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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이슈] 그래도 일본 정부를 믿는다
김소희(시민) 2011-03-21

아이가 먹고 싶어 하던 버터를 듬뿍 발라 새우를 구워줬다. 놀이터에서 괴물놀이를 지칠 때까지 했다. 방치돼 있던 베란다 화분에 물을 주고, 이웃을 불러 밥을 차렸다. 몇몇 지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햇볕에 이불을 널고, 박완서 소설을 읽고, 주민센터 요가에 늦지 않게 갔다. 소소한 일상이 눈물나도록 고마웠다. 그들에게도 그날이 이런 여러 날 중 하나였을 것이다.

천재와 인재 중 하나를 고르라면 차라리 인재를 택하고픈 기분이었다. 최소한 맥락을 설명할 수는 있으니까. 숨죽인 채 텔레비전 뉴스 화면을 봤다. 그런 생각도 잠시, 원전 폭발과 방사능 유출 위험을 접하자 이런 구분이 무의미했다. 특집뉴스 끝머리에는 아랍에미리트 원전 기공식에 참석해 “한국 원전이 최고”라고 자랑한 대통령의 모습이 나왔다. 방사선 폭증 위기가 48시간이 고비라는 진단이 나온 날 대통령은 “한국 원전은 일본보다 뒤에 지은 거라 안전하다”고 말했다. 민망했다. “완전히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됐던 위험도 실제로는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며 원전 가동시한 연장 결정을 연기한 독일 총리 모습과 대비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에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위험은 없다. 위기 대응 매뉴얼이 강박적이란 소릴 들을 만큼 꼼꼼하고 잘 훈련돼 있는 일본도 대재앙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게다가 우리 원전은 진작부터 부실 시공이 확인돼 왔다.

민영 도쿄 전력의 무능과 일본 정부의 소극적 정보공개 및 대처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지만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일본 정부를 믿는다. 방사능 위험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대피하는 와중에도 반대 차로로는 단 한대의 차량도 튀어나오지 않는 기이할 정도로 고집스러운 질서의식에 기가 막히면서도, 각국에서 온 구호의 손길을 안내하고 협조할 여력이 안된다며 일부 되돌려보낼 만큼 체계를 중시하는 대처 방식을 답답해하면서도, 지금으로선 일본의 재난 대응 시스템과 이를 지휘하는 일본 정부를 믿고 응원할 수밖에 없다.

화면에 비친 일본 도호쿠 지역 해안 마을은 진작에도 화려하지 않았다. 높은 아파트도 허황된 조형물도 없었다.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수수해도 그 무엇보다 값진 생업이요 터전이었을 것이다. 전화기 든 손을 덜덜 떨던 그녀는 가족의 생사를 확인했을까. 마음 깊이 기도한다. 부디 더이상의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