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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이야기> 성장과정 그린 팬터지
2002-01-08

바닷가 마을에 사는 초등학생 남우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다. 식당을 하는 어머니, 할머니와 함께 사는 내성적인 남우의 절친한 친구는 같은 반 학생 준호다. 그러나 준호마저 서울로 전학을 가려 한다. 남우는 어느날 폐쇄된 등대 안에서 환상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구름처럼 생긴 큰 개와 몸이 흰 털로 뒤덮힌 소녀 마리를 만난다. 그뒤 몇차례 이 환상의 세계와 대면하고, 가까운 사람이 멀어져 가는 데 따른 안타까움에 비례해 마리에 대한 동경이 커진다. 그런 마음의 파고가 절정에 이를 때 마을에 폭풍우가 몰아친다. <마리 이야기>는 남우가 만난 환상의 세계를 한 축에 놓고,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상적 이야기를 대칭적으로 배열한다. 환상에서나 현실에서나 이렇다할 큰 사건은 없지만 두 세계의 병치는 성장기 소년의 내면을 섬세하게 짚어내는 역할을 한다. 소년에게 환상은 일종의 성장병인 동시에 성장의 진통을 달래주는 치료제이기도 하다. 어쩌면 환상 아닌 실재였을지도 모른다. 소년 말고 누가 알 수 있을까. 폭풍우가 일던 날, 남우에게 마리가 나타나 폭풍우를 잠재워주고 마을에는 평화가 온다. 남우가 가까운 이들의 떠남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자 마리는 큰 개를 타고 바다 저편으로 사라진다.<마리 이야기>에서 인상적인 것은 화면 가득 펼쳐지는 환상의 세계의 모습이다. 그 곳은 행복이나 풍요의 정서를 반영한 형상이 아니다. 바닷 속과 허공이 뒤섞인 듯한 공간에 큰 개와 마리가 날아나니듯, 헤엄치듯 부유하는 이 세계는 희노애락의 세속적 욕망과 가치를 초월해 있는 것 같다. 그건 어른들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실제로 존재하는 <이웃집 토토로>의 정령들의 세계와 다르고, 환상이 현실에 작용하는 남미의 마술적 리얼리즘과도 또 다르다. 그 공간은 꿈 속처럼 아련하면서도, 정적이고 차가운 탓에 긴장감을 준다. 영화는 청년이 된 남우의 회상에서 시작해 소년시절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이 환상을, 시간과 함께 잊혀져 가는 소중한 것들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한다. 환상과 현실 사이의 긴장을 털어내고 순한 이야기로 영화를 마무리짓는 것이 아쉽다. 이병헌, 배종옥, 안성기, 장항선 등 인기 배우들이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임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