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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범] 중요한 건 ‘하나의 아시아’다
김성훈 사진 백종헌 2011-07-08

6월24일 출범한 글로벌 아시아 에이전시 UAM의 정영범 대표

배용준, 수애, 빅뱅, 소녀시대, 2PM, 슈퍼주니어, 구혜선, 강혜정…. 이들의 소속사인 SM, YG, JYP, 키이스트, AM엔터테인먼트, StarJ 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주요 6개 매니지먼트사가 배우들의 체계적인 해외 진출을 위해 UAM(United Asia Management)을 설립했다. UAM은 한국 배우들의 해외 진출과 아시아 배우들의 한국 진출을 대행하는 초대형 에이전시다. 대표는 심은하, 장동건, 수애, 원빈, 양동근, 윤손하, 이나영 등을 발굴해 스타로 만든 StarJ 엔터테인먼트 정영범 대표이사가 맡았는데, 그는 “다른 대표님들에 비해 한가해서 맡았다”고 겸손해했다. 그에게 UAM이 어떤 에이전시인지를 들었다.

-UAM은 SM, YG, JYP 등 가수 콘텐츠가 강한 매니지먼트사와 키이스트, AM엔터테인먼트, StarJ 엔터테인먼트 등 배우를 전문적으로 육성한 매니지먼트사가 결합한 에이전시다. 시작이 궁금하다. =미국은 단지 영어가 통한다는 이유로 50개주로 구성된 자국과 영국시장에 할리우드 권력을 휘두른다. 미국의 에이전시들이 불쾌한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한 영화나 드라마의 캐스팅 디렉터일 뿐인데 아시아 시장을 폄하한다는 거다. 그만큼 왜곡되는 부분도 많고. 중요한 건 ‘원 아시아’(One Asia)다. 아시아는 문화가 다양하고 문화적인 자부심이 강한 만큼 서로 교류만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큰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 한류를 더 강화해서 더 큰 한류를 만들자는 게 아니라 한류를 넘어서 ‘아시아류’를 한번 만들어보자는 거다.

-UAM이 아시아 에이전시라면 함께 출범한 6개 회사 외에 국내외의 다른 매니지먼트사도 참여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일본, 홍콩, 대만을 포함한 중국, 타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의 다른 나라와 단계적으로 협력할 계획이다.

-이 아이디어는 어떻게 구상했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2006년 아시안필름마켓이 마련한 프로듀서 워크숍에서 국가간의 캐스팅에 관해 발표했고, 부스를 마련해 컨소시엄 형태의 세일즈 프로모션을 운영했다. 또 ‘스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특별강좌에서 강연도 했다. 그때 지금과 비슷한 구조의 아이디어를 구상했고 올 초 배우, 가수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종사하는 아티스트의 해외 교류에 관련한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할리우드 에이전시가 그렇듯 배우와 가수를 비롯해 작가, 감독, 프로듀서 등 창작자들의 해외 진출에도 어떤 형태로든지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여러 매니지먼트사와 함께 구상하게 됐다.

-매니지먼트사들의 사업 지향점이 저마다 다른데, 각 회사 대표들이 UAM에 쉽게 동의하던가. =처음 UAM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각 회사 대표들과 회의하면서 놀랐던 건 나만 이 생각을 했던 게 아니라는 거다. 첫 미팅 때 각 매니지먼트사를 가가호호 방문했다. 사실 이 문제가 전화나 메일로 해서 되는 게 아니잖나. 그런 다음 두 번째는 전체 모임을 가졌다. 처음 만난 분도 있고 업계에서 많이 본 사람도 있는데 정말 친구, 오랜 동기 같은 느낌이 들더라. 가벼운 저녁식사로 시작해 늦게까지 술자리가 이어졌던 기억이 난다.

-한국 매니지먼트 산업은 매니저만 있는 게 특징이다. 반면, UAM은 에이전시다. 에이전시와 매니저가 분리되어 있는 할리우드의 그 에이전시인가. =매니지먼트는 수애라는 배우, 소녀시대라는 가수와 같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거다. 한마디로 무형에서 유형을 만들어내는 게 매니지먼트라면 에이전시는 유형의 가치를 좀더 높이는 거다. 배우나 가수가 활동할 수 있는 시장을 넓히고, 해외 작품을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게 에이전시다. 현재 한국 매니지먼트 산업은 재화에서 용역으로 넘어가는 시기다.

-그동안 한국 매니지먼트 산업은 왜 매니저 시스템이었나. =사실 한국시장에서는 에이전시가 필요없다. 전화 한통이면 섭외, 연락이 가능하잖아. 중국에서 섭외 전화가 온다고 가정하자. 여기서 일하기 바쁜데 언제 중국 가서 일일이 확인하고 비즈니스를 하나. 그걸 에이전시가 한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시장이 클수록 에이전시 시스템이 맞다.

-UAM의 에이전시와 현재 할리우드의 에이전시는 그 개념이 어떻게 다른가. =크게 다르지 않다. 할리우드의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20세기 초부터 시작됐는데, 에이전시 개념이 구축된 건 1970년대 초반이다. 70년이 걸렸다. 한국 매니지먼트 산업의 역사는 20년 정도인데, 20년 만에 에이전시 시스템이 도입됐다고 하면 할리우드에 비해 그리 느린 속도가 아니다.

-당장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일단 6개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하나로 모을 계획이다. 데이터베이스라고 하면 각 매니지먼트사에 소속된 아티스트들의 프로필(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그런 단순한 프로필이 아니다), 현재 스케줄, 작품을 고르는 성향 등인데, 이 정보는 우리밖에 모른다. 또 그간 구축한 한국의 모든 기자들, 감독, 작가, 외주 제작사들의 성향도 이 데이터베이스 안에 포함되어 있다. 이걸 모으는 데 최소한 1년은 걸릴 것 같다.

-그 다음 단계는. =이렇게 데이터베이스를 공유하면 아시아의 다른 국가끼리 연락처 정도는 알 수 있겠지. 그러나 모르는 사람끼리 어떻게 일을 할 수 있겠나. 6월24일 론칭 행사 때 부산국제영화제와 MOU(양해각서)를 체결한 것도 그 때문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UAM 행사를 열어 아시아 각국의 감독, 프로듀서, 제작사, 투자사들을 초대해 네트워킹을 구축할 계획이다. 파티를 여는 게 우리끼리 놀자는 목적이 아니다. 그만큼 에이전시는 네트워크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론칭 행사 때 열린 기자회견에서 불법초상권 사용, 검증되지 않은 브로커 등 해외에서 벌어지는 여러 문제도 해결하겠다고 했다. =해외에서는 유명 감독이나 프로듀서가 아니라면 검증되지 않은 브로커로 인해 아티스트와 매니지먼트사가 피해를 보는 일이 많다. 그걸 UAM이 고민해보겠다는 말이다. 초상권의 경우 각 회사의 퍼블리시(저작권) 담당이 해야 할 일이지만 그게 국내에서만 가능하다. 해외의 경우 콘텐츠들이 급하게 해외로 진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초상권을 체계적으로 검증하는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일일이 단속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그 역시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UAM이라는 게 기존에 없던 시스템은 아닌 듯하다. =맞다. 한국식, 아시아식 같은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없다. 어차피 영화, 방송, 매니지먼트, 에이전시 시스템은 이미 할리우드가 다 구축했다. UAM이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최초로 가진 그 취지를 지켜나가면서 아시아 각국의 시장 상황에 맞는 방식을 그때그때 취사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이 일을 장기적으로 구상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1991년 나라기획이라는 광고대행사에 취직했다가 6개월 만에 입사 동기인 ‘015B’의 장호일씨와 함께 퇴사했다고 들었다. =회사 생활이 싫었던 건 아니고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로 국제부 일을 시키더라. 사실 그렇게 영어를 잘했던 게 아니라서 많이 힘들었다. (웃음) 어느 날 마케팅 회사를 차린 선배의 꼬드김에 넘어가 영화마케팅 일을 시작했다. <말콤X>를 비롯해 여러 편의 외화를 번역했고 영화 예고편도 직접 편집했다. 막내 직원이라 멀티플레이어처럼 일했다. 아, 장호일과 함께 나온 게 아니라 우연히 비슷한 때 퇴사한 것이다.

-당시 가수 솔리드의 <이젠 나를>이라는 타이틀곡이 포함되어 있는 첫 앨범 ≪Give Me a Chance≫(1993)를 제작했다. =영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아메리칸필름마켓(AFM)에 영화를 사러 갔을 때였다. 미국에서 우연히 솔리드 멤버들을 만났는데, 음악을 들어보니 생소하더라. 장호일씨한테 전화를 해서 무슨 음악이냐고 물어보니 R&B라고 하더라. 한국에는 전혀 없는 음악 장르라는 말에 혹해 앨범을 제작하기로 계약했다.

-그 앨범은 실패했다. =앨범을 홍보할 매니저가 필요했는데, PR 대행사에 맡겼다. 그런데 그 회사에 내부문제가 생기면서 사장은 사라지고 직접 고용했던 매니저도 도망갔다. 회사에 단둘만 남았다. 그게 나와 배우 심은하씨다. 드라마 <마지막 승부>가 끝나고 <M>을 막 시작할 때 심은하씨와 계약하면서 매니저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마지막 승부> 끝날 때 심은하씨는 대형 스캔들로 위기에 처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부분은 배우의 사생활이라 말할 수 없다.

-1994년 매니지먼트사 ‘스타제이’를 차렸다. 서구형 미인이 가득했던 연예계에 정윤희 닮은꼴로 화제를 모은 수애, 시트콤 출연으로 비호감 이미지를 벗은 양동근,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주인공 송승헌과의 차별화에 주력했던 원빈 등 신인배우를 발굴해 모두 톱스타를 만들었다. 비결이 뭔가. =청소년기에 말썽을 피우면 서재에 갇히는 게 벌이었다. 처음에는 서재의 방바닥만 긁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서재에 꽂힌 책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그때 독서를 많이 했는데, 그게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된 것 같다.

-업계에서 자신이 키운 배우와의 이별에 크게 마음을 두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어떤 배우를 스타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타가 됐을 때 그 관계의 끝을 맺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대신 함께했던 배우 거의 대부분과 지금 친하게 지내는데 그게 너무 좋다. 원빈씨도, 심은하씨도 여전히 친하게 지낸다.

-심… 심은하씨 컴백은 언제…? =가끔 심은하씨 남편과 함께 셋이서 만나는데, 심은하씨는 지금 삶에 만족해한다.

-최근 배우들이 1인 매니지먼트사를 설립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어떻게 생각하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본다. 매니지먼트사가 하는 일이 기술적으로 미완성인 아티스트를 자신들의 노하우를 동원해 완성시키는 거잖아. 아티스트가 스타가 된다는 건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는 걸 의미한다. 그때부터는 혼자서 활동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그런데 매니저들이 이 사실을 잘 모른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배우들을 놔줘야 하는데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하면서 섭섭해한다. 계약과 관련한 문제가 생기는 것도 그래서다. 아쉬우면 또 스타를 키우면 된다. 그게 매니지먼트사가 할 일이다.

-신인배우가 매니지먼트사를 선택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나. =가장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 관심이 있는 회사의 현재를 보지 말고 그 회사의 5, 6년 전을 봐라. 그때와 지금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보면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의 계획은. =매니지먼트뿐만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가 많다. 그러나 지금은 UAM에 전념할 거다. 하루 중 1/3은 놀고, 1/3은 자고, 1/3은 일하는 리듬을 유지하면서 말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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