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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블랙] 미친 존재감, 그 누가 막을쏘냐
김용언 2011-01-24

<걸리버 여행기>의 잭 블랙 Jack Black

공주를 사랑하는 평민은 괴롭다. 게다가 공주 옆에는 온갖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허영덩어리 귀족 약혼자도 버티고 있다. 평민은 고민 끝에 이 나라에 불시착한 거인에게 도움을 청한다. 거인은 자신이 구애의 제왕이라며 허풍을 떤다. 평민은 거인이 시키는 대로 공주의 침실 발코니 아래로 간다. 벽 뒤에 숨은 거인이 입을 여는 순간, 궁금해진다. 혹시 그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그 유명한 구절이라도 외우려고 하는 건가, 아니, 저 허풍선이 거인이 셰익스피어를 읽은 건 맞나? 거인이 입을 여는 순간, 관객은 폭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다. “내 여자가 되려면/ 돈이 많을 필요도 없어/ 내 왕국을 통치하기 위해/ 꼭 쿨하지 않아도 돼….” 느닷없이 팝 가수 프린스의 <Kiss> 가사가 튀어나온 것이다. 로미오의 대사를 읊어도 시원찮을 판에 프린스의 대담한 가사라니, 너무나도 거인, 아니 잭 블랙스러운 임기응변이었다. 잭 블랙이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각광받는 코미디 배우인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맹활약을 펼치는 절친한 코미디 배우들을 묶어 부르는 명칭 ‘프랫 팩’(frat pack) 군단(오언 윌슨, 루크 윌슨, 벤 스틸러, 윌 페렐, 빈스 본, 스티브 카렐 등) 중에서도 그러하다.

어린이도 어른도 나와 함께라면 웃음꽃

현재 시점에서의 짐 캐리에게는 유머보다 페이소스가 더 잘 어울리며, 세스 로건이나 오언 윌슨에게는 ‘철없는 사나이들끼리’ 통하는 유머가 훨씬 강하다. 그러나 잭 블랙은 어린이들과 어울려도, 성인들과 함께 나와도 혹은 아주 가끔씩 출연하는 정극 연기에서도 썩 잘 흡수된다. 아이 같은 대담한 뻔뻔함이 어느 자리에 갖다놓더라도 잭 블랙만의 개성으로 흡수되며, 과장된 슬랩스틱 없이도 미세하게 바뀌는 표정과 대사의 템포와 웅장하게 울리는 ‘목욕탕’ 목소리만으로도 관객은 박장대소할 수 있다. 설령 그의 ‘크기’가 달라졌다 하더라도 말이다. 잭 블랙은 이번엔 소인국 릴리푸트로 떨어진 ‘거대한’ 인간 레뮤얼 걸리버를 연기했다.

영화 <걸리버 여행기>는 오로지 잭 블랙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3D를 넘나들며 여러 배우들을 죄다 ‘소인’으로 만들어버리는 최첨단 테크놀로지야 당연한 전제조건이지만, 300여년 동안 사랑받아왔던 조너선 스위프트의 고전을 현대로 옮겨왔을 때 ‘모두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인물을 가장 참신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배우의 선택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잭 블랙은 지금 시점에서 최선의 선택이었다. ‘잭 블랙=걸리버’라고 했을 때, 우리는 휴머니티에 대해 믿음과 혐오를 넘나드는 고뇌에 시달리는 원래의 걸리버(조너선 스위프트의 분신)를 떠올리게 되지 않는다. 이건 어디까지나 전 연령층 대상의 블록버스터 판타지 코미디가 아닌가. 게다가 잭 블랙의 전작 이미지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그러니까 <걸리버 여행기> 속에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만 열중하는 심술궂은 천진함과 <스쿨 오브 락>의 로큰롤 ‘덕후’의 기질, 무모한 도전을 감행하는 <나쵸 리브레>의 선의, <쿵푸 팬더>의 턱없는 자신감이 모두 녹아들어가 있다. 지금까지 잭 블랙의 대표작이라 일컬어지는 작품 속 이미지를 좀더 부드럽고 온화한 버전으로 다운그레이드하여 총망라한 것이다. 단지 리드 싱어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의 밴드 ‘터네이셔스 D’ 노래가 삽입되지 않은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넣어보려고 했는데 분위기가 맞지 않았다. 우리는 윌 스미스처럼 히트 작곡가는 아니다. <걸리버 여행기>의 주제곡을 쓰고 싶었지만 우리가 만든 노래는 지저분하고 별볼일 없는 노래들이다.”(잭 블랙)

오해말아요 난 늘 진지한 배우랍니다

본명 토머스 제이콥 ‘잭’ 블랙, 1969년 캘리포니아 샌타모니카 출생, 인공위성 엔지니어 부모 밑에서 태어나 UCLA까지 들어갔지만 2년 만에 그만두고 쇼비즈니스계로 뛰어들었다. <X파일> 등 TV드라마 조연과 수많은 영화(여기에는 <밥 로버츠> <화성침공> <데드맨 워킹>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등이 포함된다) 단역을 전전한 끝에 마침내 2000년 <Let’s Get It On>을 열창하던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를 통해 강렬한 개성을 인정받았다. 그 이후는 모두가 알다시피 승승장구다.

이쯤 되면 언제나 나오는 (멍청한) 질문. “당신은 진지한 연기를 할 생각이 없나요?” 코미디 배우가 뭔가 ‘정극’ 배우에게 한수 꿀린다는 듯한 뉘앙스를 깔고 있는 이 질문을 잭 블랙은 수도 없이 받았다. 모르는 말씀. 그가 지금까지 한번도 진지하게 나오지 않았던 적은 없다. 그는 코미디 연기를 할 때도 진지했고(그가 영화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을 기억해낼 수 있는가? 잭 블랙은 현대판 버스터 키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굳이 따지고 든다면 피터 잭슨의 <킹콩>과 낸시 메이어스의 <로맨틱 홀리데이>에서 광기와 온화함이라는 양 극단의 연기를 웃음기 없이 편안하게 해치웠다. 다만 잭 블랙은 코미디를 가장 좋아할 뿐이다. “현재는 드라마에 그리 욕심을 내지 않고 있다. 내가 이런저런 역을 다 할 수 있다는 걸 입증하겠다는 목표는 없다. 내가 하는 모든 역할에 희극적인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희귀종 발견에 목숨 거는 야생조류 관찰자로 등장하는 <빅 이어>(오언 윌슨과 동반 출연한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잔인한 블랙코미디 <버니>, <쿵푸 팬더2>와 <머펫>(세서미 스트리트의 그 인형들 맞다)이 잭 블랙의 차기작들이다. 그의 취향은 아직까지 건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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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이십세기 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