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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남자> `깡패가 무슨 사랑이야!`
2002-01-08

다음달 6일 개막하는 제52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가 11일 개봉한다. 이미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관객을 만난(<한겨레> 지난해 11월 13일자 참고) 이 작품은, 첫눈에 반한 여대생(서원)을 `창녀`로 만드는 뒷골목 남자(조재현)의 비틀린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우연히 만난 여대생 선화에게 입을 맞추었다가 심한 모욕을 당한 한기는 선화를 함정에 빠뜨려 사창가의 창녀로 전락시킨다. 한기의 마음엔 선화에 대한 애증이 공존한다. 이 `나쁜 남자`는 잔혹한 수법으로 선화를 사창가에 얽어매 두지만, 어느 순간 “깡패가 무슨 사랑이야!”라고 절규하며 속내를 드러낸다. 사창가에서 벗어나려 안간힘 쓰던 선화는 한기가 그를 놓아주려 할 즈음, 그 또한 그에 대한 애증을 함께 느낀다. 둘은 과거의 사창가로 다시 돌아가지 못할 처지가 됐지만, 그렇다고 그때까지 살아온 방식에서 벗어나지도 못한다.

`여대생`이던 선화가 이전의 삶을 체념하고 `창녀`로서의 삶을 살아간다는 게 이야기의 굵은 흐름이지만, 그다지 섬세하게 그려지진 않았다. 감독은 그게 `운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게 운명이긴 하지만,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다 `운명`일까. 운명은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사력을 다해 싸우는 이에게만 비로소 언뜻 얼굴을 드러낸다. 체념한 사람은 그 뒷모습조차 보기 어려운 게 운명 아닐까. 가령 찢어진 사진 한 장을 통해 `이미 정해진 무엇`이 있음을 암시하는 식의 연출은 좀 안일한 느낌이다. 선화와 한기라는 인물에서 세월의 무게나 삶의 두께가 느껴지지 않고 다만 `감독이 만들어낸 인물`이란 느낌이 드는 까닭은 이런 데 있을 것이다.

이상수 기자lee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