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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답지 않은 조폭들의 스크린 점령
2001-12-28

<친구>부터 <두사부일체>까지 조직폭력배를 소재로 한 다섯편의 영화가 올해 22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지난 한햇동안 41편의 한국영화가 동원한 2270만명과 맞먹는다. 올해 영화기자를 하면서 가장 신경이 쓰였던 건 이런 흥행의 원인이 뭘까였다.

<친구>가 대박을 떠트릴 때, 왜 한물간 조폭영화가 흥행하는지 궁금해 영화계 인사들의 견해를 묻고 기사를 썼다. `교복세대의 향수` `학교를 뛰쳐나간 친구들을 바라보기만 하면서 성장한 대다수 모범생들에 대한 위로` 등의 표현을 썼지만 딱 집어 이거라고 말하기 힘들었다. 마침 고교생이 교실에서 급우를 살해한 사건이 터지자, <친구>가 폭력교사의 주범으로 몰렸다. 한 방송사에서 조폭영화의 폐해에 대한 코멘트를 요청해도 되겠냐고 물었을 때, “학교 현실이 문제지 그걸 표현한 영화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더 이상 연락이 없었다.

곧 이어 나온 <신라의 달밤>의 조폭 두목 이성재는 멋지고 쿨해서 도무지 조폭같지 않았다. 심지어 상대조직 두목을 생매장하려 한 부하를 비인간적인 짓을 했다며, 선생이 학생 기합주듯 팬다. 그에게 지성과 근력을 다 몰아주면서 멋있고 재밌으면 된다고 말하는 이 영화는 조폭을 미화했는지 여부를 떠나, 약자와 패배자에 대한 배려는 안전에 없는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의 냄새가 풍겨서 싫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의 정치적 태도를 문제삼는 건 열없어 보였다.

<조폭 마누라>를 봤을 때, 정치적으로 문제삼을 여지는 더욱 더 줄어들었다. 조폭이라는 존재에 대한 갈등이 없는 신은경은 성질 사나운 독신 직업여성에 가까와보였다. 조폭이라는 설정은 액션장면을 집어넣기 위해, 또 극의 맥락과 관계없이 절정부를 끌어내기 위해 필요한 것 같았다. 그때부터 답답하게 다가온 건, 액션과 썰렁개그와 슬랩스틱코미디를 적당히 끌어와 버무리는 기획의 안이함이었다. 뒤에 나온 <달마야 놀자>는 조폭이기 때문에 갈등하는 내용이 있지만, 야비함이나 잔혹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두사부일체>도 마찬가지다. 선량한 사람 등쳐먹는 모습도 나오지 않고, 조폭조직원들은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직장인같다. 다만 말로 할 소통의 일부를 주먹으로 할 따름이다. 조폭이라는 범법사회와 일반 준법사회의 변별점은 화면 뒤로 숨고, 그래서 소재나 주제가 사회와의 긴장을 초래하지 못한다.

그래도 어디든 대중들이 몰려갈 때는 잘 살펴보고 전향적인 시각에서 원인을 잡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벼운 걸 원해서, 현실이 짜증나 폭력으로 대리만족하고 싶어서 등등의 설명은 부족하다. 그런데 그전에 조폭 영화들이 먼저 `조폭다움`을 벗어던진다. 현재 기획중인 조폭 코미디도 없는 듯하다. 어딘가 허전한 연말이다.

임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