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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one Sound, <Earth Power>
2002-01-03

소리의 미로 속으로

‘테크노’라고도 불리는 현대의 전자음악 ‘일렉트로니카’는 헤드폰으로 들을 때 가장 흥미로운 장르다. 양쪽 귀를 장악하는 헤드폰은 완벽하게 밀폐된 소리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스테레오 효과, 무척 예민하지 않다면 무심코 넘겨버리기 쉬운 미니멀한 음색의 변화, 겹겹이 덧씌워진 두터운 소리의 층위 같은, 소리 자체가 주는 재미. 이런 잔재미를 만들어내거나 느끼기 위해서라면 일렉트로니카와 헤드폰은 ‘딱 좋은’ 짝이다.

에프톤 사운드는 H2O, 삐삐밴드, 99, 원더버드, 3호선 버터플라이 등을 두루 거치며 늘 중심에서 빗겨나 있으면서도 늘 새로운 사운드를 들려주었던 박현준과, 일찍이 홍대 앞에서 시대를 앞선 아방가르드를 실험했던 옐로우 키친에서 활동하다가 캐나다로 건너가 계속 음악을 해온 여운진이 만나 결성한 프로젝트 밴드다.

에프톤 사운드의 음악은 헤드폰에 감싸진 양쪽 귀 사이 어딘가에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해왔던 뇌세포를 자극하여 새롭게 일깨워주는 듯한, 흥미로운 ‘감상용’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만날 때 느낄 수 있는 그런 신선함을 전해준다. 열곡의 다채로운 소품으로 이루어진 <Earth Power>를 듣고 나면, 복잡한 소리의 미로 속을, 그러나 폐소공포증 같은 건 전혀 없이 유쾌하고 느긋하게 돌아다니다가 나온 느낌이다.

피아노가 연주하는 주제 가락과 천상의 목소리가 곡 전체에 걸쳐 반복되는 첫곡 <Alright>와, 경쾌한 기타와 꿈틀거리는 리듬 위로 윤희중, 미료(허니 패밀리)의 랩과 조원선(롤러코스터)의 청아한 목소리가 서로 얽히는 이국적인 두 번째 곡 <Carib>는 스캣과 보컬이 등장하여 일렉트로니카의 ‘무언극’에 취미가 없는 이들을 위한 (것인지도 모르는) ‘워밍업’이다.

앨범 중반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미로가 펼쳐진다. <All day> <Kool & the gang> <Advil orange> <Earth power>는 앨범의 하이라이트를 이룬다. 디제이 렉스(DJ Wreckx)의 턴테이블 스크래칭, 구식 신시사이저의 음향, 고전적인 아날로그 펑크의 그루브, 프리재즈풍의 색소폰 가락, 변화무쌍한 비트와 음색을 정교하게 배치하는 작법 같은 상이한 요소들이 공존하면서 낯설면서도 뚜렷한, 시각적 풍경을 펼쳐낸다. 왠지 미로 속에서 쫓고 쫓기는 ‘유쾌한’ 추격전 장면이 나오는 영화라면 썩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다.

얼어붙은 음반시장 상황은 주변적인 장르의 음악에는 더더욱 차갑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이런 음반들을 꾸준히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반갑고, 널리 그리고 꾸준히 소개되지는 못하는 현실이 아쉽다. 마케팅과 홍보가 전무하다시피하고 유통이 취약하기 그지없는 마이너리티 음반에 대해, 인터넷을 통해서 대안적인 마케팅, 홍보 네트워크를 마련해보고자 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그동안 적소시장을 개척해온 인터넷 음반매장 창고닷컴(www.changgo.com)에서 이 앨범을 제작, 발매했다는 사실은 의미가 적지 않다. 이정엽/ 대중음악평론가 evol@nownur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