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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강 감독 `따뜻한 얘기 하고싶었다`
2002-01-08

`한국의 월트 디즈니`, `한국의 데츠카 오사무`라는 칭호를 붙일 수 있는 인물을 꼽아본다면? 60~70년대 <호피와 차돌바위>의 신동헌·신동우, <로버트 태권 브이>의 김청기 등이 먼저 떠오르지만 일가를 이루지는 못했다. 80년대 후반에 단편을 내놓은 이용배, 오성윤 등 서울무비 팀과, 시사만화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뛰어든 박재동 감독이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아직 장편 애니메이션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성강(40) 감독은 아직은 아니지만, `한국의…'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유력한 후보중의 한명이다. 지난 99년 단편 <덤불속의 재>가 애니메이션의 칸영화제라고 할 수 있는 앙시 에니메이션 페스티벌 본선에 국내 최초로 진출했다. 오는 11일 개봉하는 그의 첫 장편 <마리 이야기>는 최소한 화면과 녹음, 일관성있고 안정된 이야기 방식이라는 면에서 만큼은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다양한 구도와 색상으로 펼쳐지는 한장면 한장면이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하고, 동작이나 음성 연기도 이전의 국내 애니메이션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자연스럽다.

“첫 장편은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에서 가장 가깝게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보편적이고 사람들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마리 이야기>는 특별한 기복이 있다기보다 한 소년이 성장하고 주변사람들과 이별하면서 불안감을 느낄 때 환상을 만나는 이야기이다. 자극적 스토리는 없지만 감성을 건드리는 면은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마리…>는 사건 전개보다 소년의 주관적 환상을 감성적으로 전달하는 데 역점을 둔다. 극적인 이야기를 선호하는 관객이라면 다소 생경할지도 모른다.

“현실과 판타지의 균형을 어디에 잡을지 많이 생각했다. 대부분의 팬터지물은 주인공이 환상에 개입하면서 시작한다. 꿈과 모험이 시작되고, 보물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러나 이 영화의 초점은 소년의 성장 이야기이고 환상은 성장에 필요한 어떤 요소다. 그래서 환상의 세계를, 소년이 만나기 전부터 원래 있던 것으로 그렸다. 소년이 환상의 주인도 아니고, 스쳐가듯 그곳에 들어온 인물이다. 그 환상이 어떤 욕구를 반영하기는 하지만, 쟁취하고 소유하는 그런 느낌을 없앤 환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긴가 민가 싶고, 기억에서 사라지면 없는 일이 되는….”

행복이나 희망의 감정을 가공하는 일은 조금이라도 싫다는 식인 그가 애니메이션 감독이라는 점은 의외다. 경력도 독특해 연세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전공과 달리 화가가 됐고, 90년대 중반에 애니메이션에 뛰어들었다. 다음에 만들려는 애니메이션은 땅콩 모양의 캐릭터들이 펼치는 코믹 무협 액션이다. 이전에 단편으로 실사영화를 만들기도 했던 이 감독은 실사 장편영화도 계획하고 있다. “정체성에 대한 얘기인데, 여자의 영혼이 남자의 몸에 들어오고… 18살 이상의 성인물”이라고만 전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템들이지만, 이 감독의 냉정하고 차분한 면모가 기대를 갖게 한다.

<마리 이야기>에 대한 궁금중 두가지, 환상에 나오는 큰 개가 <이웃집 토토로>의 `토토로`와 닮아 보이는 점과 소녀 이름이 `마리`인 이유를 물었다. “이 영화처럼 우연히 환상의 세계에 들어가는 이야기는 많다. 그 가운데 <이웃집 토토로>를 본 이들이 많아서인 듯한데, `토토로`와 닮았다는 건 좀 억지스러운 느낌이다. `마리`는 사람을 닮았지만 사람보다 더 아름답고 매력적인 생물로 그리려 했다. 모든 동물에 대한 총칭으로, 동물을 셀 때 쓰는 단위인 `마리`에서 따왔다.”

글 임범 기자isman@hani.co.kr 사진 서경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