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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으로 되살아날 광란의 ‘도가니’
장영엽 사진 최성열 2011-01-11

황동혁 감독의 <도가니>

공지영 작가의 소설 <도가니>가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솔직히 걱정이 앞섰다. <도가니>는 ‘센’ 이야기다. 단순히 표현과 수위의 문제가 아니라 소설이 담고 있는 문제의 무게감이 굉장하다. 무진의 한 청각장애인학교에서 교직원들이 어린 학생들을 성적으로 무자비하게 유린했고, 마침내 이 문제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려는 교사(강인호 역·공유)가 나타났으나 그가 맞서야 할 지역 기득권층의 ‘부당 커넥션’은 더 넓고 깊다. 게다가 이 사건은 광주 지역에서 일어난 실화이며, 아직도 피해자들과 가해자 사이에 수많은 소송이 진행 중이다. 해외 입양아와 사형수 아버지의 만남을 다룬 공중파 방송의 실화 다큐멘터리를 영화 <마이 파더>로 연출한 경험이 있는 황동혁 감독이 <도가니>의 시나리오를 받고 한달간 많은 고민을 했다는 건, 그래서 당연하다. “이걸 상업영화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되더라. 굉장히 세고, 우울한 이야기잖나. 피해자들은 1심 재판에서 지고, 주인공은 도망치듯 무진을 떠난다. 여전히 진행 중인 사건이라는 점도 걱정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 감독이 <도가니>의 영화화를 결심한 이유는 소재의 따끈따끈한 시의성 때문이다. 김길태, 김수철, 장안동 어린이 성폭행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아동 성폭력은 많은 매체에서 ‘올해의 10대 뉴스’로 꼽을 만큼 중요한 이슈였다. 그러나 소재의 부담감 때문인지 정작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는 없었다. 결국 사회적으로 한번쯤은 반드시 나와야 할 작품이라는 생각이 황동혁 감독의 결심을 굳혔다. 다만 소설이 담고 있는 소재의 강도는 다소 완화할 생각이다. 이러한 의도를 담은 각색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설정은 여주인공 캐릭터와 결말의 변화다. 성폭력을 당한 학생들을 보듬는 인권운동센터 간사인 여주인공(소설의 서유진 역)은 영화의 무게를 덜어줄 밝은 이미지의 인물로 설정했다. “소설을 읽으면 모든 사람이 다 무거운 사연을 안고 있다. 누가누가 더 힘든가 내기하는 것처럼. 소설에선 그게 깊이였을 수 있지만 영화에선 관객에게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패배하는 소설의 결말 또한 바꿨다. 황동혁 감독의 귀띔으로는 관객이 영화를 본 뒤 “소시민은 힘이 없다”는 씁쓸한 마음으로 극장을 나서지 않길 바라는 마음의 각색이란다. 한편 <도가니>는 청각장애인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소리’에 대한 묘사가 기대된다. “청각장애인 아이들의 입장에서 들리지 않는 소리의 시점을 주관적으로 표현해보고 싶다. 극중 연두라는 아이가 조성모의 노래를 들었다고 하는데, 과연 이 아이의 귀에는 그 노래가 어떻게 들렸을까. 오디오적인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공유라는 의외의 캐스팅도 흥미롭다. 아직은 달콤한 연인의 이미지가 강한 그에게서 전직 운동권 출신 투사의 얼굴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그러나 역시 가장 궁금한 건 영상으로 되살아날 광란의 ‘도가니’, (공지영의 표현을 빌려) ‘발정난’ 대한민국의 곪은 환부다.

가상도시 무진

황동혁 감독은 <도가니>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안개’와 ‘침묵’이 떠오른다고 한다. 두 가지 요소 모두 영화에서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안개는 소설가 김승옥이 <무진기행>에서 창조했으며 영화의 배경이 되는 가상도시의 특징이지만 사람의 시야를 가린다는 점에서 진실을 덮으려 하는, 혹은 자신의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하는 등장인물의 모습을 이미지로 구현해주는 장치다. 침묵은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 학생들의 상황과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기득권층의 묵인을 각각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이 말로 유추해보건대 <도가니>는 안개 자욱한 무진이란 공간과 침묵을 청각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에 주목해야 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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