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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프 비즈킷 리믹스 앨범
2001-12-27

2% 부족할 때

요새는 로큰롤이라는 것이 일종의 ‘펀치 드렁크’에 걸린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때이다. 하도 쳐대다보니 이제 얼얼할 뿐 어떤 감흥인지 잘 알지도 못하겠고 청중도 그저 그 얼얼함을 즐길 뿐이다. 핌프 록은 이런 로큰롤의 피로를 가장 얼얼하게 보여주는 장르라 할 수 있다. 도시 변두리의 욕구불만 남자아이들의 ‘어슬렁거림’을 기본 정서로 하고 있는 것이 핌프 록이다. 핌프 록은 피로를 극복하기 위해 ‘힙합 박카스’를 마셨다. 사실 그들이 마신 ‘힙합 박카스’는 힙합의 건강한 면보다는 폭력성, 남성편향 등의 그늘진 면이 많이 담긴 음료이다. 어쨌거나 ‘힙합 박카스’가 없었다면 미국의 대도시 변두리 청년들이 즐길 록이 없을 뻔했다. 미국의 록음악은 지금 완전히 힙합에 부축당해 있는 상태나 마찬가지이다. 림프 비즈킷은 그런 상황 속에서 가장 적절하게, 힙합 박카스를 마신 피로한 로큰롤의 현재를 보여주고 있다.

리믹스 앨범을 듣다보니 솔직히 말해 그간 그나마 림프 비즈킷을 들을 만하게 만들었던 것들이 바로 ‘힙합’적인 요소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그들의 대표곡인 <Nookie>, 영화 <미션 임파서블2>에 실렸던 <Take a Look Around>, 그들의 대중적인 히트곡 중 하나인 커버곡 <Faith> 등 그들의 대표곡들을 여러 유명한 사람들이 리믹스하고 있다. 림프 비즈킷의 멤버이기도 한, 왕년에 하우스 오브 페인에서 커팅 실력을 떨친 바 있는 DJ 레덜(Lethal)이 자기 밴드의 음악 3곡을 리믹스했고 현재 최고 주가의 팀발랜드, P. Diddy(퍼프 대디의 요새 이름), 윌리엄 오빗, 심지어 너바나의 프로듀서였던 부치 빅까지도 참여하여 림프 비즈킷의 노래들을 리믹스하고 있다. 이걸 보면 이들의 지명도가 미국에서 상당하다는 걸 알겠다. 동시에, 이들의 음악이 다른 어떤 밴드의 록보다도 힙합적이어서 리믹스했을 때 맛을 내기가 더 편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이 앨범을 들으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요즘엔 리믹스 앨범이 새로 만들어진 앨범보다 재미난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로큰롤의 영역에서, 리믹스라는 개념 자체가 그냥 ‘창작’의 개념보다 훨씬 많은 창조적 공간을 마련해주고 있는 시대가 지금이다. 창작을 했을 때는 한 스타일의 음악적 습관을 벗어나기가 힘들다. 실은 그것은 일종의 답습이다. 반면 ‘리믹스’를 했을 때에는, 그 습관을 다른 습관들과 결합시킬 수 있다. 그 ‘결합’이 한 장르 내부의 습관을 답습하는 일보다 신선하게 느껴진다. 사실 로큰롤은 원래 98%가 답습이다. 2%의 새로운 조미료가 개성을 부여한다. 그 2%조차 음악적인 요소 바깥에 있을 경우가 많다. 지난 50년간 로큰롤은 그 2%의 신선함으로 몸통 전체의 신선함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이제, 앞서 말했던 펀치 드렁크 시대이다. 리믹스가 더 재미있게 들리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 앨범이 내년쯤 나올 림프 비즈킷의 새 앨범 전에 나오는 일종의 팬서비스라지만, 이게 새 앨범보다 더 재미난 앨범으로 평가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왜냐하면 이 앨범은 3중의 뒤범벅이기 때문이다. 록과 힙합이 믹스된 음악을 다시 리믹스했으니. 그 둘을 붙이고 있던 아교를 제거하고 그 둘을 떨어뜨린 뒤, 다시, 다른 순서로 붙여본 음악이니.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