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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액션 없이 찍으려니 사실 미치는 줄 알았어
주성철 사진 최성열 2010-11-02

류승완 감독 인터뷰

-조작된 용의자를 ‘배우’라고 부르는 것, 경찰 내에서의 전문용어나 ‘경찰대 라인’에 관한 얘기, 그리고 병맥주를 생맥주 따르듯 하는 강 국장(천호진)의 모습 등 치밀한 조사가 엿보인다. =‘배우’라는 표현은 박훈정 작가의 각본에 있었던 말인데 그런 식으로 원래 있던 것과 내가 더한 것 등이 섞여 있다. 내가 더한 것에도 조사를 바탕으로 한 것과 창작한 게 있다. 가령 미행당하는 걸 알고는 ‘자석 붙었다’고 하는 것은 마치 그들끼리의 전문용어처럼 느껴지지만 그냥 내가 지어낸 말이다. 존 르 카레의 소설에서 정보부(the Circus) 같은 존재랄까. 국장이 병맥주를 치이익 부어 마시는 건 실제 형사들과 만나서 보고 배운 거다. 천호진 선배는 “그냥 부어 마시지 왜 그래?” 그러면서(웃음) 연습을 좀 했는데 ‘탁!’ 뚜껑을 따는 장면을 편집해서 가려고 했다. 왜냐하면 그거 기술적으로 제대로 하면 거품이 안 나거든. (웃음) 그런데 편집기사님이 그냥 저렇게 가는 게 재밌겠다고 해서 롱테이크로 갔다. 말하자면 살짝 NG다.

-그외에도 생생한 대사들이 많이 엿보인다. =“야! 네가 이런 건 좀 캄프라치 해줘야지” 그런 대사도 넣고 싶었는데 다 하진 못했고. (웃음) 한재덕 PD가 공동 각색으로 올라가 있는데 그분이 이런 유의 대사들의 대마왕이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알아요”, “장난치다 애 밴다” 그런 게 다 그분의 작품이다. 그리고 또 이 영화가 가장을 다룬 영화이기도 하다. 조직생활하면서 나쁜 제안도 받아들여야 하고 그러면서 또 가족으로 꾸리고 먹고 살아가야 하는 고단함이 있다. CJ엔터테인먼트 투자팀에도 그런 고뇌를 아는 가장들이 많아서 거의 자기 영화처럼 대해줬다. (웃음) 그런 주변의 힘도 컸다.

-황정민, 류승범, 유해진, 모두 지긋지긋한 악당들이다. 악당들끼리 누가 좀더 나은지 시합하는 영화라서 재밌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감정이입을 허용하지 않는 마이클 만의 워커홀릭 같은 남자들 같다. =‘선과 악의 경계’ 그런 말도 이제는 참 진부해져버린 시대다. 기본적으로는 캐릭터를 묘사하면서 뭐가 좋고 뭐가 나쁜지 하는 판단을 최대한 자제하려고 했다. 특히 캐릭터에 대한 판단은 더더욱 하지 않으려고 했다. 황정민과 유해진이 꾸민 일이 부당한 행위라는 것을 아는 류승범의 경우도 나쁜 놈인 건 맞지만, 어쨌건 잡혀온 용의자가 진범이 아닌 것 같다는 판단에서 나름 검사의 역할을 하는 거다. 황정민도 국장의 제의에 상명하복하는 거고. <부당거래>는 그런 좋고 나쁘다는 판단보다 사실관계의 정황, 사건의 전개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그들이 워커홀릭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황정민과 류승범이 야외카페에서 얘기 나누는 장면은 명백히 마이클 만의 <히트>(1995)에서 로버트 드 니로와 알 파치노의 커피숍 장면과 같은 뉘앙스다. 또 <부당거래>가 내 영화 중에선 가장 전문가주의를 내세운 영화이기도 하다.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면 된다’는 대사를 류승범이 황정민 옆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군데군데 숨어 있는 유머 코드가 있다. =그 대사를 일부러 슥 넣은 게 맞는데 황정민은 리허설이나 촬영 때도 그렇고 영화 볼 때도 절대 안 웃더라. (웃음) 승범이도 ‘이거 해야 해?’ 그랬는데 ‘내가 예전에 코미디 좀 해봐서 아는데 이거 빵 터져’라고 우겨서 하게 했다. 근데 정말로 그건 내가 해야 할 말이다. 촬영, 음악, 로케이션 전부 다들 너무 최고로 잘해줬고 난 정말 좋은 것만 선택하면 됐다. 그리고 <부당거래>는 진짜 배우들의 영화다. 세 배우가 각자 리드하는 장면을 찍을 때 정말로 세편의 영화를 찍는 기분이었다. 다들 날것 그대로일 때 빛나는 배우들이라 걱정도 많았지만 특별한 지시없이 던져놓아도 최고를 뽑아내는 사람들이지 않나. 생각해보면 스타 3명이 한꺼번에 나와 앙상블을 이루는 영화가 나로서는 처음이다. 그래서 또 오락영화, 대중영화로서 배운 게 많다.

-<부당거래>는 당신의 이전 영화들과 의식적으로 결별하려는 느낌이 있다. 일단 함께 연상되는 다른 영화들이 별로 없고 자기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갖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내 수첩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는데 촬영 몇주 전부터 모든 영화와 소설을 딱 끊었다. 은근히 반영되는 측면이 많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멀리 떨어져서 이 영화만 생각하려 했다. 그러다 정말 금단현상이 올 때 본 영화는 <불신지옥> 같은 영화들이다. (웃음) 나의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그야말로 내 취향으로 만든 10년이었던 것 같은데, 하나같이 뽐내기 대회 출전한 거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누군가를 따라하고 싶고 넘어서고 싶고 또 좋아하는 걸 마음껏 진열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내 영화가 애같이 보일 때가 있었다. 그게 바로 지난 10년이었던 것 같은데 물론 그 과정의 내 영화들을 사랑한다. <부당거래>는 내 취향 자체보다 왜 지금 이 작품을 선택했느냐 하는 게 중요하다. 직업 영화감독으로서 내 취향대로 일방적으로 표현하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직업적 임무, 이 영화가 요구하는 상황과 시대적 정서,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주 적절하게 맞물리는 환경과 타이밍도 고려하는 식으로 할 때가 온 것 같다. 더불어 내적으로는 장인으로서 명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도 컸다.

-다른 작가들과 함께 쓰더라도 늘 자신의 시나리오에 처음부터 관여했는데 <부당거래>는 박훈정 작가의 작품이다. =맞다. <부당거래>는 아예 다른 작가가 완성한 시나리오를 받아서 만든 나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이전에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땐 왠지 그게 ‘내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주저하기도 했다. 중요한 건 ‘온전한 내 영화’를 하는 게 아니라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인데 말이다

-당신 영화에서 액션이 없다는 건 정말 의외다. 달리 말하면 의식적으로 그랬다는 생각도 들고. =황정민이 유도하듯 유해진을 공격하는 장면, 골프장에서의 살해신 정도를 제외하고는 정말 없는데 사실상 이 영화 자체가 그런 스타일화된 액션을 요구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참 답답하고 미칠 거 같긴 했다. 뭐라도 싸우고 부숴야 하는데 자꾸 말로 전화통화를 하는 쪽으로 가니까. (웃음) 편집할 때도 쭉 보고 있으면 ‘지금쯤 툭탁툭탁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저 정도로 이렇게 넘어가도 되나? 그랬다. 옛날 같으면 편집실에서 ‘이 정도 시간이 흐르면 몇명 정도 죽어야 한다’는 견적이 딱 나왔는데.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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