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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 시대 미국의 서늘한 공포
김용언 2010-11-23

스웨덴 원작과 유사하고 또 다른 할리우드판 <렛미인>

“요즘 같은 제작환경에선 개인적인 영화를 만드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진다. 장르영화의 장점이라면 장르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가 진짜 말하고 싶었던 내용을 밀반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웃음) 나는 <렛미인>의 스웨덴 원작 소설과 영화 모두를 보면서 뱀파이어 이야기 안에 담긴 청소년기의 고통과 보편적인 고독을 느꼈다. 나는 <렛미인>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었다.”(맷 리브스) 제작 당시부터 찬반양론을 일으켰던 할리우드 버전 <렛미인>이 드디어 공개됐다. <클로버필드>로 호러스릴러의 총아가 된 맷 리브스가 과연 이 시적이고 내밀한 뱀파이어 성장물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 영화를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맷 리브스는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원작과 무척 닮은 듯하지만 많이 다르기도 한 할리우드 <렛미인>의 주요 특징들을 살펴본다.

리메이크의 운명은 언제나 잔인하다. 특히 할리우드에서 거대 예산으로 빅스타를 고용하여 만든 리메이크작은 기대보다 큰 수익을 올리지도 못하고 혹평만 뒤집어쓴 채 쓸쓸히 사라지게 마련이다(심지어 미카엘 하네케가 자신의 영화를 직접 리메이크한 <퍼니 게임>조차 그 운명을 비켜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들이 끝없이 리메이크의 유혹에 시달리는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드물게는 이런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원작을 온몸과 영혼을 다해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영혼들과 공유하며 사적인 파티를 벌이고 싶어서. 스웨덴의 아름다운 뱀파이어 성장물 <렛미인>을 리메이크한 맷 리브스는 그 중 한명이었다.

소녀보단 ‘소년’에게 무게

1983년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 자신의 얼굴에 염산을 뿌린 중년 사내(리처드 젠킨스)가 급박하게 병원으로 후송된다. 경찰이 병실로 들어와 “당신, 뭐 제의적 살인자 비슷한 건가?”라고 묻는다. 경찰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사내는 창밖으로 뛰어내린다. 그리고 카메라는 12살 소년 오웬(코디 스밋 맥피)에게 넘어간다. 이혼한 부모의 무관심과 학교 내 따돌림에 시달리는 고독한 소년. 그는 이웃집에 이사온 소녀 애비(크로 모레츠)와 사랑에 빠진다. 그즈음 마을에는 흉흉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오웬은 애비가 그 사건의 장본인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녀는 살기 위해 인간의 피를 먹어야 하는 뱀파이어였다.

원작 소설 <렛미인>과 스웨덴영화 <렛미인>을 비교했을 때, 할리우드 버전 <렛미인>의 가장 큰 차이점은 캐릭터의 묘사다. 할리우드 <렛미인>에서 중요한 건 애비보다 오웬이다. 살아가야만 하는 본능 때문에 고뇌하던 스웨덴 뱀파이어 소녀 이엘리의 상심은 이제 미국 소년 오웬에게로 3분의 1쯤 이양된다. 커다란 눈동자에 불안과 근심과 두려움을 가득 담고, 앙상한 신체로 이 잔혹한 세상에 내동댕이쳐지다시피 한 가련한 소년. 그는 <할로윈>의 마이클 마이어스 같은 가면을 쓰고 거울을 향해 “겁나냐, 계집애야?”라며 칼을 휘두른다. 스웨덴 버전에서 소년을 괴롭히는 급우들이 ‘돼지 새끼’라고 부르는 것과 할리우드 버전의 ‘계집애’는 큰 차이가 있다. “계집애라서 수영장에도 안 들어가는 거지?”라며 급우들은 오웬을 밀어 넘어뜨리고 그의 바지를 벗긴다. 애타는 심정으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도 그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술에 취해 있는 어머니의 얼굴은 아예 카메라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는다. 오웬은 ‘목이 잘려나간’ 엄마와 대화하는 셈이다. 거실에 걸린 조잡한 예수상은 여성에 가까운 이미지다. “우리를 악으로부터 보호해주소서”라는 저녁 기도문은, 그러나 이 가냘픈 예수상 앞에서 그리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오웬은 남성성의 상실에 대한 어떤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TV를 켜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강한 미국, 하드 보디를 외치지만 그는 학교에서 ‘계집애’ 소리나 듣는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 때문에 “난 보통 여자애가 아니야”라고 힘겹게 고백하는 애비와 단단한 유대감으로 결속되는지도 모른다.

더욱 섹슈얼한 성적 뉘앙스

스웨덴판 <렛미인>

오웬이 방 안에서 망원경으로 이웃집의 내밀한 풍경을 훔쳐볼 때, 혹은 상점가에서 열렬히 키스하는 커플을 몰래 곁눈질할 때 그는 성적인 갈망을 강하게 표출하면서도 자신이 ‘남성’이 아닐지 모른다는 불안에 내심 짓눌려 있는 것 같다. 그가 훔쳐보는 이웃집에선 남자의 애무에 몸을 맡기는 여인 혹은 열심히 헬스하며 몸을 만드는 사내가 등장한다. 오웬의 성적 갈망은 어쩌면 좀더 강해지고 싶다는, 남성성을 확인하고 싶은 소년 특유의 치기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애비와의 만남에서도 그렇다. 스웨덴 버전에서는 투명하리만치 하얀 금발 소년 오스칼이 이엘리에 비해 너무 어리고 순진해 보여서, 그가 이엘리에게 느끼는 사랑은 이성간의 화학작용이라기보다 좀더 강인한 상대에 대한 동경에 가까운 것처럼 보였다. 육체가 배제된 상태의 교감. 그러나 할리우드 버전에선 미묘한 성적 뉘앙스가 강해진다. 스웨덴 배우들보다 좀더 성숙해 보이는 크로 모레츠와 코디 스밋 맥피의 개인적인 특질도 큰 작용을 한다. 그러나 그보다도 상황과 설정이 이 둘 사이의 강한 화학작용을 암시한다. 오웬이 애비를 데리고 비밀 아지트 지하실로 내려갈 때, 애비가 “이제 뭘 할까?”라며 묻자 오웬은 자랑스러운 듯 “여긴 어른들은 모르는 곳이야”라고 답한다. 그건 마치 그녀를 이 자리에서 원한다는 오웬의 고백처럼 들린다. 혹은, 애비가 ‘초대’받지 않고 인간의 영역에 들어섰을 때의 결과를 오웬에게 보여줌으로써 역설적으로 그 사랑을 입증해 보이고자 할 때, 애비는 헤비메탈 밴드 KISS의 앨범 재킷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다. 80년대라는 배경을 설명하는 디테일일 수도 있으나, 어찌 보면 오웬에 대한 그녀의 절실한 감정이 담긴 기표로 읽히기도 한다. 애비가 피묻은 옷을 벗고 샤워를 할 때, 스웨덴 버전에서는 소년이 몰래 샤워장면을 들여다보다가 이엘리의 성기를 보고 흠칫 놀란다. 원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소녀가 실제로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닌 존재’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러나 할리우드 버전에서 애비가 몸에 샤워 가운을 두르고 나오자, 오웬은 그렉 킨 밴드의 달콤한 노래 <The Break Up Song>을 틀고 그녀를 바라본다. 이 순간의 섹슈얼한 느낌은, 청명하기도 하고 간질간질하기도 한 10대들의 열병 같은 사랑을 단숨에 함축하는 힘이 있다. 원작 소설에서 스치듯 지나갔던 <로미오와 줄리엣>의 구절, “난 사라져서 살거나, 머물러 죽어야 해”가 여기선 명백하게 소스를 밝히고 있다. 또래 소년들은 프랑코 제피렐리의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속 러브신을 보며 키득거리지만, 오웬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빌려와 읽는다. 그리고 애비는 그중 한 구절을 베껴 오웬에게 마음을 전한다. 죽음으로만 맺어질 수밖에 없었던 로미오와 줄리엣의 충동적이고 미숙한 열정이 이제 황량한 미국 교외 지역으로 옮겨와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으로, 그 옛날 가문의 원한에 맞먹는, 쉽사리 그 사이의 경계선을 건널 수 없는 한계 조건 내의 사랑으로 변한 것이다.

명백한 비극으로 달라진 결말

중년 사내와 오웬을 대비시키는 방식도 흥미롭다. 원작에는 사내에게 ‘호칸’이라는 이름이 부여되어 있다. 그는 어린 소년들에게 성욕을 느끼는 성향 때문에 교사직에서 쫓겨나고 배척당하고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 그러다가 이엘리를 우연히 만나고 “당신은 이제부터 나와 함께하는 거야”라는 그녀의 명령에 복종했다. 이엘리는 자기 대신 피를 구해줄 사람을 찾고 있었고, 호칸은 그녀의 노예이자 도구에 불과했다. 스웨덴 버전 영화에서는 사내의 이름도, 과거도 욕망도 지워진 채 거의 부성애에 가까운 모습으로 묘사된다. “옆집 남자애를 만나지 마”라고 이엘리에게 부탁하는 것이 고작이다. 할리우드 버전에서 맷 리브스는 이 부분을 대단히 영리하게 처리했다. 애비의 집에 들어온 오웬은 애비와 사내가 같이 찍은 스티커 사진을 발견한다. 사진 속 사내는 12살 정도로 보인다. 오웬은 그 순간 자신과 애비의 미래 역시 그러할 것임을, 사랑은 헌신과 복종에 굴복하고 노쇠의 자연현상을 피하지 못한 채 그렇게 닳아갈 것임을, 언제든 대체 가능한 무엇이 될 것임을 예감하는 듯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마지막, 스웨덴 버전과 똑같이 트렁크 속의 애비와 모스 부호로 대화를 나누고 오도카니 기차 좌석에 앉아 있는 오웬의 얼굴은 더 한층 비극적인 정조를 띤다. 스웨덴 버전은 어쩌면 예기치 않은 해피엔딩으로 볼 수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할리우드 버전에서는 명백한 비극이다.

맷 리브스는 원작과 거의 같은 시간대를 선택했다. 원작에선 1981년, 할리우드 버전에선 1983년이다. 미국의 80년대 초반은 레이건이 주창하는 ‘악의 제국’ 이론에 길들여져 있었다. 레이건은 “성경엔 세상에 죄와 악이 만연해 있다고 쓰여 있다. 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미국은 선한 국가다. 악은 저 바깥에 있다”라며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지칭했고 죄악과 폭력을 거듭 타자화했다. 리브스는 원작에서 가장 좋아했던 구절로 블라케베리의 과거를 설명하는 첫머리를 꼽은 바 있다. “거주자는 9천명이나 되었는데, 교회는 부재했다. 그 사실을 떠올려보면 이곳의 현대성과 합리성에 대해 얼마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들이 역사와 공포라는 유령에서 얼마나 자유로웠는지에 대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이 얼마나 무방비 상태였는지도 짐작할 수 있다.” 80년대 스웨덴의 블라케베리가 ‘역사와 공포라는 유령에서 자유로운’ 곳이었다면 80년대 미국은 내셔널리즘과 기독교가 결합한 엄격한 윤리와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얽매어 있었다. 레이건의 연설은 식당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병원에서 TV를 통해 편재하며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이같은 시절에 사춘기를 경험하는 오웬은 자신의 분노와 복수심을 어떻게 조절해야 할까. 맷 리브스는 스웨덴과 미국, 얼핏 정반대로 보이는 이 상황에서도 아이의 감정선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음에 주목했다. 자신을 괴롭히는 학교 친구들이 그야말로 구소련 같은 악의 축으로 보였을 수도 있고, 혹은 그들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스스로의 어두운 충동을 깨닫는 순간 몸서리쳤을 수도 있다. 대통령이 말하는 그 타자, 어둡고 사악한 타자가 자기 자신 안에 도사리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10대 초반의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는 상대방을 정말 죽여버리거나 스스로를 부정해야만 한다. 어느 쪽이든 세상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뱀파이어 소녀 애비가 나타났고, 그는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80년 미국의 시대정신 체현

할리우드 <렛미인>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끔찍한 장면 중 하나. 경찰이 애비의 집을 찾아온다. 오웬은 테이블 밑에 숨어 있다. 그는 경찰이 다가오는 걸 곁눈질하다가, 목을 돌려 천천히 그림자 속으로 숨어든다. 목을 돌리는 것만으로, 그의 얼굴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후 욕실에서 자는 애비를 습격하려던 경찰이 되레 애비에게 살육당할 때, 경찰은 오웬에게 피묻은 손을 내민다. 오웬은 마주 손을 내민다. 다음 순간 오웬은 욕실 문을 쾅 닫아버린다. 그럼으로써 오웬은 다른 세계, 애비와 같은 쪽에 속하게 된다. 별다른 대사없이 진행되는 이 시퀀스에서, 아주 간단한 몸짓을 통해 오웬이 이른바 ‘악의 제국’ 이론으로부터 탈출하는 과정이 포착된다.

공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리브스는 애초에 스웨덴의 혹독한 추위를 떠올리게 하는 콜로라도주를 염두에 두었으나 지인들의 추천으로 뉴멕시코의 로스앨러모스를 선택했다. 원자력연구실험소가 있고, 원자폭탄 투하로 2차 세계대전을 종결지음으로써 세계의 선한 파수꾼을 자처하던 미국의 폭력을 정당화한 문제적 장소. 혹은 외계인 생체실험이 행해졌다고 아직도 많은 이들이 믿고 있는 로스웰 역시 뉴멕시코에 위치한다. 미국의 ‘강한’ 핵심부가 자리하지만 동시에 그 자신의 내적 모순을 한꺼번에 드러내는 곳, 타자의 침입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곳. 리브스는 소설에서 묘사된 ‘계획도시’ 블라케베리와 비슷한 분위기를 미국에서 찾는다면 이곳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할리우드 <렛미인>은 고유한 디테일과 무드를 갖추게 된다. 스웨덴 <렛미인>에서는 카메라가 멀찍이 서서 황량한 풍경 안에 외롭게 서 있는 등장인물들을 포착했지만 할리우드 버전에서는 카메라가 인물들에게 좀더 가깝게 다가간다. 대신 그들을 둘러싼 풍성한 사운드, 레이건의 목소리, 저녁 기도, 혹은 오웬에게 ‘계집애, 괴물(freak)’이라고 놀리는 아이들의 위협적인 소음, 컬처 클럽과 데이비드 보위의 달콤하고 센슈얼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비슷한 시기 다른 공간의 시대정신을 완벽하게 체현한다.

맷 리브스는 “내가 ‘미국화’라는 단어를 쓰는 순간, 많은 사람들은 ‘아, 알겠어. 돈들여서 멍청한 리메이크를 한다는 뜻이지’라고 빈정거렸다. 하지만 내가 의도한 건 디테일들이었다. 뱀파이어물이라는 장르를 통해 성장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원작의 영혼을 훼손하지 않은 채 미국 관객이 보았을 때도 지극히 자연스럽고 진짜인 듯 보이게 하려는 그런 의도였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그의 의도는 성공했다. 똑같은 원작을 두고 자신만의 버전을 만들어낸 것이다. 할리우드 버전 <렛미인>은 스웨덴 버전 <렛미인>과 무척 닮았지만 또 많이 다른, 두편 모두에 공평하게 애정을 분배할 수 있을 만큼 관객의 너그러운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신 스틸러, 리처드 젠킨스는 누구?

물론 크로 모레츠와 코디 스밋 맥피가 할리우드 <렛미인>의 뛰어난 정조를 만들어낸 당사자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영화에서 시선을 한참 붙들어두는 존재는 애비 옆을 지키는 사내를 연기한 리처드 젠킨스다. 토머스 매카시의 2007년작 <비지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이 노배우는 얼마 되지 않는 출연 분량이지만 닿을 수 없는 존재 애비에 대한 가슴 아픈 사랑을 손에 잡힐 듯 되살린다. 일례로 그는 사내 캐릭터를 분석하면서 “그가 애비를 만난 건 12살 무렵이고, 그는 평생을 그녀에게 바치기로 맹세했을 것이다. 그는 학교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애비에게 남기는 쪽지에서, 스펠링이 틀리는 게 맞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미안해, 애비’라는 문구에서, ‘sorry’를 ‘sory’라고 쓰자고 제안한 사람이 바로 젠킨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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