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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영화의 바다에 ‘바다’가 없다니…

센텀시티로 옮겨가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쉬운 이유

CGV 센텀시티가 자리한 백화점 건물 외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외국 기자들과 프로그래머들이 가장 많이 한 얘기는 무엇일까? 영화? 파티? 음식? 날씨? 모두 아니다. 내년 부산영화제가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 콘크리트 더미인 센텀시티로 옮겨간다는 사실이었다.

부산영화제가 발전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두 번째 국면에 접어들면서, 영화제의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비단 김동호 위원장의 은퇴 때문만은 아니다. 모두 좋아하고 존경하는 김동호 위원장은 국제적 수준에서 포용력있고 친근한 느낌으로 부산영화제를 각인시켜왔다. 이는 다른 어느 누구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업적이다. 누가 이처럼 빼어나게 사교적이고 외교적이면서 뛰어난 비즈니스 감각과 비상한 겸손함의 미덕까지 갖출 수 있겠는가? 여러 면에서 김동호 위원장이 그리울 것이다. 그렇지만 영화제에 특별한 분위기를 더해준 해운대 바닷가 역시 많이 그리울 것이다.

단순히 영화를 모아서 보여준다고 영화제가 되는 건 아니다. 특히 외국 게스트에게 영화제는 마음이 비슷한 사람들이 만나고 관계를 강화하고 새로 관계를 맺고 기분 좋은 환경에서 사업도 하고 관점도 나누는 상호작용의 사회적 행사이다. 영화제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자주 이 중요한 요소- 영화제의 지리적 위치- 를 간과한다. 가장 좋은 영화제는 영화 상영관과 먹고 마실 수 있는 장소가 걸어서 오갈 수 있는 거리 안에 있는 것이다. 셔틀버스나 택시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사람들과 우연히 마주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런 환경은 일주일 혹은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 일종의 공동체 의식을 싹트게 한다.

칸, 베를린, 베니스, 토론토, 선댄스영화제는 그런 점에서 모두 동일하다. 부산영화제 초기의 남포동 시절에도 비슷한 분위기가 있었고, 그게 바로 외국 게스트들이 매해 부산을 찾는 이유였다. 영화제가 해운대로 옮겨오자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어려웠으나, 곧 사람들은 ‘미니 칸영화제’처럼 바닷가와 꼬불거리는 뒷골목의 식당과 커피숍들을 좋아하게 됐다.

센텀시티에서는 이런 분위기를 누릴 수가 없다. 신세계백화점 지하의 푸드코트는 깔끔하지만 독특한 분위기가 없다. 저녁에는 주변 다른 식당이나 문 연 가게를 찾을 수도 없다. 저녁에 택시를 타기도 어렵고 신세계나 롯데에서 저녁 늦게 영화를 본 관객은 문 닫힌 백화점 옆의 작은 입구로 몰려나가야 한다. 지난 2년간 몇몇 게스트, 특히 센텀시티호텔에 머문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은 특별히 약속을 하지 않고는 부산에서 사람들을 거의 만날 수 없었다. 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외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인 부천에 자리잡은 부천영화제는 작은 규모를 통해 이런 사회적 소외감을 잘 해결했다. 모든 상영장과 이벤트 장소와 시설들이 고려호텔 주변에서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자리하고, 주위 골목에는 좋은 식당과 술집들이 밤늦도록 문을 열어 가족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물론 부천영화제는 부산영화제보다 규모가 훨씬 작다.

영화제에 오는 관객은 정서적으로 보수적이다. 모두 변화를 싫어하고, 특히 장소가 바뀌는 것을 싫어한다. 2000년 베를린영화제가 센텀시티 지역과 비슷한 포츠담광장 지역으로 옮겼을 때 모두가 싫어했다. 그러나 다행히 곧 주변에 식당과 술집들이 생겨났다. 포츠담광장은 문화적으로 풍요롭고 흥미로운 수도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지만 센텀시티는 그렇지 않다. 해운대의 가장 큰 매력은 바닷가였다. 이제 대부분의 게스트들은 그 바닷가를 더이상 볼 수 없게 될 듯하다.

번역 이서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