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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독일 영화사를 한눈에

분단과 통일의 공간, 포츠담 광장에 자리한 베를린영화박물관을 가다

장벽 붕괴 20주년을 맞아 독일영화박물관이 2009년에 선보였던 동구권 영화 회고전 ‘겨울, 안녕’ 포스터.

우중충하고 비 내리는 베를린 포츠담 광장의 가을. 요즘 이곳을 찾는 독일인은 감회에 젖을 수밖에 없다. 장벽이 서고 무너졌던 분단과 통일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은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이었고, 올 10월3일로 통일 20주년을 맞았다.

통일 직후 허허벌판이던 포츠담 광장은 20년이 지난 지금 모던한 고층 빌딩들로 미래도시를 방불케 한다. 영화 <메트로폴리스>의 공간을 본뜬 것 같은 이곳은 베를린영화제가 열리는 독일영화의 중심지다. 장벽 바로 옆의 소니센터 안에는 멀티플렉스 영화관, 레스토랑뿐만 아니라 영화박물관인 도이체키네마텍, 예술영화관 아르제날, 독일영화학교가 들어서 있다. 또 여기서 불과 몇 십미터 거리를 두고는 베를린영화제 본부와 행사장이 자리하고 있다. 서로 상호의존하는 기관들이다.

항상 수학여행 중인 학생과 관광객으로 붐비는 이곳의 연간 방문객은 14만명 정도다. 독일 다른 도시들에도 시네마테크가 있지만 자료 소장뿐 아니라 일반인도 열람 가능하고 박물관을 통해 전시까지 하는 시네마테크는 베를린영화박물관이 유일하다. 게다가 이곳은 베를린영화제에서 개최하는 회고전에 필요한 중요한 영화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다. 각본 3만편, 포스터 2만점, 영화 프로그램 6만개, 주요 영화인들 관련 자료 등이 모두 여기에 있다. 박물관 안에 들어서면 시간 여행이 시작된다. 1919년 무성영화부터 시작해 길을 따라가면 90년대 독일영화까지 전시되어 있다. 가는 길목에는 각종 시청각 시설로 감독과 영화를 시대별로 소개하고 있다. 오리지널 포스터, 낡은 영사기, 영화소품, 의상들도 눈길을 끈다. 베를린영화박물관은 올 베를린영화제에서 화려하게 선보였던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 복원에도 큰 공을 세웠다.

특히 장벽 붕괴 20주년을 맞아 베를린영화박물관이 지난해 선보였던 동구권 영화 회고전 ‘겨울, 안녕’은 의미가 깊다. 원래 이 회고전은 2009년 베를린영화제의 작은 섹션으로 소개됐었고, 이후에는 박물관에 소장되면서 대출도 가능해졌다. 컬렉션 영화들은 공산주의 동구권 국가에서 만들어졌지만, 엄격한 검열에도 불구하고 1989년의 동구권 민주화의 낌새와 분위기를 잘 포착해낸 15편의 작품들이다. 극영화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단편·실험영화도 포함하어 있는 이 회고전 컬렉션은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얀 스반크마이에르 같은 대가들의 작품도 담고 있다. 이 컬렉션에 속하는 영화들은 연말까지 독일 전국의 여러 소극장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TV 자료까지 수집, 보관, 전시

베를린영화박물관 관장, 라이너 로터 인터뷰

-베를린 독일영화박물관의 역할은 뭔가. =박물관이라는 존재가 순수한 노스탤지어의 장소라고만 하기 어렵다. 박물관은 과거를 전시한 것 이상을 내포한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다. 워크숍, 강연, 영화 상영을 통해 전시회를 보완한다. 우리의 임무는 독일영화와 외국영화를 기록, 보관하는 것이다. 또 독일영화박물관만의 특별한 점은 텔레비전 자료도 수집, 보관, 전시한다는 점이다. 60년대 국제적으로 알려진 독일 감독 라이너 파스빈더, 폴커 슐뢴도르프, 페터 네스틀러는 원래 텔레비전에서 시작했다. 그래서 독일영화와 텔레비전 방송은 연관이 많다.

-‘겨울, 안녕’이라는 회고전에 대한 생각은. =회고전의 영화들은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일반인보다 좀더 예민한 예술가들은 지진계처럼 미세하게 당시의 상황을 감지했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알 수 있다. 이 테제가 틀리지 않는다면 아마도 지금의 영화들도 우리가 30년 뒤에 있을 일들을 미세하게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 ‘겨울, 안녕’은 지금까지 평가절하됐던 영화사의 현상들과 그와 관련된 모순을 환기시킨다. 이 컬렉션은 서로 달랐던 동구권 국가들의 체제와 당시 시대에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고, 전망을 보여준 훌륭한 영화들을 모아놓았다.

-예를 들면 동구권 몰락의 조짐이 영화의 어떤 부분에서 드러나는가. =가령 이 회고전 컬렉션 속 영화들은 유머없는 코미디나 현실과 동떨어진 미화된 노동세계 등을 다룬다. 반면 다큐멘터리영화들은 당시 현실과 더 정면으로 대면했다. 그래서 이 회고전의 타이틀도 동독 감독 헬케 미셀비츠의 <겨울, 안녕>(1988)에서 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