌)이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혁과 영춘의 부하였다가 어느덧 조직의 보스가 된 태민(조한선)이 그들을 압박한다.

먼저 정리부터 해보자. 원작과 매치시키자면 주진모가 적룡, 김강우가 장국영, 송승헌이 주윤발, 조한선이 이자웅이다. 그외 혁과 철 형제에게 아낌없는 애정을 쏟는 이경영은 원작의 택시회사 사장인 증강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일단 <무적자>가 제아무리 멋지게 만들어졌다 해도 원작의 아우라를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것은 <영웅본색>이라는 범아시아적 레전드를 바라보고 인정하며 달려들었던 송해성 감독이나 주연배우들 모두 인정하는 부분이다. 아니라고 부정하는 순간 이 리메이크는 유머가 될 것이기 때문. 관건은 원작의 관계를 탈북자 형제의 그것으로 치환하며 원작의 빈틈으로 한국적 정서를 성공적으로 불어넣는 것이다. 중요한 순간 터져나오는 주인공들의 북한 사투리, 한 밥상에서 머리를 맞대고 국밥을 먹는 형제의 침묵, 그리고 부산이라는 지역색에 대한 부각은 그렇게 이뤄졌다.

그럼에도 <무적자>는 <영웅본색>의 여러 장면을 그대로 가져왔다. 올드팬을 위한 서비스이기도 하지만 나름의 정면승부이기도 하다. 강호의 의리가 떨어졌다며 영춘이 신문지를 떨어뜨리고 홀로 적진에 뛰어들며, 혁은 철의 집 앞에서 늘 서성대고, 태민은 옥상에서 기어이 영춘의 얼굴을 가격해 쌍코피를 터트린다. 원작의 느낌을 잘 살려낸 장면도 있고 아닌 장면도 있다. 어쨌건 관객 입장에선 영화가 시작하고부터 머릿속으로 순서를 계산하며 그 장면들을 기다릴 것이다. 그렇게 신격화된 <영웅본색>의 존재감과 승부하기란 너무 가혹한 현실이지만 송해성 감독은 적절히 변주하거나 그대로 따르면서 탈북자 이야기라는 우리의 현실과 조우한다.

남겨진 건 배우들의 몫이다. 택시기사로 일하는 원작의 적룡과 달리 혁이 대리운전기사로 일한다는 것, 역시 원작과 달리 철이 은연중에 미약하나마 먼저 화해의 제스처를 내비친다는 것, 혁과의 관계에서 영춘이 좀더 진하게 철에게 질투심을 느낀다는 것, 원작과 비교해 가장 비중이 늘었다고 할 수 있는 태민이 처음부터 불량한 눈빛을 내비친다는 것 등은 온전히 우리 배우들이 관객과 승부해야 하는 지점이다. 오우삼의 <영웅본색> 역시 용강 감독의 1967년작 <영웅본색>의 리메이크이자 캐릭터의 변화를 통해 성공을 끌어낸 사례였다. 말하자면 리메이크라도 현재의 감독과 배우들이 모든 걸 짊어진다는 얘기. 오우삼의 <영웅본색>을 진하게 추억하거나 그 기억이 전혀 없는 관객 모두 송해성의 <무적자>를 어떻게 받아들이지 무척 궁금하다.

주보의는 어디로 갔나요?

<영웅본색>에서 적룡, 장국영, 주윤발, 이자웅 못지않은 인기를 얻었던 배우는 바로 장국영의 아내로 나온 주보의였다. 사실상 액션장면이 그다지 많지 않은 <영웅본색>에서 초반부의 코믹하고 밝은 장면을 책임졌던 배우가 바로 장국영과 주보의였다. 영화 속 사고뭉치이기도 했지만 적룡이 건네주는 증거 테이프를 받아드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많은 남성 관객은 그 캐릭터에 부합하는 배우가 없다는 사실에 분노(?)할지도 모르겠다. <무적자>에는 식당 할머니로 출연하는 김지영 외에는 여성 캐릭터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물론 애초의 시나리오에는 주진모를 짝사랑하는 젊은 탈북자 여성 캐릭터가 있었다. 인기있는 모 여배우 캐스팅까지 끝난 상황이었지만 이후 그 캐릭터는 최종 시나리오에서 없어지고 말았다. 영화 속 인물들의 관계 안에서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젊은 여성 캐릭터가 지나치게 멜로적이고 전형적으로 비쳐진 까닭. 송해성 감독은 “다들 자기 심장을 가지고 영화 속에 드러나야 하는데 그 캐릭터는 거꾸로 다른 인물들의 정서를 침해할지도 모를 듯했다”고. 결국 <무적자>는 엇갈리는 남자들의 뭉클한 퀴어영화로 이해하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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