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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클레이메이션 <마우스>
2002-01-03

당신 오른손 아래 신음하는 쥐를 보라

빚에 쪼들리다 못한 어느 가장이 장기를 팔기로 결심했다. 사채업자가 눈을 가린 채 안내한 곳은 어딘지 모를 수술실. 마취에서 깨어나면 그의 몸에서 콩팥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얼마가 지났을까.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눈을 뜬 그는 그러나 앞을 볼 수 없었다. 콩팥은 물론 각막까지 제거된 채 서울역 광장에 버려진 것이다.

오싹한 이 실화를 떠올릴 때마다 느꼈던, 가슴 아린 고통을 다시 전해온 게 바로 <마우스>(Mouse Without Tail)다. 지난 11월30일 열린 ‘대학창작애니메이션 2001’에서 공식 상영된 <마우스>는 한성대 박원철씨의 졸업작품. ‘2001 대한민국영상만화대상’에서 스토리상을 수상했고, 문화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지원금을 받은 단편 클레이애니메이션이다.

주인공은 제목 그대로 마우스, 무표정한 회색 쥐다. 그의 일터는 컴퓨터 마우스. 비좁은 마우스 안에서, 주인이 원하는 대로 볼의 방향을 본체에 전달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쉴 틈이라곤 없다. 언제나 헉헉대며 볼의 움직임을 전달하다가 주인이 컴퓨터를 끄면 겨우 밖으로 나올 수 있다.

일이 끝나면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 회색 쥐. 온기없는 누추한 집 역시 그의 안식처가 되지 못한다. 방에 있는 것이라곤 침대와 가재도구 몇개. 배가 몹시 고프지만 먹을 것이 없다. 라면 하나를 겨우 찾아냈지만, 에라 모르겠다, 이불도 없이 침대에 눕는다. 몇 시간이나 눈을 붙였을까. 또다시 일터로 향할 시간이다. 갈수록 버거워지는 일. 숨소리는 가빠지고, 땀은 비오듯 쏟아진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연명하는 회색 쥐에게 청천벽력이 떨어졌으니, 바로 광 마우스의 등장이다. 이제 시대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광 마우스. 번쩍번쩍 위세 당당한 광 마우스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쥐는 이제 살아갈 의욕조차 없다. 소주 한병으로 시름을 잊으려는 그에게 눈이 번쩍 뜨이는 전단지가 보였다. 파격적인 가격으로 광 마우스 개조 수술을 해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좋을 때가! 동전까지 탈탈 모아 수술비를 마련한 그는 병원으로 향한다.

그곳은 수상한 냄새가 나는 지하. 시설도 열악하다. 누가 들어오건 말건 눈길도 안 주는 고약한 인상의 의사. 그에게 전단지를 보여주며 수술을 부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수술비가 싼 대신 의사에게 꼬리를 내줘야 한다는 것이다.

달리 무슨 선택이 있겠나. 고심하던 그는 이윽고 눈을 질끈 감고 수술대에 눕는다. 수술대에서 올려다 본 라이트는 왜 저렇게 무자비하게 느껴지는지. 마취로 눈이 감겨온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눈을 뜬 쥐는 어설프지만 배꼽에 광 마우스 장치를 부착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다. 이제 취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만족스럽게 병원을 나서는 그의 엉덩이에는 꼬리 대신 반창고가 서글프게 붙어 있다.

15분 동안 펼쳐지는 <마우스>는 대사 하나 없이 조용하다. 그런데 클레이로 만들어진 조용한 캐릭터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름도 모르는 주인공 쥐의 무기력한 표정이, 그 눈동자가 아직도 생생하다. 주인공의 마음마저 느껴지는 섬세한 연출 역시 잊을 수 없다. 문득, 오른손의 마우스를 바라본다. 이 안에도 땀흘리는 마우스가 들어 있을까. 그렇다면 밤낮으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나는 엄청난 착취자인데. 노트북 마우스는 그나마 센서형이라서 다행이야. 자위해보지만 역시 도망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잠재적 착취자이자 부속품이라는 생각에서. 적어도 나는,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인간은 과연 시스템을 바꿀 수 있을까. 자꾸 의구심이 드는 건 잠시 지쳤기 때문… 이어야 한다. 김일림/ 월간 <뉴타입> 기자 illim@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