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도서
천운영 소설집 <바늘>
2002-01-03

인간의 냄새

시인이야 워낙 ‘유난떠는’ 전통이 강하므로 그렇다치고 소설가는 평소 소설가라는 사실을 단골 술집에서조차 들키지 않는 경우가 진짜 소설가라는 게 내 복잡한 문단 경험의 결론이다. 소설가는 물론 남다른 재능의 소유자지만 그 재능의 성격이 ‘보통=일반, 속으로 특수한’ 까닭이다. 70살을 넘은 노시인이 ‘아직도’ 광화문 지하도에서 빡빡머리 새파란 전경에게 불심검문을 당한단들 탓할 것이 별로 없지만, 소설가는 데뷔와 동시에 ‘햄릿형’ 문청기질을 벗고 흡사 왕년의 베테랑 ‘짜라시 운반책’처럼 외모가 군중 속으로 지워져야 한다.

그것은 작품 안에서 더욱 그렇다. 작자가 소설가임을 두드러지게 내세우는 소설은 신변잡기 수준을 벗기 힘들다. 남성소설가가 ‘문체의 웅혼’을 여성작가가 ‘감각의 섬세’를 과시하는 것이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진정한 걸작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소설도 궁극의 목표는 ‘웅혼’, ‘섬세’ 등 성의 지감각(知感覺)의 극한지경을 통해 성을 극복하려는 인간열망의 소산이다.

천운영 소설집 <바늘>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것은, ‘소설찾기 열정’을 과도하게 열거한 ‘작가의 말’에도 불구하고 소설 내에서 작자의 성과 신원이 좀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여자라는 느낌도, 그렇다고 남자라는 느낌도, 없다! 그렇다. 천운영 소설집 <바늘>로 하여 우리는 ‘여성작가 시대’라는 언론-유행어를 ‘단편소설 시대’라는 문학-평론어로 바꿀 계기를 갖게 되었다.

그 계기의 질을 제고하기 위해 그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이렇다. 묘사의 사실주의적 치열성이 자칫 자연주의/낭만주의 기법으로 빠지지 않게끔 스스로 경계할 것. 신기한 일상을 형상화하는 데서 더 나아가 ‘일상의 신기’ 혹은 ‘일상=신기’의 차원을 형상화하는 일에 육박해 들어갈 것….

초식동물에게는 웬만한 냄새가 죄다 악취지만 육식동물에게는 비린내조차 향기다. <숨>은 초식동물이 되고 싶은 육식동물의 (불가능한) 열망을 후각화함으로써 역동과 구체를 동시에 획득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걸작은 <행복고물상>. 냄새로 말하자면 소설은 인간의 냄새를 문학의 향기로 바꾸어내는 작업이다. 여기서 향기는 악취의 반대말이 아니다. 늙어감의 악취가 그대로인 채 삶의 연습곡에 달한다는 거. 고단한 피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음악의 연습곡 말이다.(창작과 비평사 펴냄) 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